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막걸리 : 달홀주
걷기 좋은 길을 찾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여름휴가철을 대비해 온통 공사 중인 속초에 있었다. 공사 소리에서 벗어나 우리가 강원도에 있음을 느끼게 해 줄 조용한 숲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제주도 올레의 유행 이후 요즘은 각 지자체마다 둘레길을 개발하고 있어서인지, 갈 곳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였다. 어디를 가야 할지 지도를 열어 가까운 곳부터 훑기 시작했다. 속초 근교 고성에 있는 ‘송지호’가 눈에 들어왔다.
“송지호? 이 지역 유명한 사람인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는데, 호수 이름이었네.”
송지호 둘레 6.5km를 따라 걷는 길이 있었다. 사진 속 송지호는 넓은 호수 주변으로 송림이 울창하여 더운 날씨에도 걸을만해 보였다. 6.5km 정도는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송지호 철새 관망타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타워 주변은 울창한 송림 아래로 데크 길이 정비되어 있었으나, 그곳을 조금 벗어나면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울창하던 나무도 어느덧 사라졌고, 유독 더운 날이었다. 땀을 흘리며 걸었으니 잠시 앉아 쉴 곳이 필요했다. 송지호를 따라 절반쯤 걸었을까? ‘왕곡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초가와 기와집이 겹겹이 모여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가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식당 하나쯤 있지 않을까. 우리는 둘레길을 벗어나서 왕곡마을로 접어들었다.
왕곡마을 입구에는 ‘왕곡마을 전통 민속체험 축제’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축제를 하는 것 치고는 동네가 조용했다. 마을 입구 왼편으로 초가지붕의 정자와 높은 그네가 있었다. 그 앞 조그만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았고, 정자에서는 부모들이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멀리서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들려왔지만, 동네에 관광객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민속체험존에는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천막 아래로 테이블 한 두 개가 놓여있는, 동네 축제 전형적인 포장마차가 보였다. “감자전에 막걸리나 먹을까?” 우리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우리 말고도 한 커플이 앉아서 국수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고 있었다.
“저희 메밀전이랑 막걸리 하나 주세요.”
감자전을 팔지 않아 메밀전을 하나 시켰다. 전을 부치는 동안 막걸리부터 먼저 날라 왔다.
“달홀주? 고성 막걸리인가 보다.”
“요즘은 제대로 전국 막걸리 기행을 하는 기분이 드네.”
이번 여행기간 내내 식당에 들어가면 맥주 대신 당연한 듯 막걸리를 시켰다. 그가 달홀주 병을 집어 들었다. 막걸리 병을 흔들어 가라앉은 침전물을 맑은 술로 퍼지게 하는 역할은 늘 그가 담당한다. 내가 흔들면 탁한 막걸리가 아닌, 맑은 청주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한 번의 실수 이후 그는 나에게 막걸리 잔을 따르게 하는 법이 없다. ‘콸콸콸’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는 소주, 맥주, 막걸리 할 것 없이 아름답다. 그가 노란 플라스틱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짠!’ 건배를 할 때면 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꼭 입으로 낸다.
“앗! 이거 너무 맛있는데!.”
“강원도 쌀의 맛인가! 해양심층수 때문인가!!!.”
여행을 떠나면 지역 막걸리를 늘 시키긴 하지만 그 맛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달달하면서도 목을 간지럽히는 청량감을 주는 술. 하지만 달홀주는 달랐다. 다른 막걸리보다 조금 덜 달고, 구수한 맛이 났다. 청량감 또한 적당한 것이 좋았다. 곧이어 메밀전이 나왔다. 이 집 맛집이네! 힘들게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순식 간에 메밀전 하나를 뚝딱했다. 막걸리 양이 애매하게 남았고, 안주가 떨어졌다. 이대로는 아쉽다. 남은 술을 보며 고민하던 중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토리묵도 하나 더 시킬까? 막걸리 한 병 더?”
“그래”
“넌 한 번도 싫어, 한 적이 없어.”
“늘 당신과 같은 맘이니 그렇지!”
도토리묵을 기다리며 남은 잔을 비우고 있었다. 이 포장마차의 매력은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관광객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 대화의 장이 벌어져 있었다. 고성 사람들의 말투는 약간 영화 속에 나오는 북한 사람들이 쓰는 말씨였다. 그들은 모여서 이런저런 동네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맛깔나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우리는 대화 대신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서 들어와 펜션을 하고 있는 한 주민과 법정다툼까지 벌어진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동네 커플이 아이를 낳은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찌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할 것만 같았다. 그때 포장마차 안으로 아저씨 한분이 새로 들어섰다.
“오늘 사람도 없는데, 이 떡 좀 사.”
“그래, 그래, 네가 이 동네 최고 갑부잖아.”
“그럼 한 6개만 줘봐.”
“갑부가 6개가 뭐래. 한 10개는 사야지.”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에게도 떡 하나를 내주신다.
“이거 하나 먹어봐요. 오늘 아침에 쪄서 맛있어.”
“아, 저희가 이거 받아도 될까요. 괜찮은데.”
“저 아저씨가 동네 최고 부자야, 괜찮아.”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우리 동네 야기가 재밌지? 근데, 둘은 무슨 사이야? 애인인가?”
“저희 부부예요.”
아직 젊은 미혼의 커플로 본 것일까? 나이 든 커플이 다정해 보여서 불륜 사이로 의심한 것일까? 그곳을 나오며 그와 숨은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아무튼 우리 사이가 좋아 보이긴 하는 거야라고 좋게 결론 냈다. 막걸리 두병을 비운 우리는 기분 좋게 취했고, 별 이유 없이 마주 보며 웃었다. 이 기분이 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묵직한 달홀주와 맛있는 메밀전과, 맛깔나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아주머니들 덕분에 앞으로 고성을 더 자주 오게 될 것만 같다.
제조 :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달홀주조
원재료 : 쌀, 밀, 정제 효소, 효모, 먹는 해양 심층수, 구현산, 사카린나트륨
알코올 : 6%
유통기한 : 30일
특징 : 달홀은 고구려 시대 강원도 고성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고성 해양심층수와 고성 쌀로 빚은 막걸리다. 감미료가 있어 달달함이 있으나 과하지 않고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