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 봄을 좋아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푸른 하늘, 흩날리는 봄꽃. 봄날에 여행을 떠나며 날씨를 걱정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늘 화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봄은 달랐다. 비가 자주 내렸고, 제주의 봄바람은 유독 거셌다.
4월의 제주에는 고사리 장마가 있다. 하지만 흩뿌리듯 잠시 내리고 사라지는 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장마철 같은 장대비가 자주 쏟아졌다. 제주에 와서 첫 비예보가 있던 날 남편에게 “비 오는 날 주택에는 ASMR 같은 빗소리가 들려 잠도 잘 올 거야.”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양철지붕을 때리는 비와 바람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ASMR 이라더니만..”
“비가 조금 올 때는 괜찮았는데...”
그래도 몇 번 경험한 이후 빗소리에는 익숙해졌다. 우리는 주택의 장점을 마음껏 누려보자며, 집안을 괜히 뛰어다니기도 하고, 듣고 있던 음악의 볼륨을 높여보기도 했다. 밤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좁은 마당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을 바라보았다. 연애시절에도 우리는 종종 함께 별을 보았다. 그래서 난 ‘별 보러 가자’ 노래를 들으면, 남편이 떠올라 좋다고 말했다. 남편은 “박보검이 불러 좋은 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아니다 난 적재 버전을 더 좋아한다.
제주도 숙소에서 두 달을 보내는 동안 현관문을 열었을 때 따라 들어오던 날벌레 말고는 벌레를 거의 보지 못했다.
“바닷가 근처 주택이라 벌레 많을 줄 알았는데, 괜찮다!”
“그러게, 여기 벌레 들어올만한 틈이 없어 보이긴 했어.”
하지만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다음날.... 늘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보다 먼저 땀으로 젖은 몸은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샤워를 위해 욕실 샤워 커튼을 살짝 당겨 커튼을 치는 순간. 무엇인가가 머리 위로 툭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몸을 털어내었다. 그 순간 바닥에 까맣고 작은 물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설마.. 설마.. 그것은 그토록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바퀴벌레였다. 난 소리를 지르며 욕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편.. 바.. 바퀴벌레가 있어.”
남편도 욕실 안 바퀴벌레를 보며 잠시 얼음이 되었다.
“저것 좀 자.. 잡아줘.. 어....”
“바퀴벌레 약은 어딨어?”
남편은 잠시 멍하게 있더니 침착하게 대처를 했다. 바퀴벌레약을 뿌리고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움직임이 멈췄고, 남편은 그것을 잡아 버렸다. 이후 씻기 위해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괜히 신경이 쓰여 계속 욕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샤워를 마쳤다. 둘 다 씻고 나와서 남편의 한마디.
“네가 먼저 씻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래도 예전에는 바퀴벌레를 보며 얼음이 된 남편을 보며 내가 뒤처리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멋지게 잡아주었다. 엄청난 발전이다.
그 사건 이후 집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바퀴벌레가 들어올 만한 틈은 없었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욕실 환풍구뿐이었다. 나온 위치도 욕실이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욕실 환풍구는 24시간 가동되었고, 다시 그 녀석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주택도 벌레가 들어올 빈틈만 없다면 괜찮은 것 같다.
주택에 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은 두 달간 빌린 숙소였고, 마당에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적당한 테이블과 의자는 없었다. 가져온 돗자리라도 깔고, 버너와 불판을 꺼내어 구워 먹자고 말은 했었는데, 한 번도 시도해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하겠지 했었는데, 두 달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이렇게 두 달간의 제주살이를 마무리했다. 집안 마당으로 들어온 고양이와 눈싸움을 하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밤에 마당에 나와 별을 보며 지냈던 주택살이는 만족스러웠다. 벌레 대처를 확실히 하고 원하는 구조의 집을 구한다면, 아파트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제주도를 떠났다. 우리는 추자도에 잠시 머문 후 육지를 가로질러 속초에서 한 달을 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