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청봉은 너무 무리 아닐까?

by idle

“엄마, 대청봉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닐까?”


속초에서 우리가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엄마도 한 번은 오고 싶다 말을 꺼냈다. 산을 좋아하는 엄마는 속초 일정이 잡히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설악산을 가자 했다. 케이블카를 타거나 소공원 계곡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대청봉’을 오르자 한다.


엄마는 올해 일흔이 되었다. 꾸준히 등산을 해서 나이에 비해 건강한 엄마이지만, 요즘 들어 오래 걷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런 엄마와 험준한 설악산을 오르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한계령으로 올라서 오색으로 내려오면 될 거야. 한 9시간 정도 걸릴 텐데 괜찮겠어?”


우린 엄마의 체력을 걱정했고, 엄마는 설악산을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우리를 걱정했다. 좀 더 쉬운 코스로 가자고 엄마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엄마가 언제 다시 대청봉을 오르겠어, 너네가 있으니까 해보는 거지.” 이 한마디에 마음이 약해졌다.


설악산행이 결정된 후 우리는 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설악산 등산은 대피소에서 잠을 청한 후 1박 2일로 종주를 하거나 엄마가 말했던 ‘한계령-오색’ 코스를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피소 운영을 하지 않고 있어, 최근 글은 대부분 당일 코스를 오른 후기였다. 후기를 찾아보다 난 ‘오색’이 두려워졌다. 가파른 오르막에 돌이 많은, 말 그대로 악산 코스였다. 게다가 설악산의 비경을 볼 수 있는 길도 아니라 한다. 가파르기에 짧게 오를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만 빼면 갈 이유가 없었다. 남편과 ‘오색’ 코스를 피해 가는 길을 찾기로 했다. 이왕이면 설악산의 비경도 살필 수 있는 코스였으면 했다.


“이 글 한번 읽어 봐. 소공원으로 올라 한계령으로 내려온 사람이 있네.”


이 코스는 1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오색을 피하면서 대청봉을 오르는 길은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일로 다녀온 사람의 후기에는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 정보가 남겨져 있었다. 새벽 4시에 산을 오를 자신은 없었다. 해지기 전에는 내려와야 할 텐데, 괜찮을까. 그래도 6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올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다 엄마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설악산의 모든 등산 코스를 다녀본 엄마는 설악산을 처음 가본다면 비선대를 꼭 봐야 한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소공원 코스는 설악산의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었다.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하며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코스라고 되어 있었다.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쉬운 코스라고 하니 오색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소공원으로 올라 한계령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설악산을 오르기로 한 전날은 비가 쏟아져 내려서 걱정을 시키더니, 다음날 속초의 하늘은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갈 때보다는 산을 내려온 후 편히 이동하는 편이 더 좋아서, 남편은 전날 한계령 휴게소에 미리 차를 세워두고 왔다.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3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김밥을 사서는 택시를 타고 소공원으로 이동했다.


비선대에서 천불동 계곡을 지나는 길, 양편으로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서있었다. 보통, 산을 오르면 장군바위, 거북바위 등으로 불리는 바위 한 두 개쯤은 마주치게 된다. 주변 환경에 비해 비범해 보이는 그 바위들 아래에는 바위의 이름과 함께 얽혀있는 전설이 적혀있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바위들은 이름이 없었다. 다른 산에서는 특별 대우를 받을 만한 기암괴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편은 바위들을 바라보며


“설악산 무명 바위 전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러게, 다른 산에 있었으면 님을 그리며 슬피 울다 돌로 변한 전설을 가진 바위일 텐데.”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는 엄마와 달리 우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바위에 이름을 붙여보았다. 설악산의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 희운각 대피소 전까지 만이다.

비선대와 천당폭포

희운각 대피소부터는 가파른 길이 이어졌고, 엄마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대청봉을 향해 걸어갔다. 깊은 산길이 이어지다, 가파른 오르막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청봉이다. 소청봉부터 대청봉까지는 평탄한 능선길로, 키 큰 나무가 없어 설악산과 속초시내까지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바위들이 이제는 발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속초에서 며칠을 보내며 바라본 설악산에는 늘 구름이 걸려있었다. 구름이 없는 대청봉을 보기는 어렵다고 들었다.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전해주던 대청봉 이야기에는 늘 ‘운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구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우리는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 있었다. 엄마는 바람도, 구름도 없는 대청봉은 처음이라고 했다. 게다가 대청봉을 향해 걷는 능선 길 주변에는 귀룽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엄마는 올봄에 귀룽나무 꽃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설악산에서 드디어 보게 된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대청봉에서 내려다본 설악산 풍경

드디어 도착한 대청봉에서 사 온 김밥을 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대청봉에 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가족산행인듯했는데, 막내딸이 매고 있던 가방은 등산가방이 아닌 강아지 캐리어였다. 그 속에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시츄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특유의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내딸은 대청봉 표지석 앞에 뒤돌아서서 강아지를 보이게 하고는 허리를 꺾어 활짝 웃어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이 험한 산을 강아지와 함께 오른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시츄를 가족처럼 대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설악산에 감탄하는 가족들과 달리 시츄는 그 시큰둥한 표정으로 잠깐 내려다보다가 웅크리고를 반복했다.


그 가족들을 보낸 후, 우리도 하산을 위해 한계령 길로 접어들었다. 길의 초입은 편안했다. 길에는 귀룽나무, 얼레지, 앵초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역시 한계령 길이 좋구나 했었다. 잠시 동안은. 한계령은 오르고 내림의 연속이었다. 이제 다 왔구나 싶으면 또 오르고, 내렸다. 큰 바위를 넘는 위험한 길이 이어졌다. 그냥 오색으로 내려갈 걸 그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지나쳐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다시는 설악산을 오나 봐라.”하며 산에게 화를 내었다. 그래도 힘들어 지쳤을 때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말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소공원 방향으로 내려다보던 것과 달랐다. 태백산맥이었다. 겹겹이 쌓인 산의 푸른색은 농담이 달랐다. 그렇게 수십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마침내 도착한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총 13시간이 걸렸다.


한계령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하산 후 미리 찾아둔 맛집에서 막국수와 감자전을 먹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사람 중 아마 최연장자일 거야.”

“난 나보다 너네가 더 걱정이었어.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네.”


다시금 우리는 엄마의 체력을, 엄마는 설악산을 처음 올랐던 우리를 걱정했다. 다음날 터미널로 향하는 엄마를 배웅하며, 우리도 일흔까지 설악산 정상을 오르는 체력을 지닐 수 있을까 생각했다.


며칠 후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힘든 산행 이후 몸이 아프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대청봉 오른 이후에 허리 아픈 게 다 나았어.”라고 말했다. 일흔 엄마의 체력이 나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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