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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02. 2024

01 실수로 시간강사의 지식을 훔쳐버렸습니다.


재이가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처음 사용한 것은 중간고사가 끝난 바로 직후의 수업시간에서였다. 아주 지루한 철학 수업을 듣던 때였다.


“호모 사케르는 법적 테두리 바깥으로 추방된 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감벤이 창시한 말은 아니고, 로마법에 있던 용어를 아감벤이 다시 재해석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시간강사의 말이 재이의 귀를 스치고 그대로 벽면으로 날아갔다. 재이는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몽롱함을 느꼈다.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이어지는 가혹한 시간대의 연강이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대신 재이는 지난밤에 했던 게임 속 화면을 떠올렸다. 방향키와 스페이스바를 함께 타이밍을 맞추어 눌러야 캐릭터가 벽돌을 밟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게임이었다. 맨 위에 올라간 후 받을 수 있는 보상이 기껏해야 보잘것없이 낮은 확률의 무기 강화 주문서였음을 알고 있었지만, 재이는 왠지 그 퀘스트를 깔끔히 클리어 하고 싶었다. 마음속에 숫자를 세고 방향키와 스페이스바를 누르기를 한참 시도한 이후에야 재이는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잠들게 된 시간이 새벽 3시인가, 4시인가. 몇시에 잠에 들었는지 불명확했다. 자그마치 일주일만에 재이는 그 퀘스트를 깼다.


너무 게임을 많이 했던 탓인지, 게임이 강의실 흰 천장 위에 여전히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흰 천장을 배경으로 캐릭터가 점프를 하고 각종 마법 스킬을 사용했다. 반짝이는 옷을 입은 캐릭터가 흰 천장에 점차 스며들듯 사라졌다. 계속 게임 생각을 하기에는 잠을 너무 적게 잔 탓이었다. 재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게임의 잔상을 쫓다가 다른 학생들처럼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호모 사케르와 아감벤의 이야기가 꿈 속에 떠 있는 구름처럼 뭉글뭉글해져 강의실 저편으로 사라졌다.


“시험지 확인 시간입니다.”


꾸벅 꾸벅 잠에 빠져들었던 재이가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강의실에 놓여있는 교탁 앞에서 강사가 서둘러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었다. 곧이어 30장 남짓의 시험지가 교탁 위에 놓였다. 또 시작이구나. 재이가 다시 천천히 책상에 엎드렸다.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시험이 끝난 다음 주면 늘 시간강사는 비슷한 일을 했으니까. 그는 묘한 사람이었다. 다른 교수들이 잘 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그건 시험지를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고 점수를 보여준 후, 다시 걷어오는 습관이었다. 항상 시험지를 나눠줄 때마다 그는 시험을 잘 본 학생과 시험을 잘 못 본 학생 모두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열심히 했군요. 고생했습니다.”혹은 “이번엔 실수가 많았지만 다음엔 더 잘 할 것입니다.”와 같은 말들. 덕담을 마친 시간강사는 늘 학생들과 한 번씩 악수를 나누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악수를 할 새도 없이 종강을 해버리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재이는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기다리며 다시 고개를 들고, 엉덩이를 천천히 의자에서 뗐다. 재이는 김씨였으니까, 곧 이름이 불릴 것이 뻔했다.


“이번엔 실수한 부분이 있었지만 다음엔 더 잘 할 것입니다.”


시간강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재이에게 말했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재이는 시간강사의 덕담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리며 웃었다. 시간강사가 들고 있는 시험지에는 형편없는 점수가 쓰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강사는 ‘다음엔 더 잘할 것입니다’ 따위의 말을 학점 C 이하인 학생들에게나 했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안한 죗값을 받기 직전이 되자 재이는 배가 아픈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시간강사의 지식이 저절로 스르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면 좋을 텐데. 게임 NPC와 대화에서 스킵 버튼을 눌러도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것처럼. 지겹게 공부를 하는 순간을 스킵해 버리고 저절로 똑똑해진다면 재이의 인생은 좀 더 윤택해질 지도 몰랐다.


허황된 상상을 하며 재이는 시간강사의 손을 잡았다. 그가 들고 있는 시험지에 언듯 C라고 쓰여 있는 알파벳이 보였다. 재이의 손과 시간강사의 손이 부드럽게 맞붙었다가 아래 위로 흔들린 후 다시 떨어졌다.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은 시간강사와 잡은 손을 떼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재이의 머릿속에 밀물처럼 생각들이 몰아쳤던 것이다. 어, 나 방금까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이는 한 발자국 발을 옮긴 채로 우뚝 하고 섰다.


조르조 아감벤은 추방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권력자와 예외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다루었다. 독재가 베이스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국가가 권력을 가진 주권자에 놓이게 되었지만, 예외상태에 놓인 인간들이 마침내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관리와 통제의 가면을 쓰고 더욱 교묘하게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재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간강사를 돌아봤다. 그는 잠시 악수를 하던 손을 멈춘 채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또한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재이는 다시 시간강사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모든 학생들이 재이와 시간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타워 오브 갓. 시련의 계단. 방향키 스페이스바. 공격력 강화 10% 주문서. 시세 1만 골드.”


강사가 중얼거렸다. 재이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게 철학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시간강사는 무척이나 당황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다시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주었다. 그의 입에서는 더 이상 덕담이 나오지 않았다. 악수를 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기계적으로 시험지를 나누어주는 시간강사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갑작스럽게 사라졌기에 시험지를 받는 학생들은 모두 그의 눈치를 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이 더 구겨졌기에, 시험지를 마지막으로 받은 불쌍한 학생은 시간강사의 눈조차 바라보지 못했다.


시험지를 끝까지 나누어준 시간강사는 천천히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을 보고 입을 뗐다.


“학생, 내가 아까까지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학생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수업을 잘 들었는지 시간강사가 확인하기 위해 그 질문을 던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는 다행히 맨 앞자리에 앉은 만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그의 책상 위 놓여있는 시험지에 A라는 알파벳이 그 사실을 보증했다.


“호모 사케르 개념과 아감벤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아감벤 철학을 어떻게 재해석하거나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호모 사케르와 관련된 고대 철학자들에 대한 내용도 배웠습니다.”


“호모 사케르.”


시간강사는 이제 지식인과는 너무도 먼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그의 입이 볼성사납게 반쯤 벌려져 있었다.


“호모 사케르”


그가 한 번 더 중얼거렸다.


“호모”


호모. 호모. 호모. 그가 세번이나 호모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대각선 앞에 앉은 남학생이 푸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시간강사가 사케르라는 말을 호모 뒤에 붙이는 것을 완전히 까먹었기에 그의 말의 함의도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학생 여러분. 오늘 수업은”


그가 호모…하는 혼잣말을 되뇌인지 3분 정도 지났을 때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오늘은. 수업을.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의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번개같이 겉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강의실 바깥을 나갔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 강의실에 남겨진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심지어 다시 시험지를 회수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강의실을 나섰기 때문에 수업을 듣고 있던 과대가 그것을 수합하는 귀찮은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거의 모든 학생들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주였으니까. 시간강사의 인생에 찾아온 비극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은 적었다. 5월 끝내주는 날씨에 수업이 일찍 끝나버리다니. 시간강사가 수업을 마음대로 일찍 끝내버린 것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같은 일이었다. 웃지 않고 있던 것은 재이가 유일했다.


“호모 사케르”


재이가 강의실을 나가며 중얼거렸다.


“아감벤. 이탈리아 출생.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마스크를 쓰지 말자고 주장했었음. 이름만 들으면 옛날 사람 같지만 사실 지금도 살아있음.”


재이는 뒤에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입 속에서만 중얼거렸다. 아감벤에 대해 왜 내가 알고 있지? 심지어 그가 쓴 책의 문장 몇 개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탈리아어를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 모든 이상한 일은 문제의 시간강사와 악수를 했을 때 시작된 일이었다. 재이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돌려 시간강사가 자주 있던 학과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김재이 학생.”


학과 사무실 앞에서 손잡이를 잡으려는 찰나 누군가 재이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재이는 깜짝 놀라 거의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멋쩍은 표정을 지은 남자가 눈에 보였다. 시간강사였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어요. 잠시 차 한 잔 할래요?”


재이는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할지 아리송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강사는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그 자리에 박혀버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 그는 꿈속을 떠도는 사람처럼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시야가 재이의 어깨를 지나쳐 허공에 향해 있었다. 마치 예상치 못하게 지갑이라도 도둑맞은 사람처럼.


“인문관 카페 갈까요?”


재이가 우물거리며 강사에게 물었다. 강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강사는 인문관 지하에 있는 카페에 도착하기까지 재이에게 한 마디도 더 붙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골똘히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재이도 조르조 아감벤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저서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있었다. 권력. 통제. 코로나. 머리에 빙빙 조르조 아감벤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시간강사는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카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금요일 오후 5시 무렵이었기에 카페에는 학생들도, 교수들도 거의 없었다. 시간강사는 초조한지 한 손의 손톱을 다른 손의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재이가 쭈뼛쭈뼛 시간강사 맞은 편에 앉자마자 그는 입을 열었다.  


“김재이 학생. 혹시 더 타워 오브 갓이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네? 네…”

“혹시 게임을 해본 적 있나요?”

“아니요”

“게임을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름은 알고 있죠?”

“그거야…몇 년 전에 엄청 유행했으니까요.”


시간강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아주 고역인 것을 설명해야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김재이 학생. 그러니까 더 타워 오브 갓은 말이죠.”


시간강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더 타워 오브 갓.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들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이 시간강사의 입에서 미끄러졌다. 스페이스바와 방향키를 동시에 눌러야 게임 캐릭터가 점프를 하고, 시련의 계단이라는 악독한 퀘스트가 있으며, 원래는 몬스터를 각종 스킬을 사용해서 썰어 없애 레벨을 올리는 게임에 대한 정보였다. 좀비와 외계인, 동물 모양의 몬스터의 이름들도 시간강사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재이는 당최 시간강사가 왜 그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철학 교수가 기껏 학생을 불러 게임 이야기를 주구장창하기 시작했다니. 시간강사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재이의 입도 볼썽 사납게 벌려졌다. 점점 집중력이 흐트러진 재이는 시간강사가 언제쯤 이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여 정당하게 자릿값을 낼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메리카노 2500원. 카페라떼 2800원. 핫초코도 2800원. 마침 시간강사가 앉은 쪽 뒤에 커다란 메뉴판이 붙어있었다. 재이가 카페 메뉴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알아챈 시간강사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김재이 학생과 악수를 한 이후에 더 타워 오브 갓에 대한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감벤에 대한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재이를 바라보았다. 재이가 표정 없이 시간강사를 바라보자 그는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자기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재이는 그제야 그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음을 이해했다.


“교수님. 사실 저도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교수님과 악수를 한 이후에 조르조 아감벤에 대한 생각이 나기 시작했어요. 조르조 아감벤같은 건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을 것 같은데도요. 아시잖아요. 저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에요.”


시간강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쳐들었다. 조르조 아감벤! 그의 입이 움찔거렸다.


“조르조 아감벤에 대해 제가 원래부터 그렇게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아요. 교수님이 그 게임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요.”


재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뜸을 들였다. 어쩔 수 없이 꽤나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야했으므로. 교수가 더 타워 오브 갓을 설명하는 것 만큼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과 제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지식이 바뀌어버린 것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교수님이 그 게임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죠.”


팔짱을 낀 시간강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다시 악수를 하면 원상복구가 되지 않을까요?”


시간강사는 재이의 기묘한 제안에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외치려는 듯 입을 뗐다가 다시 다물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긴 하지만 어쩐지 기적을 바라는 눈치였다. 푸념하는 대신 시간강사는 팔을 뻗었다. 강의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이는 시간강사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천천히 시간강사와 재이의 손이 붙었다 떨어졌다.


놀랍게도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머쓱해진 재이는 손을 내려놓고 머리를 굴려 더 타워 오브 갓과 시련의 계단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시간강사도 악수를 했던 손으로 머리를 쓸며 열심히 아감벤에 대해 기억해보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몇 초가량이 더 흘렀을 때 시간강사가 힘없이 카페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어깨를 잔뜩 구부리고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시간강사는 카페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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