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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03. 2024

02 게임 중독이 되어버린 시간강사


시간강사 허경일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 더 타워 오브 갓을 플레이했다. 어쩐지 잃어버린 아감벤에 대한 고민보다 그 게임이 머릿속에 더 생생하게 남아있던 탓이었다. 이미 머리에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자 레벨이 자그마치 100이나 되는 캐릭터가 보였다. 캐릭터의 옷에는 보석과 반짝이 효과가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현금으로 만원이나 지불해야 살 수 있는 것임을 허경일은 바로 알아보았다.


Shift키와 알파벳 A를 동시에 눌러 사용할 수 있는 스킬로 허경일은 꽤 능숙하게 몬스터를 썰어 없앴다. 몬스터들이 효과음을 내며 화면 속에서 가루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다시 없어진 몬스터가 리셋되기 전, 허경일은 화면 속에 있는 몬스터 전부를 아주 손쉽게 하늘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왜인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키보드를 누르는 것만으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니. 철학책을 뒤적거리는 것과는 다른 짜릿한 느낌이었다. 도파민. 그래. 그것은 아주 자극적인 도파민의 분비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도파민에 취해 그 게임을 내내 하게 되었다. 하루에 몇 번 있지도 않은 대학 강의를 끝내고 나면 그는 집으로 돌아와 만으로 두 살 된 아이와 잠시 놀아주고,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말끔히 끝냈다. 그 이후에는 어김없이 노트북을 열어 그 게임을 했다.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게임 캐릭터 레벨은 105가 되었다. 허경일은 핸드폰 결제를 통해 몇 가지 유료 캐릭터 옷과 반짝이 효과를 더 구매했다. 매일 무채색 옷만 입는 허경일과 달리 캐릭터는 온통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것들만 걸치게 되었다. 그는 그 사실이 꽤 만족스러워 스크린 샷으로 캐릭터를 몇 장 찍어 인터넷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일주일 남짓을 더 타워 오브 갓으로 꽉 찬 인생을 보내고 나서야 그는 노트북을 덮고, 아감벤의 생애와 저서가 정리된 논문을 읽었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그의 생애 통틀어 쌓아올린 가장 이질적이고 무가치한 지식인 더 타워 오브 갓의 악랄한 퀘스트, 시련의 계단 깨는 법이 맴돌았다. 원래 이 게임을 이렇게 열심히 하던 사람이 자신이 아닌 김재이였다면. 그의 성적이 언제나 하위권에 머문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더 타워 오브 갓은 철학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김재이와 악수를 한지 일주일만에 학술대회장에 참석하여 자리에 앉았을 때도 그는 시련의 계단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단상 앞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 내용의 발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이데거 전공자인 교수의 발표가 끝나고, 홉스나 루소 같은 철학자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올 때에도 그는 쉽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학술대회장 벽에 시련의 계단이 잔상처럼 남았기 때문이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했던 탓인지, 아직도 게임이 잔상처럼 남아 학술 대회의 내용 대신 공기 중에 둥둥 떠돌고 있었다. 슬라임도, 고블린도, 고스트도 공기 중에 떠서 시간강사의 상상속의 스킬에 맞아 부스러졌다. 


허경일은 잔상 속 게임을 플레이하며 생각했다. 차라리 저 발제하는 사람의 지식이 머릿속에 스르르 흘러들어오면 좋을 텐데. 이 빌어먹을 시련의 계단에 대한 지식처럼. 학술대회에 집중하기 도무지 어려웠지만, 시간강사는 훌륭한 사회인이었기에 발제자에게 악수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발제 잘 들었습니다. 저는 한기대 철학 출강을 하고 있는 허경일 라고 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며 그는 발제자의 손을 잡았다. 발제자는 허허 하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데 교수의 손을 놓는 순간 그는 아주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홉스가 쓴 원서 내용이 줄줄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이질적인 느낌이었지만,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다. 불과 일주일 전 그가 강의를 하던 그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과 동일한 일이었던 것이다. 허경일은 그 사실에 놀라 하마터면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뻔 했지만 간신히 참고 서둘러 발제자의 얼굴을 살폈다.


“시련의 계… 단…….”


어느새 사람 좋은 미소가 사라진 교수가 중얼거렸다. 그의 동공이 살짝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 시련의 계단이라고요? 그게 무엇인가요?”


허경일은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교수의 얼굴 근처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교수는 허공에 손을 여전히 내민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페이스바. 교수는 분명 스페이스바라고 말했다. 강사는 스페이스바와 방금의 발제의 연관성을 열심히 고민해보았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홉스 시대에는 키보드가 없었던 게 당연했으니까.


허경일은 곧이어 눈앞의 교수 표정이 자신이 강의실에서 얼마 전 짓고 있었던 표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강의실에서 허경일도 교수처럼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았다.


“교수님과 제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지식이 바뀌어버린 것 아닐까요?”


김재이 학생의 말이 허경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그 김재이 학생 앞에서 그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재이 학생과 경험했던 그 이상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허경일은 교수가 중얼거린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가지만은 또렷하게 이해했다. 자신이 그 알 수없는 ‘시련의 계단’의 지식과 홉스 철학에 대한 지식을 바꿔치기 했다는 것을. 정확한 매커니즘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왠지 지식을 바꿔치기 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 모양이었다. 강사는 교수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괜히 죄를 지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서둘러 학술대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몇 차례나 더 교수들과 미팅을 하며, 식사를 하며, 회의를 하며 자신이 얻게된 능력을 테스트를 해봤다. 그가 알게된 바에 따르면 이 지독한 지식 교환 능력은 몇 가지 법칙이 있었다. 첫 번째.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쓸 수 있다는 점. 두 번째, 악수를 할 때 능력이 발현된다는 점. 세 번째, 악수하기 직전까지 가장 골몰하고 있던 각자의 지식이 교환된다는 점. 네 번째, 지식을 빼앗아오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어야 발동된다는 점. 다섯 번째,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으나 지식은 늘 등가 교환된다는 점. 허경일은 발제를 했던 교수의 지식 중 일부만을 빼올 수 있었다. 그가 알게 된 것은 교수가 가진 홉스에 대한 모든 지식이 아니라 전염병 사태와 관련된 홉스 철학의 입장 정도에 불과했다. 계산할 수 있다면 대충 그 시련의 계단이라는 알 수 없는 지식의 양 만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식 등가교환 법칙은 그 지식을 쌓기까지의 시간에 비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그 지식이 얼마나 인정받는지는 지식 교환 능력이 발휘되는 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모든 법칙을 파악한 허경일은 김재이와의 악수가 자신에게 저주가 아닌 축복임을 깨달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남의 지식을 손쉽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똑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강사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똑똑해지는 것만큼 훌륭한 무기는 없었다. 서재에서 자신이 우연히 가진 능력을 공책에 정리하던 시간강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능력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아서였다.


그 후로 허경일은 능력을 탁월하게 활용했다. 일부러 무가치한 지식들을 생각하고 있다가 학술대회에 참석한 교수들이나 동료교수가 연구 과제를 설명한 직후 악수를 청하는 방식이었다. 지식인들은 늘 남의 지식을 갖고 싶어하는 족속들이라 지식을 빼앗아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매우 쉬웠다.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는 두 살짜리 딸에게 밥을 먹이는 것보다도 쉬웠다. 어쩌면 허경일이 지식인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악수를 청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허경일은 지식인이었고 악수는 지식인들의 전통적인 인사법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조기축구를 할 때 어떻게 티 안 나게 반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데리다에 대한 지식으로, 한 때 취미로 가지고 있었던 베이킹 지식을 아도르노에 대한 지식으로,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답안지에 쓴 어처구니없는 대답 top 50을 료타르에 대한 지식으로 바꿨다. 알튀세르 전공자였던 그는 아주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다른 철학자들의 지식도 아주 간편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전공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꽤 멋진 논문을 고민 없이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질 만큼.


하지만 허경일의 계획이 보기 좋게 실패했을 때도 있었다. 헤겔 철학 학술회에서였다. 학술회에 참여한 허경일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쓸데없는 지식 하나에 골몰하고 있었다. 10년 전에 헤어진 5년 사귄 전 여자 친구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린 허경일에게 그 지식은 차라리 잃어버리는 것이 나을법할 만큼 무가치한 지식이었다. 전 여자친구와 먹었던 음식과 시간, 추억들을 곱씹으며 허경일은 학술회장을 돌아보았다. 마침 유명 TV 프로그램에 정기 출연을 하는 잘나가는 젊은 교수가 눈에 보였다. 그가 철학계에서 나름 신예로 취급되는 인물이라는 점을 그 학술대회장에 앉아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발제자와 악수를 하려던 허경일은 발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젊은 스타 교수를 보자 묘한 궁금증이 들었다. 저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어떤 연구를 발제자의 발제와 비교를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의 성공일로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얻게 된다면. 허경일은 타겟을 바꾸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에 눈 앞의 사람만큼 명성을 가지게 된 철학 교수는 흔치 않았으므로.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기대 철학 출강을 하는 허경일입니다.”


허경일이 꾸벅 인사를 하며 교수에게 다가갔다. 교수는 살짝 같이 목례를 한 후 허경일이 내민 손을 가볍게 잡았다. 교수의 손을 놓자, 천천히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 지식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처럼 빠르고 은밀하게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유명 교수와 악수하고 싶은 사람들은 널렸으니까,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은 보다 간단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박영미. 43살. 어제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아 무척 화가 난 상태. 이탈리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피사의 사탑 앞에서 꼭 피사의 사탑만큼 몸을 기울인 채 사진을 찍겠다고 고집을 부렸음. 소설 쓰는 것이 취미. 2년 전에는 공모전에 수상하여 소설집을 출간함. 최근에는 요가에 빠져 살고 있음. 심리스 팬티만 입고, 브래지어는 불편하고 귀찮다고 잘 하고 다니지 않음. 그가 침실에서 자주 보이는 습관은…


허경일이 눈을 찌푸렸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머리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멋대로이고 똥고집을 부리는 이상한 여자에 대한 정보였다. 허경일은 서둘러 학술회장을 빠져나가며 박영미가 유명 교수의 아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표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학술회에서 아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교수는 정말 팔불출이었다. 덕분에 허경일은 TO MUCH INFORMATION, 언젠가 학생에게 배운 TMI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지식을 반강제적으로 얻게 되었다. 한 주를 손해 보았다는 생각에 불쾌함이 몰려들었다. 스타 교수쯤 되는 사람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럼에도, 지하철역에 서둘러 내려가던 허경일은 잠시 계단에서 멈추어 너털웃음을 지었다. 문득 자신이 전혀 조급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였다. 한 주 손해 보게 되었지만 허경일은 아직 젊었고, 시간은 많이 있었다. 매번의 일주일은 허경일에서 매번 꼬박꼬박 찾아왔고, 이 TMI도 다음 주 쯤 다른 유용한 지식으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한 번 지식을 바꿀 때마다 타인의 몇 년을 대신 사는 셈이니까,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허경일은 어깨를 일부러 올렸다 내리며 긴장을 풀었다.


문득 어깨를 으쓱이는 그의 시야 초점이 흐린 쪽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몇 개 발견하고는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고 있는 걸인 앞의 통에 던져 넣었다. 달그락 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시간강사, 허경일 자신의 인생도 그렇게 맑고 경쾌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지하철 대신 자가용을 타고, 인사를 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오는 인생, 시간강사가 아니라 정교수로 부임하는 인생. 허경일의 발걸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걸인의 말을 들으며 지하철 역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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