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자강의 아내로 산다는 것

by 아이두

"나 오늘 일당 35만 원어치 일은 한 것 같아."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계산을 해봤다. 35 곱하기 한 달 30 하면? 천만 원? 오늘처럼 일하면 한 달 천만 원을 벌 정도라고? 가만 보자, 오늘 그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 온 세상이 깜깜하고 우리 집도 정적일 때 그는 물 한잔만을 마신 후 울산에 가기 위해 조용히 까치발로 나갔다. 업무 차 한 달에 두세 번 출장 가는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에 가서, 울산역에 내린 후 회사로 향하는 리무진에 몸을 싣는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해는 밝아 있고 아내와 아이들의 기상시간쯤 된다. 울산에서 일당 20만 원어치 정도의 일을 한 후 다시 오후 7시쯤 집으로 복귀한다. 부인이 차려놓은 저녁을 늦게 먹으며 핸드폰으로 그 사이 온 메일을 확인한다. 밥을 먹을 때도, 쉴 때도 회사에서 온 카톡과 메일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오래된 그의 습관이다.

저녁밥을 소주와 함께 마무리한 후 원래는 제2의 일과만 하면 그날의 일은 끝이 난다. 설거지 그리고 빨래가 많이 쌓여 있으면 빨래 개고 널기까지. 본인이 요리를 아예 못하니 설거지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며 빨래는 내가 개고 너는 방식이 못마땅해서 직접 하시겠단다. 그런데 오늘따라 재택근무까지 하네, 두 시간 동안 두 손과 두 눈이 노트북과 수첩을 오락가락한다. 최근 부서를 이동해서 그런지 할 일도 많아 보이고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한편 부인은 옆에서 다음 메인에 내 글 떴다며 환호하고, 작가에 빙의해 열심히 책 필사를 하고, 생각한 글감을 핸드폰에 적는다.


옆에서 끄적이다 졸린 나는 먼저 자려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제야 재택근무를 끝마친 남편이 할 일이 남았다며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탁탁 건조대에 난다. 마지막으로 건조기의 먼지를 청소한 후 남은 빨랫감을 넣고 돌린다. 그러면서 남편이 한 말이다. 일당 35만 원. 나는 “그럼, 그럼”맞장구 쳐주며 “자기가 최고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내 남편은 아이언맨이다.

남편은 살아가면서 옆에서 지켜볼수록 강철 같고 무쇠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명절에도 대여섯 시간 운전하면서 차 막히는 것이 명절의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불타는 금요일에 골프 라운딩을 갔다가 새벽까지 골프 멤버들과 술모임을 가진 후 다음날 예정된 또 다른 모임에 참가하러 간 적도 있다. 그러고 와서 아무렇지 않게 일요일에 집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본 사람이다. 극강의 T라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친구들의 평에도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신기하다. MBTI가 한 개도 맞지 않는 부부여서 그런지 부딪힐 때도 많다. 싸울 땐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에, 본인이 납득하기 전까진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해서 실수나 오차가 거의 없어 그렇지 않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때가 종종 있다.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기억 저장소에 넣어 두는지, 중요한 말이나 기억은 예리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편의 후배가 남편보고 '인자강'이라고 했단다. 무언고 하니 '인간 자체가 강한 사람'이란다. 과연 그렇다. 총이나 칼에 맞아도 갑옷 입은 것처럼 끄떡없을 것 같은 사람, 우리 남편, 인자강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남편의 강한 페이스에 맞추어야 할 강인한 정신력,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역부족인 나는 헥헥댈 때가 많다. 때마침 휴직이라 망정이지.


언젠가 친구들과의 술모임에서 술기운을 빌려한 말이 있다.

"우리 아들들이 애 아빠 닮았으면 좋겠어."

친구들은 낯간지럽다면서도 다시 말해보라며 동영상을 찍고 우리 남편에게 보내줬던 적이 있다. 우리 남편은 최고의 남편은 아니지만 최상의 아들이자 아빠이다. 남편이 시아버지의 좋은 면을 많이 물려받았듯이 우리 아들들도 우리 남편의 강함과 무쇠 같음을 닮았으면 한다. 우리 아들들이 최고의 남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한 번도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안 한다. 우리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있거니와 본인 스스로 사회생활, 조직생활을 즐기는 것도 있다. 본인은 일할 때 살아 숨 쉬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군.


이쯤에서 남편의 자랑 아닌 자랑은 그만해야지. 물론 단점도 많은 사람이지만 같이 살기로 한 이상 한쪽 눈 가리고 좋은 면을 봐야 내 심신이 편해질 것 같다. 나는 강한 자와 같이 발맞춰야 하므로 페이스 조절이 필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