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는 관동 8경 여행을 하자며 동해안을 거슬러 오를 때 처음 스쳤다. 그리고 추운 겨울의 어느 주말, 오징어순대를 먹어보고 싶다며 충동적으로 떠나서는 정말 오징어순대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렇게 짧게 두 번 스쳐 지나갔을 뿐 우리는 속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구한 숙소는 속초해수욕장 근처에 있었고, 사진으로 봤을 때 실내가 아늑해 보였다. 다른 숙소에 비해 가격까지 저렴했다. “해수욕장 근처니 교통도 좋고, 주변에 먹을 곳도 많겠지.”라고 생각하며 제주도 숙소를 구할 때처럼 주변 환경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예약을 했었다.
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했다. 숙소에 주차를 하고서 한번 놀랐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었지만, 주변에 식당은 많지 않았다. 관광지다 보니 대게나 물회를 파는 식당만 몇 군데 보였는데, 은퇴 후 가난한 우리가 자주 먹을 수는 없는 음식이다. 숙소 바로 앞 편의점 기둥에는 쓰레기가 잔뜩 버려져 있었다. 주차할 자리도 비좁아서 길가에 차를 세워두어야만 했다.
숙소 안은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꼼꼼히 둘러보며 두 번 놀랐다. 단기 숙박 위주로 하다가, 사정이 있어 이번부터 장기 대여를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잘 꾸며진 주방에는 후드가 없어 환기가 불가능했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용품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세탁기는 이번에 새로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먼지 거름망이 망가져 있었고, 전기밥솥도 어디서 중고로 얻어왔는지 낡고 지저분해서 쓰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접시에 기름때가 눌어붙어 있어 엄청 끈적이네.”
“다이소에서 사서 쓰지 뭐.”
“빨래건조대랑 청소기도 없는데.”
“그건 사기 좀 그런데, 집주인한테 한번 물어볼게.”
없는 물건들을 체크해서 집주인에게 말했다. 다음날 집주인은 갖추어지지 않았던 청소기와 빨래건조대를 가져다주었다. 빨래건조대는 쓰레기로 버려진 걸 가져온 것처럼 녹이 쓴 채 부러져 있었고, 청소기는 충전이 잘 되지 않아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같은 차량용 청소기였다. 주방용품도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찾은 숙소였다. 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었다.
“내가 숙소를 잘못 구해서 미안해.”
“집이 문제지, 네가 왜 미안해?”
난 주위에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내 잘못이 아닐까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회사에서도 이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퇴사를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으로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후드가 없으니 창을 열어 환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길가로 나 있는 창 밖은 모텔과 노래방 불빛으로 번쩍거렸고, 쓰레기 냄새가 나서 열고 싶지 않았다. 집안은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난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초를 켜 두어야만 했다. 집은 동향이기도 했지만 블라인드를 내려두고 있으니 하루 종일 어두웠다.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조명을 켜 두었다. 짧게 하루 이틀 머물기에는 청소용품이 없어도 괜찮다. 요리를 하지 않으면 환기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곳은 짧게 머물기에는 괜찮은 숙소였지만, 오래 머물기에 편한 숙소는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머물 곳이라 정을 붙여 보려 했다. 하지만 동네를 둘러보며 세 번 놀랐다. 해수욕장은 여름 개장을 준비하며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해수욕장뿐만 아니었다. 집 근처에만 세 개의 고층 건물을 짓고 있었고, 도로도 여기저기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시내 여기저기에는 아파트 공사 안내가 붙어 있었다. 지금 속초 전역은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속초다. 어디서든 웅장한 설악산이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영랑호가 있었다. 영랑호가 속초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한 바퀴를 돌면 7km 정도 되는 자연호수인 영랑호는 깨끗하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었다. 영랑호 너머로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보이는 풍경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절경이다. 이곳은 산, 호수, 바다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곳이었다. 영랑호 주변으로 숙소를 구했어야 했다. 싼 가격에 혹해 주변 환경을 살피지 않고 숙소를 구한 탓이다. 앞으로 장기 여행을 자주 다닐 테니 이곳에서 큰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위안하기로 했다.
우리, 속초에서 잘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