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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직업이 없다는 것

by idle

내가 기억하는 한 난 항상 어떤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학생 때는 학교의 구성원이었고, 졸업 후에는 회사의 구성원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대학 졸업 후 바로 회사에 들어갔으니, 32년 동안 나에게 소속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어떤 서비스의 회원가입을 할 때나 은행 계좌를 만들 때, 해외여행 시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도 소속을 적어야 한다. 난 그동안 소속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라디오 진행자는 청취자와 전화 인터뷰를 할 때면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하면서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어본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무슨 일을 하세요?”, “무슨 학교 다녀?”, “회사가 어디야?”라는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아본다. ‘소속’이라는 것은 나에 대해 이래저래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대표하는 어떤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는 내가 사는 동네가 어디인지를 말해준다. 대학교는 내가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회사는 나의 소득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를 증명해줄 ‘소속’이 없다.


입출금 통장을 만들거나 대출을 받으려면 내 소속과 소득을 증명해야만 한다. 소속이 없어진 다는 것은 더 이상 금융거래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은행은 내 소속이 어디인가에 따라 대출한도나 이율을 결정한다. 그래서 은퇴하기 전 금융거래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집을 사고 대출을 빨리 갚으려 노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집을 살 때 전 집주인은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소득도 높고, 집도 여러 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소속이 없어 높은 이율의 대출을 받고 있었다. 집값이 오르고 있어 팔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잔금을 바로 드릴게요. 계약하시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집주인보다 가난했지만 ‘안정된 소속’이 있어 낮은 이율에 높은 한도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집주인은 우리에게 집을 팔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른 은퇴를 하겠다 말씀드렸을 때, 양가 부모님의 걱정이 많았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려고 그래.”,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잔말 말고 몇 년만 더 다녀.” 말씀하실 때마다 웃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우린 서두르지 않았다. 찾아 뵐 때마다 은퇴 후 계획에 대해 조금씩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그만 두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얘기했다. 은퇴를 결정하고 몇 년에 걸쳐 계획을 말씀드리자 양가 부모님들도 서서히 우리에게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쉬워하시지만, 지금은 우리의 결정을 인정해주셨다.

부모님의 걱정도 더 이상 ‘소속’이 없음에 기반할 것이다. 그동안 자식들이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를 주변에 자랑하셨을 것이다. 그 자랑의 핵심은 ‘소속’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 소속이 좋을수록 더 부러워했다. 좋은 회사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혜택도 많았다. 자식들이 회사를 다니는 한 부모님은 병원비 걱정이 없었고, 건강검진도 좋은 곳에서 받을 수 있었다.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핑계로 비싼 선물을 사드리고,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은퇴 후 부모님에게 선물을 사드리면 좋아하시기보다 걱정부터 하신다. 더 이상 금전적으로 효도할 수 없음이 아쉽다.


부모님 뿐 아니다. 이제 내가 돈을 쓰려고 하면 주변 모두가 만류한다. 친구를 만나도 “이건 내가 살게.” 라며 내 몫까지 계산을 해버린다. 의도치 않게 한동안 많이 얻어먹고 다녔다. 그 정도는 쓸 수 있게 용돈을 마련해두었는데, 주변에서 자꾸 못쓰게 한다. 애써 마련한 용돈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내가 아닌 회사의 이름값에 괜히 당당해지던 때도 있었을 텐데, 이제 회사라는 배경 없이 나로서 당당해져야 한다.

“여행 가면 이제 출입국신고서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하지? ‘백수’라고 쓰면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아닐까?”

“브런치 ‘작가’라고 써.”

지금은 브런치 밖에 하는 게 없어서 남편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소속’이 없다는 것은 자유로운 기분을 들게 했다. 그동안 회사 구성원으로서 튀지 않는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유지했었다. 은퇴 후 이 자유로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 고민하다가 ‘히피펌’을 하기로 했다. 히피 스타일이 주는 자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머리스타일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다니고 싶었다. 히피펌까지는 했는데, 전체적인 스타일까지 바꾸는 건 힘들었다. 자유로운 스타일은 나에게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자주 손이 가는 편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다. 늘 헐렁한 바지에 맨투맨 티셔츠다. 은퇴 전 물욕을 없애겠다며 폭풍 쇼핑을 했을 때 사둔 비싼 옷들을 입을 일이 많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우니 동네 공원 산책 말고는 나갈 일이 없어서다. 맨투맨 티셔츠라도 비싼 걸 사두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 대신 집안을 꾸미는데 더 소비를 할걸 그랬다.

이제 자유다!

소속은 내 자유를 담보로 안정감을 제공했다. 우린 그 소속 안에서 금전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렸었다.

소속이 없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32년 동안 써보지 못한 것이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헤맨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익숙해져도 아무 문제없는 것. 이것 또한 자유가 주는 것이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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