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안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문경 막걸리

by idle

요즘 우리는 가보지 않은 동네를 찾고 있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 배웠으니, 그렇게 힘들여 찾고 싶지는 않은 장소였다. 그랬던 우리가 문경을 찾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지나는 길목에 보였고, 유명한 장소이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킹덤’을 찍은 장소가 문경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킹덤을 찍었다는 오픈세트장은 가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대표 먹거리를 찾아서 먹어보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식당을 찾으며 지나온 길거리 두 집 건너 한집 정도는 고추장 삼겹살을 팔고 있었기에, 메뉴는 자연스레 ‘고추장 삼겹살’이 되었다. 한산한 평일 저녁 시간, ‘사람 많은 식당이 맛집이지’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그가 선택 장애를 겪고 있을 때, 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 대통령의 맛집이래.”

“깔끔해 보이네, 다 비슷비슷할 테니 여기서 먹자.”


그가 석쇠구이 정식 2인분과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석쇠에 잘 구워진 고추장 삼겹살을 기다리며, 미리 나온 반찬에 손을 댔다. “오, 반찬이 맛있네. 반찬이 맛있으면 메인도 괜찮은 법이지!” 대통령이 인정했다는 고추장 삼겹살 맛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갔다. 하지만 메인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고기의 두께는 식감을 느끼기에 조금 얇았고, 간이 짜서 메인보다는 반찬에 자꾸만 손이 갔다. 그래도 함께 나온 ‘만복 생막걸리’를 곁들이니 짠맛이 중화되면서 삼겹살의 맛을 살렸다. 적당히 달고 청량감이 있는 막걸리. 막걸리가 대체로 그런 맛이긴 하지만, 이 막걸리는 그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만족스러웠다.


‘대통령의 맛집’이라는 권위에 혹하여 식당을 선택한 것에 후회했다. 대통령이 자주 찾는 집이라 해서 맛집은 아닐 터인데 말이다. 다른 식당의 고추장 삼겹살 맛은 달랐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고추장 양념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어서 굳이 다른 식당과 비교는 하지 않기로 했다.


유명한 식당의 맛이 나에게도 만족을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입맛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니까. 그래도 유명한 식당이 맛있을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높으니, 우리도 종종 유명한 식당에 가서 줄을 선다. 기다린 만큼 보람을 느끼지 못한 적도 많지만 맛이 있다면, 다음번에도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추장 삼겹살과 만복 생 탁배기


다음날은 문경새재를 걸었다. 과거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넘은 힘든 고갯길이라 들었는데, 막상 걷다 보니 그리 고생스럽지 않은 유람길처럼 느껴졌다.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폭포, 그 옆으로 서있는 기암괴석들. 천상 한량인 그가 조선시대에 양반으로 태어났다면, 이곳에서 제대로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바위에다가 낙서도 좀 하면서.


“이 정도면, 선비들이 과거를 핑계로 여행 다닌 거 아닐까? 당신이 만약 조선시대 사람이었으면, 과거 안 보고 여기서 놀다가 돌아갔을 거야.”

“그건 인정.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평생 놀고먹었을 텐데.”


김해 김 씨인 난, 아마도 조선 후기에 돈을 주고 산 양반 가문일 거라 짐작하고 있다. 과거의 난, 풍류를 즐기기보다는 시중을 들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김해 김 씨의 수(인구 대비 8.97%, 2000년 인구총조사)를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가정이다. (이런 얘기를 엄마는 싫어하지만) 숙종 때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의 6% 밖에 되지 않았던 양반의 수가, 정조에 이르면 30%, 고종 때는 90%가 되었다고 하니, 내가 그 6%에 포함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문경새재는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가볍게 걷기 좋았다. 난 걷다가 휴게소를 볼 때마다 “여기서 한잔?” 하고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조금만 더 가보고.”라고 말했다. 잠시 쉬어가는 장소를 찾는 것에도 그는 늘 신중하다. 내가 갑자기 당이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다.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아무 식당에 들어갔을 때면 후회한 적이 많았기에, 그는 나와 함께 외출할 때면, 사탕이나 초콜릿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3 관문 조령관을 지나면, 거기서부터는 충북 괴산의 연풍새재다. 조령관을 돌아 나오면서 그가 말했다. “아까 2 관문 지나서 오른쪽에 있던, 휴게소로 가자.” 그는 문경새재의 모든 휴게소를 둘러보고 나서야 우리가 쉴 곳을 정했다. ‘동화원’이라는 이름의 그 휴게소는 나도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우리는 잘 꾸며진 정원 중간쯤에 있는 돌계단 옆 노란색 파라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두릅전에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한 병에 무려 7,000원이나 하는 막걸리였다. 휴게소 프리미엄인가. 도대체 어떤 막걸리기에 이리도 비싸단 말인가.

동화원 휴게소


잘게 다져서 바삭하게 부쳐진 두릅전과 함께 나온 막걸리는 ‘구름을 벗 삼아’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의 막걸리였다. 투명한 병에 막걸리의 하얀 액체가 보이는. 디자인에도 꽤나 신경을 쓴 티가 났고, 용량도 무려 1L였다. “양이 많아서 비싼 거였네. 실컷 마시겠어.” 이렇게 얘기하면서 조심스럽게 막걸리를 따랐다. 이 막걸리 역시 뒷맛이 깔끔하고 아주 균형 잡힌 맛의 막걸리였다. 막걸리의 단맛이 다른 막걸리에 비해 좀 더 고급스럽고 깔끔하다고 해야 하나. 찾아보니 ‘구름을 벗 삼아’ 막걸리는 ‘문희’라는 고급 막걸리를 만드는 ‘문경주조’에서 만든 막걸리로 비싸다는 찹쌀과 우리밀 전통 누룩으로 만들어진 막걸리였다. 비싼 이유가 있었다.


두릅 특유의 향을 가득 품고 바삭한 식감까지 잊지 않은 두릅전의 맛 역시 훌륭했다.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전라도 음식을 먹고 자라서, 경상도 보다는 전라도 음식이지 라고 부심을 살짝 부리는 그도 인정했다. 이렇게 권위(유명 맛집, 유명인이 인정한 식당)에 휘둘리지 않고 감으로 선택한 식당의 음식이 맛있으면 괜히 더 기분이 좋아진다.

두릅전과 구름을 벗 삼아


내가 음식에 대해 스스로 어떤 평을 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난 맛의 기준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신 가리는 음식이 많았다. 음식의 형태나 색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음식은 먹지 못했다. 닭이 다리를 꼬고 누워 있는 모습에 젓가락을 댈 수 없어 먹지 못했던 삼계탕, 짐승의 내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 곱창, 비릿한 냄새가 싫던 고등어구이. 이런 음식을 먹게 된 건 다 그를 만난 이후다. 경험한 음식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나도 어떤 종류의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별 다른 불만 없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도 이제는 만족스럽지가 않다. 어릴 때는 엄마와 길거리에서 떡볶이에 튀김만 먹어도 행복했는데…


엄마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안동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 거야 하는 산속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시골이었는지, 엄마가 고등학생 때서야 집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당시 막걸리는 농주라고 불리며, 농사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음료였다고 한다. 1960년대, 식량 부족으로 가정에서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면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들여온 저렴한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몰래 만들어서 밀주, 밀가루로 만들기도 해서 밀주라고 불렀어.’

‘막걸리를 빚고 난 술지게미가 달달해서 그걸 그냥 집어 먹기도 했는데, 엄마는 찌꺼기만 먹어도 취하는 것 같았어.’


엄마의 막걸리는 달달하고 몽롱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리 달지 않고 시큼하기만 했을 술지게미만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맛의 기준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막걸리를 즐기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맥주는 브랜드별 맛의 차이를 느끼고, 우리의 입맛에 맞는 페일 에일을 찾아내지만, 아직 막걸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적당한 탄산이 느껴지고, 달지 않은 막걸리를 좋아한다 정도의 인지만 있는 상태다. 인위적인 단맛만 강하지 않다면 맛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의 막걸리 기행은 대체로 행복한 기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각 지역 막걸리 맛의 다양함과 세밀함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가 될까. 맛에 대한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맛있는 술을 마셨을 때의 기쁨은 더 커지지 않을까 라고 기대해 본다.



만복 생막걸리

제조 : 문경새재 양조장

원재료 : 국, 밀가루, 물엿, 누룩, 과당, 포도당, 종국, 효모,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알코올 : 6%

유통기한 : 30일

특징 : 적당한 청량감과 달달함. 목 넘김도 좋다. 우리 쌀과 누룩을 사용했다.


구름을 벗 삼아 막걸리

제조 : 문경주조

원재료 : 찹쌀, 백미, 입국, 효모, 정제 효소, 올리고당, 우리밀 전통 누룩,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알코올 : 6%

유통기한 : 30일

특징 : 찹쌀과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만들어서 조금 더 고급스러운 단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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