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간 우린 집을 떠나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마침 이사 전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집을 구하고 있던 언니네 네 식구가 우리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리 집은 두 식구에 최적화되어 있다. 네 식구가 오면 이 집은 좁게 느껴질 거다. 집을 떠나기 전 언니네를 위한 공간을 비우고, 냉장고에 쌓여 있는 음식도 처리해야 한다. 긴 시간 집을 떠날 것이니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필요한 짐도 꾸려야 한다. 머리가 복잡했다. 남편과 떠나기 전 할 일을 미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냉장고 비우기. 우선 냉장고에 있는 재료부터 확인했다. 냉장실에는 각종 반찬들, 당근, 감자, 호박, 두부가 있었다. 곧 떠날 거라 한동안 장을 보지 않아서 냉장실에 남은 재료가 많지는 않았다. 문제는 냉동실이다. 그동안 받은 음식들로 냉동실이 가득 찼다. 얼린 생선, 옥수수, 병아리콩, 밤, 소고기와 각종 인스턴트식품들로 냉동실이 터져나갔다.
“떠나기 전 약속도 많은데 저걸 언제 다 해 먹지?”
“일단 만들 수 있는 메뉴 정하고, 식단표라도 좀 짜 봐야 하나.”
메모장에 남은 끼니별로 만들어 먹을 음식을 적었다. 계획대로 하나씩 미션을 수행하면 냉장고를 무사히 비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옷장 비우기. 옷장을 비워줘야 한다. 두꺼운 겨울 옷을 정리해야 공간이 날 것 같은데, 일기예보를 보니 계속 영하의 날씨다.
“지금 겨울 옷 넣으면 너무 이른가?”
“아직 추워서 다시 꺼내 입을 거 같은데.”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다. 빨리 처리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어쩔 수 없이 떠나기 전날 세탁소에 맡기고 찾는 건 엄마에게 부탁해야겠다.
한 번쯤 안 입는 옷을 정리하려 했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옷 정리를 하기로 했다. 자주 입지는 않는 옷들로 옷장이 가득했다. 난 최근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을 골라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찐 살 때문에 지금은 안 맞지만 아끼는 옷과, 유행이 지나 지금은 못 입지만 비싼 옷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살은 빼면 되고, 유행은 돌아올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옷장 한편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와 비슷한 일상을 살기로 했다. 부산 2주 살기의 경험이 떠올랐다. 빌린 숙소에 있는 주방도구들은 쓰기 어려웠다. 프라이팬은 코팅이 벗겨져 있었고, 컵은 작았다. 편히 살아가기 위해서 그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구매했었다. 우리는 돈을 아껴야 하는 은퇴 생활자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차를 가져갈 것이니 웬만한 건 챙겨가기로 했다. 최근 일주일 내에 한 번이라도 사용한 물건들을 떠올리며 짐을 꾸렸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해야 하니 러닝화와 운동복을 챙겨야 한다. 남편은 이제 취미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한 취미생활을 세 달 동안 중단할 수는 없었다. 남편의 기타는 울림통이 없어, 스피커와 연결을 해야 소리가 났다.
“우리 여행용 스피커에 AUX 연결 못하지?”
“그렇지, 왜?”
“아니 기타랑 연결해야 하는데, 집에서 쓰는 다른 스피커는 너무 커서 가져가기 좀 그런데..”
“AUX 연결되는 스피커로 바꿀까?”
“지금 스피커도 좋은데 아깝잖아.”
“중고로 팔면 되지!”
그렇게 기타와 스피커도 목록에 포함되었다. 아침마다 커피는 꼭 마셔야 하니 캡슐커피와 머신도 챙겨가기로 한다. 남편이 생수는 잘 안 마신다. 남편의 수분 보충을 위해 차를 끓일 티포트도 가져간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달리느라 주근깨가 잔뜩 늘었다. 우리의 피부를 지켜줄 LED 마스크도 챙긴다. 여행을 떠날 때 당연하게 챙겨가는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은 따로 적지 않았다.
일정을 정리하고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떠나기 전 우리는 정리한 미션을 하나씩 완수해 갔다.
목록을 미리 정했으니 짐 싸는 건 금방일 거라 생각했다. 평소에 자주 쓰는 물건들이니 미리 짐을 챙기진 못했다. 우리는 이사 당일에서야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메모지에 적은 글자 수로 생각했던 것에 비해 실물로 쌓인 짐들은 많았다. 차 트렁크에 다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난 이사 때문에 정신없는 환경에서 강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집으로 데려왔다. 낯선 곳에 혼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되어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남편 혼자서 쌓인 짐을 차로 나르기 시작했다. 세 번 정도 왔다 갔다 하고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우리가 챙긴 짐으로 가득했다.
모든 정리가 끝났다. 제주까지는 완도로 이동해서 배를 타기로 했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전주에서 하루 머문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여정은 지루하게 느껴질 거다. 언제 완도까지 가냐며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동이 아니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완도까지 가는 길,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잠시 내려 산책도 하고, 그 지역 맛집도 찾아다니며 완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