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달을 지낼 속초의 숙소에는 해가 들지 않는다. 숙소에서 남편의 표정은 늘 어두워 보였다. 은퇴 후 부지런히 움직이던 사람이, 이제는 멍하니 누워서 게임만 한다. 남편의 표정에서 그늘을 지우고 싶었다. 난 숙박 예약 앱을 열어 적당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 내내 몇 개의 숙박 예약 서비스를 뒤진 끝에 영랑호 주변에서 평이 좋은 숙소를 하나 발견하고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숙소 옮길까? 여기 어때?”
“짐은 다 어쩌고. 괜찮아 그냥 있자.”
이미 한 달치 숙박비를 지불하고 몇 일째 살고 있는 중이다. 약속한 기간이 있으니 집주인이 환불해줄 리 없고, 어떤 숙소도 이곳의 가격보다는 비쌌다. 남편은 불필요한 돈을 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한 달만 참으면 되잖아.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되니까 괜찮아.”
그냥 견디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제주를 떠나기 전 책 출간을 위해 1차 퇴고한 원고를 마무리해서 출판사로 보냈었다. 일주일 후 편집자님 검토 의견이 도착했다. 수정해야 할 내용은 산더미인데, 약속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집에서도 글을 썼는데, 해가 들지 않는 이곳에서는 괜히 우울한 생각만 떠올라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글을 마무리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야 했다.
우울한 마음에 남편과 늦은 시간까지 술을 한잔 하고, 늦잠을 잤다. 이 날은 아침 달리기를 생략하고, 빨리 달리느라 놓쳤던 영랑호의 풍경을 찬찬히 살피기로 했다. 집 근처 식당에서 해장을 한 후, 우리는 영랑호 리조트 주차장에서 늘 달리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번쯤 오를까 고민했던, 범바위. 2019년 고성에서 시작된 화재로 무너져 내린 영랑호 리조트의 별장들… 한때는 오래된 나무로 울창했을 언덕과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은 나무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4km쯤 걸었을까. 확 트인 풍경과 함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타운하우스가 보였다. 이곳에 살면 영랑호와 설악산 울산바위까지 보이는 풍경의 사계절 변화를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동네를 발견하면 나는 늘 부동산 앱부터 열어본다.
“이 동네는 얼마나 하려나.”
“헉 최근 거래 완료 매물이 9억이야. 평수가 크다.”
그 집에 대한 관심은 거두었다. 대신 이 근처 주택 매물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20평대 단층 주택 시세는 3억 정도인 것 같았다. 오래된 집이라도 고쳐 살면 되니까 괜찮지 않을까? 나는 또 신나서는 괜찮아 보이는 매물의 링크 몇 개를 남편에게 보냈다.
“괜찮아 보이네. 근데, 벌써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거야?”
“아니, 지금 사자는 건 아니고 시세를 미리 알아두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거야.”
그 타운하우스 1창 상가에는 공간이 넓은 카페가 있었다. 창밖으로 호수가 보이는 그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였다. 글쓰기에 딱 적당한 카페다. 그날 이후 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일 그 카페를 찾았다.
제주에서 1차 퇴고를 하고, 속초에서 2차 수정까지. 나에게 이번 여행은 아무래도 글쓰기 위한 여행이 되어버린 듯하다. 글쓰기 여행이라니 왠지 멋지다. 집이 아니라 여행지라서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마누라, 글 써서 돈 벌면 속초에 작업실 하나 구해.”
“당신이 쓰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남편의 소망, 이루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