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한번 해봅시다.

by idle

치앙마이에서 요가를 배워온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요가를 한 번 해보라 말했다. “요가는 움직이면서 명상을 하는 것 같은 운동이라 좋아.” 그럼 같이 하자고 했더니, “네가 먼저 가서 해보고 분위기를 알려줘.”라고 한다. 겨울이라 집에만 있기도 지루했던 난 동네에 요가원이 있는지를 살폈다. 필라테스 학원은 꽤나 많은데 비해 요가원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검색된 한 곳은 필라테스와 요가를 겸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던 차에 마치 운명처럼, 우리가 늘 다니는 길목의 한 건물에서 커다란 현수막으로 새로운 요가원이 오픈했음을 알렸다.


미리 예약을 하고 그 요가원을 찾았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하얗고 넓은 공간에 수강생은 나를 포함한 두 명뿐이었다. 요가 수업은 자리에 앉아서 하는 명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내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따 밥은 뭐 먹지. 건강보험료 고지서는 왜 아직 안 나올까 등등. 그때 마침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다른 생각이 나도 괜찮아요.
깨닫고 현재로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내 몸을 관찰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해본다. 필라테스는 입으로 내쉬라고 했는데(난 요가는 처음이고, 필라테스는 3년 정도 배웠다), 요가는 코로 내쉬라고 해서 호흡이 자꾸만 헷갈린다. 호흡에 신경을 쓰다 보니 공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셨는지 머리도 띵하다.


선생님은 요가는 눈을 감고서 매트 위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수련이라고 말했다(필라테스는 눈을 감으면 뜨라고 했는데, 이것도 헷갈린다). 산스크리트어로 아사나를 알려주고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동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도 눈을 감고서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갑자기 왼쪽, 오른쪽 다리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갈 곳 잃은 팔은 허우적거렸다. 슬쩍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한 분은 눈을 감고도 능숙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난 선생님을 보지 않으면 비슷하게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자, 아르다 받다 파드마 파스치모타나 아사나​​
왼쪽 발을 반대편 다리 위에 올려놓으세요.
그리고 왼팔을 들어서 뒤로 돌려 발을 잡아주세요.


어잉.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세인가. 있는 힘껏 팔을 뒤로 돌려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오른쪽 허리 뒤편까지만 살짝 닿을 뿐이다.


잘 안되면, 오른손이 도와줘도 좋아요.
그래도 안되면, 가능한 만큼만 하셔도 괜찮아요.


다시 내 옆자리를 힐끗. 역시 능숙하게 왼발을 잡고 있다. 나만 안 되는 건가. 유연한 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막대기 같아서야.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다시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어정쩡한 자세로 흉내만 내다가, 수업이 거의 끝날 시간쯤.


오늘은 머리서기 한번 도전해 볼까요.
자,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어깨 간격으로 벌린 다음, 두 손으로 깍지를 껴서 뒤통수를 받쳐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머리 쪽으로 걸어오는 거예요.


어어, 뭔가 느낌이 온다. 발이 머리 쪽으로 조금씩 다가올수록 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거기까지다. 난 머리를 숙인 채 제자리 걷기만 하고 있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와 손으로 발을 살짝 잡아준다. 난 배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는다. 내 발을 살짝 잡고 있던 선생님이 살며시 손을 놓았다. 오오, 나도 머리로 섰다! 요가 고수만 가능한 줄 알았던 자세를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나도 설 수 있었다! 좀 더 하다 보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까. 수업 내내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


겁이 나서 그렇지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신 거예요.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은 괜찮다고 말했다. 요가는 억지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고. 눈을 감고 내 몸의 감각을 느끼면서 호흡을 통해서 서서히 자세를 잡아가는 운동이라고. 지금까지 시도해본 모든 운동은 나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보라고 했다. 운동이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야 잘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집에서 쓰던 매트로 요가를 해보니, 매트 두께가 얇아서 복숭아뼈가 좀 아팠다. 앞으로 쭉 하게 될 운동이니 요가에 맞는 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난 20년 동안 요가매트 1위를 놓치지 않았다는 만두카 매트를 찾았다. 만두카 프로 매트는 무려 평생 보장이 된단다. 평생 보장이라니 좀 비싸긴 하지만 이거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쓸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나잇 컬러의 요가매트 하나를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 그리고 핸드타월. 손에 땀이 나서 요가하는 내내 손이 미끄러졌던 기억이 났다. 요가원의 핸드타월을 빌려서 썼는데, 아무래도 땀을 닦는 용도이니 개인용을 사야 할 것 같았다. 타월도 만두카의 미드나잇 컬러로 선택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다가 문득. 선생님이 물이 빠진듯한 아련한 색감의 알라딘 바지 같은걸 입었던 기억이 났다. 요가 동작하기에도 편하고, 이뻐 보였다. 몇 번의 검색으로 발리 감성 요가복이라는 부디 무드라, 찬드라 등의 브랜드를 발견했다. 선생님이 입고 있었던 것이 부디 무드라인 것 같았다. 발리 수입이라는 데 가격은 발리 감성이 아니다. 언젠가 가게 될 발리 여행까지 기다렸다 사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바지도 하나 구매했다. 요가를 시작한 지 셋째 주만에. 내 손에는 요가매트와 핸드타월, 요가 바지 그리고 커버업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생활비가 아닌, 내 용돈으로 모두 구매했다.) 내려놓아야 하는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나 욕심을 부렸다니. 성찰 한번 하고, 이걸 오래오래 쓰면 되는 거라고 위안했다.


신상 요가 바지를 입고, 만두카 매트와 타월을 들고서 요가원을 향했다. 오늘따라 다른 회원은 없고 나 혼자였다. 선생님은 요가 초보인 나를 위해 기초 자세를 잡아주었다.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매일 하는 자세인데도, 난 여전히 동작을 외우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idle님 학생 때 모범생이었죠?
그렇게 바로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지금껏 잘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애쓰지 않아야 하는 요가를 하면서 내려놓는 방법을 배운다. 늦은 오후, 매트를 꺼내서 그날 배운 동작을 따라 해 본다. 눈을 감고 선생님 말씀처럼 천천히 호흡하면서.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안되던 동작이 조금 나아지는 걸 느낀다. 이거구나. 바로 이 느낌이구나. 앞으로 나의 요가 생활이 달라질 거라는 기분이 든다.


여전히, ‘아르다 받다 파드마 파스치모타나 아사나​’ 자세를 할 때 손으로 발을 잡지는 못하지만, 가끔 엄지발가락 끝이 손끝에 닿는 정도까지는 된다. 여전히, 옆자리의 유연한 다른 수강생들을 훔쳐보며 ‘내가 허벅지 살이 많아서 무릎이 바닥에 닿지 않나. 팔이 짧아서 발을 잡을 수 없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지만, 차차 좋아질 거라 믿는다.


2021년 12월 31일, 그와 테이블에 앉아서 화이트보드에 적힌 2021년의 계획을 지우고, 2022년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적었다. 글쓰기, 공부하기와 같이 매년 적는 계획에 ‘요가 꾸준히 하기’를 추가했다. 잘하기가 아니라 꾸준히 하기. 내려놓을수록 유연해지고 꾸준히 나아갈 힘을 얻으니,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라 믿는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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