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

by idle

봄이라고 부르기에는 쌀쌀한 기운이 가득했던 3월 초에 제주도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의 나른한 더위가 시작된 6월 말쯤 집으로 돌아왔으니 우리는 밖에서 세 계절을 보낸 셈이다. 집 현관문을 열면서, 긴 여행을 마무리한 우리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동시에 “아, 역시 집이 좋구나!”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이사할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동안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우리 집에서 지낸 엄마는 그동안 벼르던 대청소를 해두고 떠났다. 결혼 후 엄마는 수 없이 “언제 한번 너네 집 대청소해줄까?” 하고 물어봤었다. 엄마가 힘든 게 싫어서 괜찮다고 말한 거였는데, 엄마는 작은딸 집안 청소 한번 못해준 것이 계속 아쉬우셨는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집안 구석 반짝반짝 윤이 났다. 구석구석 숨겨두었던 회색 먼지 뭉치들도 사라졌다. 우리는 짐을 대충 내려놓고는, 깨끗해진 거실 의자에 앉아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늘어져 있었다. 여행은 집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것인가. 이렇게 쾌적한 우리 집을 두고 왜 그 고생을 했을까.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제주도에서 지낸 숙소는 가격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큰 창이 있었고, 낮시간을 보낼 널찍한 테이블이 있었다. 긴 시간을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세세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동네가 좋았다. 바닷가 가까이에 있던 마을은 제주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작은 식당과 카페가 많았다. 속초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모든 것이 불편했다. 집에는 해가 들지 않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아서 우리는 다이소에서 꽤 많은 물건을 구매해야 했다. 모던한 집안 인테리어에 반해 예약을 했는데, 그럴듯한 인테리어는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것이었다.


은퇴 후 일 년에 한두 번은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여행 이후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장기 여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과 동네라는 사실을. 그동안 우리는 여행을 떠나면 집에 붙어있기보다는 밖을 돌아다니기 바빴다. 어차피 오래 머물지도 않을 숙소라 생각해서 늘 숙박비를 아꼈다. 하지만 장기여행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주방이 필요하고, 편한 의자와, 테이블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동네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과 식당 한두 개쯤은 있고, 적당한 산책코스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힘든 일을 겪어도, 그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로써 충분하다. 굳이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힘든 기억마저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니, 무엇이든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속초에서 한 달, 숙소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막국수 투어를 하고, 살고 싶은 동네 고성을 만나고, 엄마와 함께 대청봉을 오르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숙소를 구하는데 더 신중 해질 테니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이 있을까.


다음은 어디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될까. 원래 목표대로라면 올해 11월은 발리에서 한 달을 보내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아직은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 그래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면, 가끔은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려 한다. 우선은 오랜 꿈인 ‘전국 막걸리 기행’부터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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