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예찬

by idle

나에게 우리 집은 너무 위험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몸을 노곤하게 만드는 포근한 침대가 있고, 안락한 소파가 놓여있는 작은방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멍하니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는 TV가 있고, 소시지, 초콜릿 같은 것들이 가득 담긴 간식 바구니가 있다. 그렇다. 이곳은 나를 늘어지게 만들기 딱 좋은 공간이다.

가끔 난 집안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는 하는데, 이렇게 변화를 주면 집에 있어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유혹하는 것들을 뿌리치고 책상에 앉아 집중하게 만들 만큼. 지금은 커다란 거실 창 앞에 테이블을 두었는데, 이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은 여기에 앉아서 자주 글을 쓰고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패턴이 망가지는 것은 정말이지 한순간에 찾아왔다. 인간의 의지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처음 한번 그 한 번이 문제였다. 테이블에 앉아 아이패드를 열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 대신 유튜브 앱을 여는 것 말이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내 관심을 끌만한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했고, 내 구독 목록은 점점 늘어만 갔다. 인문학 콘텐츠와 여행 이야기, 축구와 해외 문화 소개와 같은. 자극적인 영상이 아니라 유익한 콘텐츠가 아니냐며. 이것도 다 지식을 탐구하는 일이라고 강변해봤지만. 잠깐만 봐야지 했던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고. 그 이후에는 유튜브를 보지 않더라도 어떤 일에 진득하게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변화를 주어야 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자주 여행을 다녔다. 집에서와 비슷한 일상을 사는데도, 낯선 공간에 있다 보면 자극이 되었다. 여행지에서는 늘 같은 장소를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았다.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한 공간이 되어가는 즐거움을 누리느라 더 이상 게을러지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나 집에서나 우리는 카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사실 우리가 카페 라이프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목적 없이 보내는 시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서, 연애시절에도 카페는 거의 가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카페에 갔다면 그 목적은 단 하나, 카페인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커다란 오렌지 나무 정원이 딸린 카페에 가서도.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도.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면 곧장 일어섰다. 여행 책자와 블로그에서 꼭 가야 할 장소로 언급된 카페들을 우린 쉽게 넘어섰다. 그랬던 우리가 달라진 건, 아마도 아이패드 때문? 아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라고 해야 할까.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글을 쓰고, 식사 뒤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식사를 마치면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 드 플로르는 우리 집과 같은 곳이다."
<장 폴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카페 드 플로르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살던 전후 시대 아파트와는 달리 카페가 난방이 된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나중에는 그냥 카페에서 글 쓰는 게 좋아졌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도 이와 비슷하다. 카페에서 글 쓰는 게 그냥 좋아졌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변의 소음으로 시끄럽기까지 한데, 이상하게 카페에서는 집중이 잘된다. 집에서 처럼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없기 때문인가. 카페가 너무 시끄럽게 느껴질 때는 스터디 카페를 찾기도 했는데, 그곳은 또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 고요함보다는 차라리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나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적당한 카페를 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너무 작으면 오래 머무는 것이 미안해져서 적당히 큰 카페를 선호했다. 우리처럼 글을 쓰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한두 명쯤 보이면 좋고, 테이블과 의자가 편한 곳이어야 한다. 나오는 음악도 시끄럽지 않고, 이왕이면 가요보다는 클래식, 재즈, 팝이 좋다. 커피 맛은 그다음이다.


튀르키예에서 두 달 정도 머물 때도 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서 10분쯤 걸어 나가면 있는 치보(독일 프랜차이즈 카페)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2층 창가에 커다란 테이블 하나가 있었는데 빛이 잘 들고, 의자도 편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 가면 늘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그 테이블 자리를 노렸다. 어쩌다 조금 늦게 도착하면 창가 테이블 자리가 꽉 차서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 일어서면 서둘러 자리를 옮기고는 했다. 요즘은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서 디지털 노마드 비자도 발급해준다 들었는데, 튀르키예도 그렇게 머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카페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사람. 까만 창을 띄워 놓고 코딩을 하는 사람. 디자이너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인사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늘 보던 사람들이 안 오면, 무슨 일이 있나? 이제 다른 나라로 떠났나 궁금할 정도였다.


내년에도 몇 달쯤 해외살이를 떠날 것 같다. 주변에 산책할 공원이 있고 적당히 번화한 동네를 찾아 숙소를 구할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카페 탐색도 하겠지. 그렇게 낯선 장소가 익숙해지고, 단골 카페가 생기고, 우리를 보면 웃으며 인사해주는 이웃도 만날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친근한 공간 하나 만드는 것. 그 공간을 하나하나 더하는 일. 그것이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가 새로 찾은 즐거움이고, 그 중심에는 카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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