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막걸리
내가 막걸리를 처음 마셨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맥주파였던 그와 내가 막걸리에 빠져든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2010년쯤 제주도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때 회사에는 속한 팀이 제주도 이동을 결정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는 부류와, 제주도의 낭만을 꿈꾸며 지원해서 내려온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난 후자에 속했다. 그 역시 그랬다. 가족과 친구들이 살지 않는 그곳에서는 회사 동료들끼리 친구가 되어 주었다. 평일에도 지겹게 하루를 보낸 동료들과 주말까지 만나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에 따라 낚시, 스쿠버다이빙, 게임, 탁구와 같은 동호회 활동을 했다. 회사와 나 사이의 선이 뚜렷이 그어지길 바라면서도,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함께 어울렸다.
그와 나는 그렇게 함께 어울리다 연애를 시작했다. 몰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제주시 연동 혹은 노형동은 피해 다녔다. 그 동네는 극장이 딱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에 갈 때마다 한 번쯤 회사 사람들과 마주쳤기 때문에 우리는 극장 데이트 대신 차를 타고 최대한 먼 곳을 찾았다.(잘 숨어 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목격하고 자리를 피해 준거라는 사실은 결혼할 때 알았다.) 그렇게 웬만한 제주도 관광지는 모두 섭렵한 후, 더 이상 새로 갈 곳이 없던 우리는 제주 올레를 하나씩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토요일, 그와 서귀포에 있는 한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나무 그늘 하나 없이 양쪽으로 넓게 마늘밭이 펼쳐진 길이었다. 공기는 매콤했고, 더위에 지쳤고, 슬슬 배도 고파지기 시작했다. 요기할 만한 식당이 없나 주변을 살피던 중 반가운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해물파전, 막걸리 팝니다.’ 별다른 가게 이름도 없는 포장마차였다.
“저기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고 갈까?”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파전과 막걸리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지나온 마늘 밭을 수확하면 얼마의 수익을 얻을까 따위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파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방에서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파전의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파전의 냄새가 배를 꼬르륵거리게 만들었다. 아직은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혹시 그가 듣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눈치를 살폈다. 그는 늘 그렇듯 무심한 눈길로 가게 주인장이 먼저 내어준 막걸리 병을 집어 들고는 아래 위로 뒤집어서 한번, 좌우로 한번 흔들기 시작했다.
“배고프지? 파전 나오기 전에 막걸리부터 한잔 하자.”
그가 내 꼬르륵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얀 막걸리 병에 둘러진 분홍색 띠지에는 돌하르방 모양이 그려져 있고, 세로로 ‘제주막걸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막걸리를 충분히 흔들어 뽀얗게 만든 후 술잔 가득 막걸리를 따랐다. ‘짠’ 입으로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힌 우리는 각자 입으로 술잔을 가져갔다. 아!!! 이 ‘순간’ 나는 막걸리에 빠져들었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청량감. ‘생유산균’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약간 요구르트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와, 이 막걸리 좋다.” 그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막걸리 병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해물파전이 나왔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정신없이 파전을 흡입했다. 바삭, 촉촉한 식감과 신선한 해물의 조화! 막걸리와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해물파전 양이 많아 막걸리 두병을 비우고 나온 우리는 절반쯤 남은 올레길을 헤롱헤롱 거리며 즐겁게 마무리했다. 그 이후 ‘걷기+파전, 막걸리’는 우리의 공식처럼 되어서, 제주에서 하는 데이트는 늘 올레, 오름, 등산을 하며 걷고, 해물파전에 제주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끝났다. 제주를 떠난 이후에도 등산을 하고 나면, 늘 파전에 막걸리를 마신다. 그때마다 제주막걸리가 떠올랐다. 제주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10일밖에 되지 않는다. 택배로 주문하면 20병 단위로 판매한다는데, 두식구가 10일 안에 마시기는 무리다. 제주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제주를 가야만 했다.
떠난 지 6년 만에 제주를 다시 찾은 우리는 이곳에서 두 달 살이를 했다.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제주도 구석구석을 찾아 걸어 다녔다. “그때 넌 배고픈 걸 유독 힘들어했었지, 꼬르륵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어!” 역시 그는 알고 있었다.
6년 전보다 엄청나게 발전한 제주는,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새로운 가게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그 종목이 이전보다 다양하지는 않아서 대체로 카페 아니면 베이커리였다. 예전에는 제주 어디를 가도 파전과 막걸리 파는 집이 흔하게 있었는데,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올레를 걷기 위한 편안한 트레이닝 복장에 챙이 넓은 등산용 모자를 쓰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카페로 가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편안한 우리의 옷차림이 잘 차려입은 젊은 연인들과 비교되어 오히려 튀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도통 파전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와 올레 1코스를 걷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레트로 느낌을 물씬 풍기는 ‘목화휴게소’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평일이라 올레를 걷는 내내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데, 이 오래된 휴게소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은 한 예능 프로에서 장도연 님이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는 장면 이후 유명해졌다고 한다. 우리도 빈 테이블 하나를 찾아 앉았다.
“오징어에 맥주를 시킬까? 막걸리를 시킬까?”
“올레 걸으면서 막걸리 못 먹어서 아쉬운데, 막걸리로 마시자.”
오징어 하면 맥주인데.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막걸리를 마셔야 했다. 이 주변으로도 파전집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가 맥반석에 잘 구워진 반건조 오징어와 제주 막걸리를 들고 테이블로 왔다. 오징어 맛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오징어는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맥반석 구이의 힘인지, 제주도 바다 뷰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오징어를 한입 물어뜯고, 씹어 넘긴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제주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시고는 앞을 바라본다. 이 날은 흐려서 하늘은 회색빛을 띠었고, 바다와 하늘의 색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 경계의 색만 살짝 더 진하다 느껴질 정도라, 멀리 보이는 우도가 하늘에 동동 떠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제주의 빛깔이다. 사실 제주는 쨍한 푸른빛보다는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탁한 색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처음 시도해본 오징어와 막걸리의 조합이 꽤 괜찮았다. 막걸리는 꼭 전과 같이 먹어야 한다는 건 우리의 편견이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편견을 쌓으며 살아가는가.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모른 채, 내 생각이 옳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해서, 그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쌓인 편견의 벽이 더 높고 두텁다. 그리고 그것이 편견 혹은 오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괜한 부끄러움에 더 강한 주장을 더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정답과 원칙만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영향은 아닐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라는 조직은 조금이라도 원칙에 엇나간 학생들을 보면 비난하고 혼냈다. 여자가 커트머리를 하면 남자와 구분되지 않아서 안 된다거나, 여학생은 검은색 속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교칙을 정해놓고서는 따르라고 말했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 커트 머리를 하고 온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담임은 화를 내면서 가위를 가져와 그 학생의 머리를 더 짧게 잘라버렸다. 아직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시기에 조금 튄다는 이유로 그런 폭력적인 장면을 목격하면, 튀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는 편견이 쌓이게 된다.
난 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자랐다. 나의 학창 시절과 회사생활은 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했다. 난 혼나는 게 두려웠다. 숨어서 지내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 조기 은퇴라는 조금은 튀는 행동을 해버렸다. 조직을 떠난 세상은 무서웠다. 왜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지 않느냐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때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머리카락을 잘렸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대충 잘린 짧은 머리에도 그 아이는 참 이뻤다. 작은 얼굴과 큰 눈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당당했다. 조금 다르게 살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 안에 쌓여있는 편견을 하나씩 버리면서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막걸리는 파전이 아닌 쾨프테(다진 고기에 각종 양념과 야채를 넣어 완자로 만들어 굽거나 튀긴 터키의 전통요리)와도 어울릴지 모른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경험해보지 않고서, 생각만으로 ‘내가 옳아’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제 ‘걷기+해물파전, 막걸리’ 같은 공식을 세우는 것 대신, 새로운 조합을 시도해봐야겠다. 그 조합이 실패하면 어떤가. 실패는 나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얻는 일이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파전집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막걸리를 마시면 된다. 막걸리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훌륭하니까.
제조 : (주)제주막걸리
원재료 : 쌀, 국, 아스파탐, 구연산, 젖산, 효모
알코올 : 6%
유통기한 : 10일
특징 : 생 유산균 막걸리를 강조하는데, 마셔보면 약간 요구르트 냄새와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적당한 단맛과 청량감을 가진 막걸리로, 균형이 잘 잡혀있다. 보통 식당에서는 하얀 뚜껑 막걸리를 파는데 이는 수입산 쌀로 만든 막걸리다. 제주도 마트에서는 녹색 뚜껑으로 된 것도 파는데, 이는 국내산 쌀로 만든 막걸리다. 생막걸리다 보니 제조일자 별로 맛이 조금씩 다르다. 제주도 사람들은 최근에 제조된 막걸리가 더 맛있다고들 하지만 발효 정도에 따라 단맛과 산미가 달라지니 그것도 각자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