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살며시 눈을 뜬다. 아침 7시, 창 밖은 아직 캄캄하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한다. 겨울이 돌아왔다. 해가 늦게 솟아오르는 겨울은 늦잠을 잔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에는 아침 달리기를 멈추고, 산책도 하지 않는다. 둘 다 추위를 많이 타는 대다가, 한기를 막기 위한 두꺼운 옷을 입으면 몸을 움직이기가 영 불편해 오래 걷기가 힘들어서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겨울잠을 자듯이 집안에 웅크리고 있다.
동남향인 우리 집은 아침에 햇살이 가장 깊숙이 들어온다. “오늘 햇살 좋다.”라고 기분 좋게 말하며 기지개를 켜고는 커튼으로 해를 가린다. 그는 햇살이 좋다면서 왜 가리냐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햇살은 애써 구하려 하면서도 가까이하기에는 두려운 존재다. 그것이 내 볼에 기미와 주근깨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비싼 흔적이다. 피부과는 돈이 많이 든다.) 햇살이 남길 흔적이 두렵지 않은 그는 온몸 가득 그 빛을 맞이한다.
가만히 창밖을 보며 바깥세상을 관찰한다. 자그마한 무당벌레 한 마리가 창 밖을 기어 다니고 있다. 둘이 나란히 창가에 붙어 앉아 찾아온 손님을 마주한다. “살짝 꺾여 있는 발이 너무 귀여워.” 아쉽게도 무당벌레의 배만 보일 뿐, 그의 매력 포인트인 등의 땡땡이 무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꽤 고층인 이곳까지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우리는 몇 가지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싫증이 날 때까지 한참을 들여다본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침 시간이 길다. 평소라면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있을 시간.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바라보다 11시쯤 되면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다. 토스트와 삶은 계란, 바나나를 접시에 담고,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다.(겨울이면 요리도 귀찮다.) 요즘 들어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난, 하얀 밀가루 대신 통밀로 만든 식빵을, 달달한 시리얼 대신 뮤즐리로 메뉴에 변화를 주었다. 다행히 건강보다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식사 후 의자에 늘어져 있으면 그가 손을 내민다. “산책하자.” 밖에 나가자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리 넓지 않은 집안을 한 줄로 나란히 서서 걸어 다닌다. 배부르고 답답하니까 집안이라도 걸어야 한다. 그가 앞서고, 난 뒤를 따른다. 가끔은 그의 뒤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걸어 다니는데, 이제는 익숙해서 눈을 감고 걸어도 발걸음이 착착 맞는다. 오늘은 뭘 하면서 놀지? 저녁에 뭐 먹지? 같은 고민을 할 때, 이 자세를 하면 기가 막히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서 난 이 걸 ‘생각 자세’라고 부른다.
가끔은 실내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쇼핑몰로 산책을 간다. 백화점은 주차비가 많이 나오니, 살 물건이 있을 때만 간다. 아침마다 네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는 우리는, 딱히 살게 없으면 커피 캡슐을 산다. 어차피 언젠가는 마실 거니까. 캡슐을 산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딱히 필요한 물건도 없을 때. 그때가 문제다. 밥을 먹고 ‘생각 자세’를 하며 집안을 걸어 다닌다. “이케아를 가자!” 평일 이케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주차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역시 ‘생각 자세’를 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남편이 엉덩이를 토닥이며 칭찬해 준다.
“그래도 거기까지 가서 아무것도 안사고 나오기는 좀 그렇잖아.”
“건전지를 사 오자.”
이케아에서 늘 사는 아이템이다. 이케아 건전지는 저렴하다. 힘세고 오래가는 건전지는 아니지만 싼 맛에 잔뜩 사두면 요긴하다. 이케아 패밀리면 평일 커피 한잔이 무료다. 레스토랑도 저렴한 편이니 구경하고 저녁까지 먹고 와도 괜찮을 것 같다. 가난한 백수가 추운 겨울 시간을 보내기에는 딱 적당한 장소다. 남편이 다시 칭찬한다. 토닥토닥.
다른 계절에는 저녁을 먹고 늘 공원을 산책했다. 아침 달리기와 저녁 산책까지 보통 하루에 10km 이상을 걸었는데, 겨울에는 2km도 걷기가 힘들다. 니체는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움직이지를 않으니 머리도 둔해진 느낌이다. 괜히 몸을 흔들며 집안을 돌아다닌다. 나는 춤이라 주장하고, 남편은 몸부림이라 말한다.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 4시 30분 즈음이 되면,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살이 붉게 세상을 비춘다. 하루 중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창가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자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로운 생각이 자리 잡는다.
회사를 그만둔 후 원래 계획은 겨울을 따뜻한 동남아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틀어지고, 그와 나 둘 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21년 7월에는 내가, 21년 12월에는 그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나라도 이룬 것이 있으니 2021년 한 해를 잘 보냈구나 하고 생각한다. 여행이 일상은 될 수는 없으니, 긴 시간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터득한 지금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자극보다는 일상의 안온함에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이 기분을 그에게 전하고 싶어졌다.
“남편, 여행보다 이렇게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에게 더 좋은지도 모르겠어.”
“얘가 요즘 철학 책을 읽더니 뜬금없는 이야기를 자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