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고을 소백산 막걸리
스마트폰 앨범에는 내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가 지도 위로 표시되는 기능이 있다. 언젠가 이 지도를 사진으로 빽빽하게 채우는 것이 나의 목표 중 하나다. 난 가끔 엄지와 검지로 지도를 키웠다 줄였다 해본다. 우리나라 지도 위로 올려진 사진을 둘러보고 있는데, 지도 중앙이 왠지 허전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충주, 제천 이쪽을 한 번도 안 가봤네!”
호수가 유명한 곳이라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가 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곳을 사진으로 채우고 싶어서, 우리는 제천을 향했다.
1985년, 충주댐으로 인해 충주, 제천, 단양 군에 걸쳐 호수가 생겼다. 충주에서는 충주호로, 제천에서는 청풍호로 불린다고 한다. 우리는 제천에서 그곳을 가기로 했으니 청풍호로 가는 것이다. 청풍호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길은 좋았다. 차에만 타면 꾸벅꾸벅 졸아버리는(난 멀미라고 주장한다) 나도 눈을 말똥 하게 뜨고 주변을 보며 달렸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웬일로 안 자고 도착했냐고 한다. 난 가끔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우리는 긴 줄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케이블 카를 타고 비봉산 정상을 향할 수 있었다.
청풍호는 정말이지 거대해서,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릴만했다. 푸른 산과 호수의 푸른빛이 어우러졌다. 이전에는 산이었을 봉우리가 호수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였다. 내가 청풍호를 간다는 말에 엄마는 그곳에 악어가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난 갸웃거리면서도 그에게 ‘청풍호에 악어가 있데’ 했었는데, 정상에 올라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멀리서 악어가 꿈틀거리고 있는 듯한 봉우리가 보였던 것이다.
“엄마가 얘기한 악어가 저 건가 봐.”
“거봐, 진짜 악어라고 우기더니만.”
전망대를 돌아보고 다시 내려가려 할 때, ‘약초 숲길과 파빌리온 가는 길’ 안내를 발견했다. 왕복 35분이면 충분하단다. 걷는 걸 좋아하는 우리다. 게다가 35분이면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그 길에 접어들자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왕복 시간은 나와 있었지만, 그 길이 평지라는 말은 없긴 했다. 그리고 여기는 비봉산 정상이다. 말이 없어도, 예상했어야만 했다. 그러니 거짓말이 아니긴 한데..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길은 아니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무려 531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이 많긴 했지만 향기로운 숲의 내음을 맡으며 걷기는 좋았다. 마침내 파빌리온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축복의 종’을 울리며 건강과 풍요로움을 기원했다.
더운 날씨였다. 청풍호 파빌리온을 다녀온 후 땀을 잔뜩 흘려서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했다. 그는 다 생각한 게 있다는 듯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하자.”
전망대에는 사케와 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어묵을 안주로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단고을 소백산 막걸리’였다. 다른 막걸리보다 좀 더 달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창 밖으로는 청풍호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배가 고팠기에 순식간에 어묵 하나씩을 다 먹고는 막걸리 한 모금에 청풍호 풍경 한 번 보며 막걸리를 마셨다. 땀 흘리고 난 이후의 술 한잔에 다른 건 필요 없었다. 그것은 막걸리 한잔의 축복이다.
막걸리를 다 마시고 가게를 나서는데 한 무리의 가족이 들어섰다. 부부와 할머니 그리고 아이 둘이었다. 음료를 주문하던 아저씨가 가게 점원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침착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하지만 차분한 그녀의 모습에 그 아저씨는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 가게 주인 데려와.”
“제가 주인인데요.”
“네가 무슨 주인이야? 웃기고 있어 빨리 주인 오라고 그래.”
밖을 나서려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가 무서워 멈칫했다. 그도 가만히 서서 잠시 그 아저씨를 바라보더니, 점원과 아저씨 사이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만하시죠.”
그 아저씨는 못 들은 척 가게를 나서는 것 같더니 다시 뛰어 들어왔다. 우리는 그들이 완전히 밖을 나갈 때까지 그곳을 지켰다. 그가 다시 막아서자 그 아저씨는 ‘아휴 내가 참아야지.’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식은땀이 흐를 만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밖을 나서며 그가 말했다.
“저 사람, 여자라서 저런 거야.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거지.”
“소리 질러서 엄청 무서웠어. 별일 없어 다행이야.”
“약자에게 강한 척하는 사람 정말 싫어.”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오면서 그는 이제 이런 일 나서지 말아야 하는데, 한 대 맞는 건 무서운데 하며 이제야 긴장이 풀어진 듯 씩 웃었다. 이런 종류의 위협은 여성으로 태어나서 종종 겪는 일이긴 하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나도, 이런 식의 무서운 경험이 몇 번 있다. 가만히 지하철 안에 서 있는데, 왜 자기를 무시하냐며 소리를 지르면서 따라온 아저씨가 있었다. 그때, 옆에 서있던 청년이 말려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때 내가 받았던 도움을 떠올리며, 그런 일에 피하지 않고 도와준 그가 역시 멋지다고 생각했다.
간혹 자신이 가진 강한 힘을 이용하여 약한 자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몇몇 사람들이 당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한 두 번은 그런 일을 당한 경험이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와서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고 달아나는 사람. 목을 조르고 위협당했던 경험들… 그런 얘기를 나누는 우리는 그 골목은 피해서 다녀야겠다는 소극적인 방어자세만 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나서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제조 : 단양양조장
원재료 : 쌀, 밀가루, 물엿, 국 효모,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알코올 : 6%
유통기한 : 30일
특징 : 달달하고 부드러운 술, 약간 시큼함도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