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변해버린 제주도 동쪽 마을

by idle

일주일에 두세 번, 제주도를 여행하자고 했다. 메모지를 꺼내어, 제주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었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함께 찾았던 장소들이 하나씩 채워진다. 적고 보니 이상하다. 죄다 식당이다. 밀면, 보말칼국수, 해물뚝배기. 추억은 식당으로 남았다.


식당만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식당을 중심으로 추억의 장소를 떠올렸다. 먹었던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연관된 추억을 생각했다.

“올레 걷다가 먹던 그 해물파전 집 맛있었는데.”

“그 집은 라면보다는 파전이었지.”

대부분 제주를 걸었던 기억들이다. 걷다가 지쳐 우연히 들렸던 가게에서 먹은 음식들이 기억에 남았다.


한라산 등반, 기억에 남는 올레코스들로 메모지를 채웠다. 메모장 한 장에 네 개씩 네 장, 열여섯 개. 두 달 동안 제주에 머물며 다닐 곳들이 정해졌다.


비자림은 남편과 처음으로 걸었던 숲길이다. 오래된 비자나무로 이루어진 숲길은 걷기 적당했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숲이란 산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지에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 이후 제주의 숲길에 빠져들었다. 곶자왈의 나무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흩어진 돌 위로 위태롭게 나무가 자라고, 푸른 이끼와 고사리가 가득한 숲은 신비로웠다. 제주도의 나뭇가지는 빈 공간을 따라 자유롭게 뻗어나가 꼬불거린다. 뻗어나가는 가지는 자유롭다. 그 자유로운 느낌이 내가 느끼는 제주였다.

제주의 숲길


비자림은 제주도의 동쪽 편에 있었다. 비자림을 찾을 때면 근처에 있는 용눈이 오름과 함께 동쪽 바닷가를 따라 드라이브했었다. 다시 돌아온 제주에서도 비자림은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숲길이 었다. 우리는 천천히 외출 준비를 마치고 비자림을 향했다. 비자림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비자림은 선착순으로 입장해요. 보통 오전이면 마감되니 일찍 오세요.”

비자림이 인기 있는 숲길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숲이 되어버렸다.


제주도 오름 중 가장 곡선이 이뻐 늘 찾았던 용눈이 오름도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았던 것일까. 6년 전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는 늘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 제주가 참 많이 변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동쪽 해안도로를 찾았다. 세화 바닷가도 참 많이 변했다. 그때는 카페 한두 개가 전부였다. 폴딩 도어를 활짝 열어두고, 바다를 향해있던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이 찍어준 사진이 내 인생 사진이었는데, 그 카페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 아니었다.

6년전 용눈이오름과 동쪽 바다


동쪽 바다를 찾을 때면 늘 들리던 라면집이 있었다. 이 곳은 라면도 맛있었지만, 해물파전이 정말 기가 막혔다. 해물이 많이 들어있어 도톰한 파전이 노릇하게 구워져 나왔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바삭하는 소리가 났다.

“파전 맛있죠? 이게 우리 집 별미예요. 허허.”

덥수룩한 곱슬머리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주인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그 라면집의 단골이 되었다. 주인아저씨는 늘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저 아저씨는 볼 때마다 참 행복해 보여서 좋아.”


그 라면집은 TV에 소개되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늘 길게 줄이 서있었다. 맛있는 파전과 행복한 아저씨의 표정을 보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려가며 그곳을 찾았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아저씨의 웃음은 볼 수 없었다. 장사가 잘되니 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지친 표정이었다.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찾은 그 라면집에 더 이상 그 주인아저씨는 없었다. 그 가게는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변해버린 동네는 월정리일 거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하얀 백사장이 매력적인 조용한 동네였다. 그곳을 지날 때면 늘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가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지금 그곳은 옛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한 카페의 사진 한 장으로 유명해진 그 동네는 이제 카페로 가득하다. 2층에 루프탑이 있는 커다란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제 월정리는 바다보다 가게가 더 눈에 들어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6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인 곳도 많지만, 조용하던 동네가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로 북적인다. 옛 제주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4년 정도 살았던 우리도 이렇게 아쉬운데, 여기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남편과 제주의 길을 걸을 때면, 마을에 작은 가게 하나쯤은 있었고, 그곳에서는 늘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팔았었다. 그때 우리는 파전을 먹으며 지친 걸음을 달랬었다. 이제 제주도 구석구석에는 파전집 대신 카페가 있다. 가끔 해물라면 집도 있긴 하지만, 파전은 팔지 않았다.


“제주도 여행 오면 다 커피만 먹나 봐.”

“해물파전 집이 이렇게 없나? 우리가 차릴까?”

“장사가 안되니 없어진 거겠지.”


우리 추억의 장소들이 많이 사라지고, 많이 변했다. 늘 그대로인 곳은 개발제한 구역인 중산간의 숲이 유일했다. 숲은 예전 그대로였다. 제주에 있는 동안 제주의 숲길을 더 많이 찾아야겠다. 해물파전 대신 커피와 어울리는 케이크를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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