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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Nov 16. 2023

진취적인 강작가의 어느 평온한 하루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원고 집필을 하다 이모님이 내려주시는 드립커피를 한 잔 마시며 창 너머 한 낮의 경치를 잠시 감상한다. 밤의 야경보다 낮의 풍경이 포근하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노트북 앞에 앉아서 2시간 일한 근육들의 긴장이 사르르 풀리는 듯하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낯을 가리는 아이들의 특성에 잘 맞는 이모님을 구하는데 공을 들였다. 5번에 걸친 면접아닌 면접을 본 결과 우리에게 적당한 선을 지키시면서도 따뜻한 품성을 지니신 현재 이모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우리 가족에게 행운이다.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 온지 한달 쯤 되었다. 아이들은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친구들과 작별파티를 하고 올라왔지만 역시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새로운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 한다. 전학 온 학교는 수영부가 있어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바로 등록했다. 며칠 후 있을 서울시 초등학생 수영대회에 6학년 자격으로 입상하기 위해 물개처럼 맹연습 중이다. 나 역시 대전에 절친한 친구 두 명이 있어 서울로 이사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또 깊고 질긴 인연을 만드는 것이 40초반에 가능할까, 새로운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설렘 반, 두려움 반에서 설렘이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서울로 오기까지 매일 밤 고민의 연속이었다. 결국 아이의 교육과 나의 행동반경에 최우선을 두고 선택했다. 더 많은 선택지를 두고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 출판사와 방송사를 자주 드나드는 내가 쉽게 오갈 수 있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홈웨어를 입고 공부할 때 집중이 잘된다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꾸몄고, 남편의 지인 가족을 통해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아 세심하고 꼼꼼하게 1:1케어를 해 주신다. 나도 역시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을 부탁할 수 있는 기사님을 구하는 것이 대전에서보다 훨씬 수월했고 미세소음도 껄끄러워 하는 나를 위해 주기적으로 자동차점검까지 기사님이 도맡아 해 주신다. 물론 보너스는 두둑히.  

 


 우리가 선택한 곳은 양재천이 내려다보이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꼭대기 층. 친정 엄마 직장이 이 근처라 아이들 어렸을 적부터 자주 마실을 오곤 했는데 여기만 오면 그렇게 심장이 두근댈 수가 없었다. 미소를 짓게 하는 빵집들이 약속이나 한 듯 길을 사이에 두고 모여있는 이 거리에서차들은 보행자에 맞추어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사람들은 한가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차들은 보행자에 맞추어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로 모퉁이를 돌아 그 공간안에만 들어서면 해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가 하와이 부럽지 않아.'

막연히 언젠가 이곳에 거주민으로 맛좋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길 것이라는 나의 포부를 수줍은 소녀처럼 부끄럽게 털어 놓으면 남편은 헛웃음을 치던 때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신랑은 하루하루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자는게 신조인 사람이었으니까, 5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만, 그동안 내가 이뤄낸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작은 5년 전인 23년 딱 이맘때, 11월이다. 온라인 줌과 카톡으로 작가정신을 불태우던 동기들과 은경샘이 있었다. 서로 당근을 주고 채찍질을 해가며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 해오던 우리는 출판계가 주목하는 작가들이 되어 있다. 그때 시작했던 독서록과 운동기록은 아직도 지속하며 모두의 발전을 이끌어주고 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껏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장의존적인 성향 상 혼자 주저않고 이 모든 것들은 망상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나의 동기들과 꾸준히 연락하는 은경샘은 나의 길잡이이자 방향을 설정하는데 주축이 되어 주었고 지금까지 서로의 등대이자 때로는 조언가, 같이 꿈을 위해 달려가는 동지이다. 조만간 양평에 자리를 잡은 한 동기의 집에서 홈파티 겸 망년회를 하기로 했다.


 방대한 영역에 걸쳐 책 출간을 했다. 여러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는 24년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온 후  집필한 에세이 서적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필수 영어 단어 및 표현을 담은 책, 초등 글쓰기를 편하고 쉽게 알려주는 책 등 교육 정보서에서 최근에는 소설가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같은, 읽으면 편안해지면서 잘 읽히는 책을 쓰고 싶었던 것이 5년전 나의 꿈이었는데 드디어 초판을 발행한지 1년만에 10쇄를 발행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몇 년 전만 해도, 주어진 삶을 반복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인 것처럼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책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열정과 희망이 나를 움직였고, 앞이 보이지 않은 때에는 나의 5년 후를 그려봤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항상 내 글이 좋다고 옆에서 추켜준 신랑에게도 고맙다. 삶을 미래로 설정한 후로 긍정적인 모습만 상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이뤄지리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내가 사라진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덕분에 장기간 앓고있던 삶의 무상함이 삶에 대한 활기로 바뀌었다. 살기가 귀찮아 잠만 자던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내가 그랬었나 싶다.


 내일은 휴가를 낸 신랑과 함께 근교의 C.C로 라운딩 계획을 잡아 놓았다. 원고작업을 하다보면 치열하고도 피폐해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럴 땐 긴급 수혈은 커피로 보충해 주고, 이렇게 간간히 소풍삼아 라운딩을 나가는 것도 큰 분위기 전환이 된다. 살면서 가장 잘했다 싶은 것이 글쓰기를 시작한 것, 골프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 것이다. 글쓰기가 나의 희망의 원천이자 삶의 방향이라면, 골프 라운딩은 간간히 맛보는 꿀맛같은 휴식이자 조여오는 숨통을 트이는 작업이다. 그래서 최소한 두달에 한번씩은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잔디를 밟으며 머리에 신선한 공기를 충전해 주고 온다. 그러면 더욱더 글쓰기에 매진하는 나를 발견한다.


 데일리 운동으로는 매일 아침 여섯시 스토리텔을 들으며 한시간 양재천 걷기를 한다. 원체 실내운동은 선호하지 않아 헬스나 필라테스는 등록을 하지 않았다. 뛰는 것은 집중이 힘들고 머리가 조여오는 느낌을 받아 선호하지 않으며 빨리 걸으면서 내 몸이 탄탄해 지는 상상을 하며 스토리텔에 집중하다 보면 머리와 몸이 동시에 가뿐해지며 좋은 기운으로 꽉 찬 듯한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저녁 8시에는 하루에 5시간 이상 자판 앞에 붙어있는 내 등과 어깨와 팔을 위해 홈 트레이닝을 30분간 한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상상한 대로 어느정도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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