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막걸리
5년 전 늦은 여름 그와 대청호를 걷고 있었다. 하늘이 심상치 않다 생각은 했었는데, 점점 먹구름이 짙어지나 싶더니 비가 쏟아져 내렸다. 모처럼의 주말 나들이여서 어두워지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비를 맞으며 계속 걷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대청호 대신 가까운 도시를 가자고 했고, 그렇게 비를 피해 청주로 향했다. 청주는 처음이라 “보통 도청 주변이 번화하지 않나?”이런 추정으로 ‘충북도청’을 목적지로 찍었다. 도청 주변에 주차를 하고 생각해 보자면서.
청주로 가는 길,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구름은 잔뜩 끼어있었지만 더 이상 비는 내리지는 않았다. 충북도청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곳에서는 축제가 열렸고,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에 들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찾았는데, 비도 그치고, 축제까지. 비가 와서 운이 나쁜 날인 줄 알았더니만 운수 좋은 날이 된 그날의 기억.
‘청주 야행, 밤드리 노니다가’라는 문화재 체험 축제였다. 청주 도심 속 12가지 문화재를 보고, 듣고, 체험하는 행사. ‘중앙공원-철당간-충북도청-충북문화관-청주향교-성공회 성당’에 가서 인증 도장을 찍고, 그곳에 있는 문화해설사에게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청주에는 생각보다 많은 도심 속 근대문화 유적이 있었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보는 문화재는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잠깐 구경이나 할까 하고 시작했던 축제를 즐기다 우리는 밤늦은 시간까지 청주에 머물렀었다.
축제를 즐긴 후 길거리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먹었던 간장 삼겹살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간장으로 숙성된 부드러운 돼지고기의 육질. 청주는 음식이 맛있다는 기억으로도 남았다. 그렇다면! 막걸리도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에게 청주로 막걸리를 마시러 가자 했다. 그때 우리는 오전 달리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청주라니 하는 표정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나와 함께면 이런 일은 흔하니까 “그래, 청주 어디로 가보지?”라고 익숙하게 물었다. 난 서둘러 도심이 아닌 곳에서 걸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 청주 외곽에 있는 ‘상당산성’이 걷기 좋다는 글이 몇 건 보였다.
“상당산성 한 바퀴를 돌고, 거기서 막걸리랑 파전을 먹자! 산성 내에 식당도 있다는 거 같아.”
‘상당’은 청주의 옛 이름으로, ‘상당산성’은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토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수한 것이다. 상당산성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잘 보존된 유형의 문화재였다. 둘레는 4.2km 정도로 성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보는 길이 있었다. 길을 걷기에 앞서 우리는 상당산성 한옥마을에서 막걸리부터 마시기로 했다. 이곳에는 식당이 제법 많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마을 초입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부전문집이라 잠시 고민했으나. 막걸리 반되와 함께 파전을 주문했다.
이곳은 반찬을 직접 가져다 먹어야 했는데, 이 셀프바에는 비지장도 있었다. 비지장은 고소했고, 여느 비지처럼 거칠지 않았다. 비지를 좋아하지 않는 그도 맛있게 먹을 만큼. 잠시 후 파전과 막걸리가 나왔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해 낡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가 담겨 나왔다. 그가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막걸리를 따랐다. 건배를 하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다른 막걸리보다 좀 더 달달 시큼하고, 청량감은 아쉬웠지만 목 넘김이 좋은 깔끔한 막걸리였다.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젓가락으로 파전을 찢어서 한입 먹었다. 가격도 착한데! 양도 많고! 바삭하니 맛있기까지! 완벽한 파전이었다. 두부전문점이라니 다음번에는 두부에 막걸리를 마셔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후 뒤에서 묘한 냄새가 풍겨왔다.
뒷 테이블에 앉아 있는 분들이 좀 소란스럽다 생각은 했었다. 오후 3시에 벌써 만취한 듯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왕년에 내가~’, ‘그 자식이 어쩌고~’ 듣고 싶지 않아도 목소리가 커서 어느 순간 둘의 대화보다는 뒷 테이블의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있을 때였다. 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빨리 먹고 나가자’라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없이 막걸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 냄새 뭐지, 설마 담배 냄샌가?”
뒷 테이블 아저씨는 소란스러운 것으로도 모자라 식당에서 담배까지 피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해 자리를 떴다. 계산을 하면서 말했다.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건 조치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싫어하는 담배냄새를 맡아도 참아야 했던 그 시절. 어디서든 담배를 피웠던 그분들은 지금의 실내 금연 정책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술을 한잔 하는 그 순간, 담배 한 모금이 몹시 간절했고, 지금 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 세월 그러했듯 담배를 꺼내 피웠을 것이다. 그로써는 담배연기가 뭐가 어때서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제기한 후 식당을 나서는 우리가 이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무심코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세상은 계속 변하고, 우리는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라때는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꼰대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젊은 사람 중에도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젊은 꼰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른 은퇴를 하고 나서 걱정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였다. 회사에 있으면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그들의 이야기와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일하는 업계도 빨리 변화하는 곳이라, 난 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려 했었다. 하지만 은퇴를 한 지금, 이전처럼 쉽게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고, 이전처럼 의무적으로 트렌드를 알 필요도 없어졌다. 식당을 나오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더 나이 들어서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변화에 좀 더 민감해져야겠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저 아저씨들 보다가 생각이 났어.”
씁쓸한 마음으로 상당산성을 한 바퀴를 돌았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이었다. 변하지 않은 상당산성에 올라 변화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는 변해야만 하는 것과 변하지 않고 보존해야만 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저기가 오송 신도시인가?”
“청주 공항도 보인다. 지금 비행기 뜨고 있어.”
힘들게 높은 곳을 올랐기 때문에 청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오르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높은 곳에 올라야만 보이는,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도 산을 오른다. 그리고 힘들게 노력한 이후 맛보는 성취감을 알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변화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할 거다.
돌아오는 길, 아쉬운 마음에 가까운 하나로마트에 들렸다. 가게에서 만들어 파는 막걸리가 아닌, 그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도 한 병 마셔봐야 할 것 같아서다. 청주에서는 ‘참가덕 막걸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두병을 사 왔다. 마트에서 사 온 막걸리와 추석 제사를 지내고 남은 전을 데웠다(9월 30일이었거든요). 얼마 전 마트에서 산 양은 막걸리 잔도 꺼냈다. 천연 탄산이 들어 있다고 해서 청량감 있는 막걸리를 기대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기포가 생기긴 했으나 부드럽게 넘어간다. 무난한 맛의 막걸리. 이제 다음 막걸리 기행은 어디로 가나.
제조 : 청추 참가덕
원재료 : 팽화미, 팽화 밀가루, 입국, 효모, 사카린나트륨, 조효소제
알코올 : 6%
유통기한 : 25일
특징 : 탄산이 들어있다고 되어 있으나 생각보다 부드럽다. 무난한 맛의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