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구멍이 생긴 것 같다. 아무리 메워보려 해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 질질 새어나가는 탓에 새로운 것을 가져다 부어도 반듯하게 만들어 내지를 못한다. 하얀 페이지를 보며 멍하니. 어쩌다 구멍이 났는지를 생각했다. 가진 것에 비해 많이 가져다 쓴 걸까. 아니면, 날카로운 말끝에 베인 건가. 그동안 이런 식으로 쓰다만 토막글이 여럿. 시작은 하는데 마무리가 공허하다.
나를 채워보기로 했다. 소설, 철학, 에세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채운다. 채우기 위한 글을 읽을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나 따위가 글이라는 걸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텅 빈 페이지를 마주하면 채워나가는 것이 두렵다. 부족함을 느껴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채워 넣는 것 밖에 없다. 다행히 이 채워 넣는 행위에는 즐거움이 있다. 아무리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 즐거움.
요즘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고 있다.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카프카적 유머 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는 말에 카프카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카프카의 책을 읽다 실존주의에 관심이 생겨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는 식이다. 카프카와 헤세를 읽다 보니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철학 입문서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선택했다. 이 책은 14명의 철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읽다가 마음에 드는 철학자가 있으면 밀리의 서재 내 서재에 담아둔다. ‘언젠가는’ 읽겠지.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챕터에서 에릭 와이너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톰 머를을 만나서 쾌락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와인을 마신다. 유명한 와인 산지인 나파에 살고 있는 톰이 자주 마시는 와인은 ‘투벅척’이라는 이름의 2달러짜리 와인이다. 그는 마시고 삼키면 사라져 버릴 것에 35달러를 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투벅척은 ‘충분히 좋은 와인’이라고. 그의 말에 이 ‘쾌락주의’ 철학이 우리의 삶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당신은 쾌락주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거실 창 앞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아 브런치에 달린 댓글에 답을 쓰고 있던 그가 손으로는 키보드를 치면서 눈으로 ‘그게 뭔데?’라고 물어본다. 그는 와인을 즐기지 않으니, 와인 이론을 우리가 좋아하는 소고기에 비유해서 답한다.
“우리는 비싼 숙성한우보다는 미국산이나 호주산 소고기를 먹으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잖아. 그냥 그런 거야.”
“무슨 소리야. 마누라가 돈을 잘 벌면 나도 숙성 한우 잘 먹을 수 있어.”
“에이, 우리가 회사 다닐 때도 당신은 2만 원짜리 파스타를 파는 식당을 가면 불편해했어. 내가 가자고 하니까 가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싼 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싸고 맛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맛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다만 그 맛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식당을 피할 뿐이다.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심만 버리면 적당한 가격에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릭 와이너는 톰에게 나파에서 괜찮은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한다. 톰은 “저기 길 아래편에 스타벅스가 있어요.”라고 답한다. 책을 읽다 크게 웃었다. 그가 이번에는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다시 쳐다본다.
“왜 얼마 전 제주에 갔을 때, 내가 바다가 보이는 괜찮은 카페 찾는다고 한참 검색하고 있으면 당신이 그냥 스타벅스 가자고 하자나. 생각해보니 스타벅스는 ‘충분히 좋은 카페’인 것 같아서.”
난 도덕경을 읽으면서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도덕경은 꼭 읽어보라는 나의 말에 그가 마지못해 한 권을 다 읽고서는 말했다. “난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어.” 철학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거라는데. 그가 이미 에피쿠로스와 노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좁은 땅덩이에 비해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그는 어떻게 자연스레 욕심을 버리며 사는 삶의 지혜를 터득했을까.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어린 시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에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글쎄, 그냥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살아왔어.” 그는 자연스레 터득한 삶의 자세를, 난 책을 읽으면서 공부한다.
첫 책을 출간한 이후 나의 삶과 글에 대한 비난을 많이 받았다. 당연히 상처가 되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누가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냥 조금 무뎌지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이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다음 글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가 유명한 작가의 글처럼 잘 쓰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글을 쓰는 쾌락에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따랐다. 난 쾌락과 고통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당장에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버리면 나의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충분히 좋은’ 글을 쓰게 될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