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것을 상징하는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와 어디로 신혼여행을 떠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휴양지에 가서도 전투적으로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우리에게, 바닷가 리조트로 떠나는 신혼여행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장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호주에 가서 울루루를 보고 올까?”
그가 제안했다. 신혼여행으로 ‘세상의 중심’을 보고 오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될 것 같았지만, 그곳까지는 이동만 하다가 휴가가 끝날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드디어 정답을 찾았다는 기쁨으로 뿌듯해하다가, 시큰둥해진 내 표정을 보고는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다시 세계지도를 펼쳤다. ‘세이셸’이 보였다. 여행 다큐를 보면서 언젠가는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이동이 쉽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비싼 리조트 가격이 부담이었다. 조금 저렴한 숙소는 없을까 찾아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오로라 보러 갈까?”
아 바로 이거다. ‘오로라’를 보는 것은 ‘언젠가’는 해야지 했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었다. 신혼여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간다니 정말 멋진 선택이라 생각했다. 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오로라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만약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면, 이 여행이 너무 허무해지지 않을까? 다음으로 떠오른 곳은 북유럽의 도시들. 핀에어 광고에는 늘 오로라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북쪽의 도시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여행 후기 사진들을 보면 다들 두꺼운 옷과 장화로 무장했고,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발견한 도시 트롬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북극권 도시 중 최북단에 있으면서도 가장 따뜻한 도시. 그곳은 북극의 파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도시였다. 그렇게 우리는 노르웨이 트롬쇠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트롬쇠에는 오후 늦게 도착해서, 첫날은 쉬고 다음날부터 오로라 투어를 하기로 했었다. 예약했던 숙소에 도착하자 우리를 마중 나온 집주인이 말했다. “오늘은 맑은데, 내일부터 흐려서 오로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오늘 투어를 하는 건 어때요?” 오로라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데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숙소에 짐만 두고 내려왔다. 집주인은 이미 투어를 떠난 가이드에게 연락해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했다. 엄청나게 큰 키와 금발의 노르웨이인 커플이 투어를 이끌고 있었고, 우리 외에는 중국인 대학생 둘이 함께였다.
가이드는 우리를 뾰족한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장소로 데려갔다.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운 곳이어서 별이 더욱 밝게 빛났다.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가이드가 손가락 끝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높은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희미하고 작은 연두색 선이 멀리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더니, 곧 거대한 연두색 선들이 춤을 추듯 가까이 왔다. 이윽고 우리들 머리 바로 위에서 연두색, 보라색 선들이 춤을 추듯 울렁거리며 쏟아져 내렸다. 말로만 듣던 오로라 댄싱이었다. 오로라의 춤에 어울릴 듯한 웅웅 거리는 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우리들 모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오로라 댄싱을 바라보며 괴성을 질러댔다. 괜히 발도 한 번 동동 굴렀다. 이거 현실 맞아? 내가 정말 오로라 보고 있는 거야? 오로라가 추는 춤처럼 내 가슴도 울렁거렸다.
우리는 트롬쇠에서 3일 밤을 보냈지만, 첫날밤에 본 그 오로라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날 집주인 아저씨의 그 제안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로라를 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트롬쇠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다. 북극의 파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트롬쇠는 매력적인 북극의 도시였다. 해가 뜨지 않는 극야의 어스름한 하늘을 대신 밝혀주는 것처럼 이곳의 조명은 유독 밝았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집집마다 창가에 별을 걸어두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동참하기 위해 가게에 들려 별 모양 조명을 하나 샀다. 종이로 만들어진 조명이지만 무려 7만 원이 넘었다. 역시 살인적인 북유럽의 물가다.(그 조명은 아직도 우리 집 거실을 밝히고 있어 돈 값 이상을 했다.) 트롬쇠의 모든 곳은 앞에 ‘최북단’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우리는 최북단 성당, 최북단 도서관, 최북단 버거킹을 돌아다녔다. 평범한 장소도 앞에 ‘최북단’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근사한 곳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최북단 브루어리를 찾았다.
트롬쇠는 1인당 펍의 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Mack 브루어리는 1877년에 설립된 전통 있는 맥주 양조장이다. 가이드를 담당한 여성분은 자신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관광객 대부분이 영어권이 아닌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노르웨이 사람의 영어는 오히려 알아듣기가 편했다. 브루어리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우리는 그곳에 붙어 있는 욀할렌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이곳은 무려 1928년부터 시작된 트롬쇠의 가장 오래된 술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맥주를 마셨다. 아… 이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진한데 목 넘김도 좋다. 이곳의 맥주에 빠져든 우리는 여행 내내 Mack 맥주를 달고 살았다. 트롬쇠를 떠나 베르겐으로 이동하는 날, 우리가 사랑한 이 맥주를 사가야 하지는 않을까 하고 그와 얘기했다.
“맥주는 너무 무겁잖아. 베르겐에서도 팔겠지.”
아… 하지만 실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 거였다. Mack은 딱 트롬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였다. 베르겐에서도, 오슬로에서도 Mack은 팔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Mack을 마시기 위에 트롬쇠에 한번 더 와야 할 것 같다. 그때는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이 아니라 해가지지 않는 여름에 와서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며 이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가만있자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막걸리 역시 그렇다. 생막걸리는 술을 담그는 과정에서 열처리를 하지 않아 미생물이 살아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맛이 시원하고 탄산가스로 인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이유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다. 각 지역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는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대형마트에 유통되는 막걸리는 열처리로 미생물을 살균한 막걸리거나 각 지역 근교에 있는 생막걸리만 팔았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지역 막걸리처럼 탄산을 느끼기는 힘들다. 부드러운 막걸리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우리는 생막걸리의 청량감을 사랑한다.
술이 여행하지 않으니 우리가 떠나야 했다. 오직 그것을 상징하는 장소에 가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 이후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전국 막걸리 기행’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백수다. 때가 되었다. 마음 내킬 때마다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막걸리를 마셔볼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