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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8. 2024

17 교수가 사랑하는 방식


멱살이라도 잡힐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교수는 어떠한 표정도 없이 허경일을 바라보았다. 교수는 처음 봤을 때보다 그새 조금 늙어보였다. 허경일 자신도 마찬가지이겠지. 허경일은 교수의 눈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앉으세요.”


허경일은 자신이 아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듯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허경일은 천천히 교수의 연구실을 돌아보았다. 목재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언젠가 자신도 정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배정받고, 학생들을 연구실에 초대하여 대학원에 갈 생각 없는지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제 모두 허사로 돌아간 일이었지만. 허경일은 손톱의 거스러미를 만지작거리며 책상에 시야를 고정했다. 책상에는 교수의 고풍스러운 취미의 일종으로 보이는 작은 다도 판이 올라가 있었다. 교수는 여전히 허경일의 맞은편에 앉지 않고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간만입니다.”


교수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허경일에게 마침내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그는 심지어 살짝 미소를 짓고 있기도 했다. 허경일은 민망함과 수치스러움 때문에 도무지 교수의 인사에 답할 수 없었다.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나? 괜히 만나자 한 건가? 물음표가 가득 허경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을 피한 허경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는 입을 떼고 무엇을 말하려다가 잠시 생각에 빠진 채 입을 닫았다.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만이 연구실을 채웠다. 경쾌한 띵, 소리가 울려 퍼지자 교수는 찻잎과 물을 나무로 만든 주전자에 부었다.  


“이미 내 아내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지요?”


교수가 허경일의 앞에 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허경일은 깜짝 놀라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교수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잎이 물에 스미며 교수의 얼굴에도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니 다행인 일이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허경일이 꾸벅 꾸벅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물어봐도 되지요?”


허경일은 우뚝하고 말을 멈추었다.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찻잎이 물에 풀어지고, 그게 또 한 잔의 차가 되기까지의 과정보다 몇 배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길고 지루하고 눅눅한 것들이 다른 것들과 어지럽게 섞여 다른 사람 앞에 풀어놓기 쉽지 않아졌다는 사실을 허경일은 막연하게나마 깨달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지식을 훔쳤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의 지식을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지식으로 많은 글을 썼습니다. 강의도 나갔고요.”

“그랬겠지요.”

“그러다가 아주 중요한 것을 도둑맞았습니다.”

“무엇인가요?”

“제 아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허경일의 머릿속에 다시금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쌍커풀 없는 눈, 살짝 낮은 코, 동그란 얼굴. 거울속의 허경일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은 닮아있었다. 허경일도 쌍커풀이 없었고, 살짝 낮은 코를 가지고 있었으며,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가끔 낮잠을 잘 때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잤다. 허경일이 아주 피곤할 때 하는 버릇과 똑같았다. 허경일은 이 모든 지점이 또 다시 슬퍼져서 애써 머릿속에서 아이를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교수는 그 말에 대답 없이 허경일을 마주보았다.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더 설명 없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왜 피해자연대를 만들었는지 설명해야겠군요.”


울상이 된 허경일의 표정을 지켜보던 교수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제 아내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교수 집안에서 자라난 나와는 아주 어울리지 않았지요. 아내는 노래 부르고, 춤추고, 친구들의 쓸데없는 고민을 들어주려고 밤을 새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부와 거리가 멀었고, 대학시절 학점은 바닥이었습니다.”


교수는 아내와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는 듯 천장 위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변화무쌍한 사람이라서요. 아내는 잘 울기도 했고,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행동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평생을 공부만한 나의 머리로는 아내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교수는 어느새 허리를 숙여 허경일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직전의 사람처럼.  


“어느 날인가 나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다 깨달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내 평생의 버릇을 내려놓아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나는 아내를 배우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아내가 너무나 감성적이고, 너무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탓이었지요. 배우는 것을 포기한 채 나는 아내를 있는 그대로 느끼려고 노력했습니다. 배우는 것은 머리로 알게 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감각하는 것이겠지요. 나에게 언제나 배우는 것은 쉬웠고, 느끼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처음으로 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준 사람입니다. 무엇을 나에게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


“아내와 나의 5년이 사라진 건 그런 의미입니다. 허 교수에게 이 능력은 단지 지식을 바꿔치기하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나에겐 달랐습니다. 지식보다 중요하고 얻기 어려운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탓입니다. 5년 동안 나와 아내가 서로를 느꼈던 순간, 그 기억들, 그 속에서 바뀌었던 제 자신과 아내에 대한 많은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남에겐 하등 쓸모없는 지식일 수 있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나의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허경일 교수도 이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겠지요.”


교수는 천천히 말을 마치며 허경일을 바라보았다. 서글픈 미소가 교수의 얼굴에 띄워져 있었다. 허경일은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에 대해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아이의 딱딱해진 등과 숨을 참는 듯 한 흡 소리, 어쩔 줄 몰라 하며 엄마 다리 뒤로 숨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한 달 동안 아이가 깨어있을 때 허경일이 아이와 쌓은 기억은 그게 전부였다. 잔뜩 겁먹고 긴장하여 눈썹을 잔뜩 내린채 눈을 동그랗게 뜬 표정. 허경일이 가장 자주 본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 동안 허경일도 아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허경일은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허경일을 사랑했던 시간, 그리고 허경일이 아이를 사랑했던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억울하게 도둑맞은 것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허경일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과 욕심과 잘못된 선택들이 뭉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허경일은 괴로움에 무릎을 세게 꼬집었다. 아이는 어떠한 죄도 없었다. 가장 피해를 본 것은 허경일 자신이 아니라 난데없이 아빠를 빼앗겨버린 작은 아이였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허경일은 무릎 위에 놓인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가 받은 상처를 너무나 늦게 알아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 딱딱해진 아이의 등에 대한 기억이 허경일의 마음속에 몰아쳤다. 교수는 고개 숙인 허경일을 보더니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이 허경일의 등에 닿고, 천천히 토닥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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