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3일동안 70만원을 쓰기까지
말레이시아에 한달 살기를 하면서 설 연휴 동안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연휴를 맞아 휴가를 내신 엄마가 싱가포르에 오셔서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고,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비교적 쉽게 육로로 이동가능하기 때문이다. 슈퍼트리는 감각적이고 화려했으며, 공항 근처 창이 지역에서는 도시적인 싱가폴과는 다른 한적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 물가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만 3일동안 여행경비로만( 숙박비, 항공비 제외 ) 한화 70만원에 가까운 돈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관광품, 기념품, 선물등은 일체 사지 않았다. 오로지 식비, 교통비, 입장권의 가격이었다.
Day 1-1. 이럴줄 알았으면 그랩 탈걸
가기 전부터 싱가포르에서는 물값마저 무시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말레이시아 숙소 냉동실에 꽝꽝 얼려 둔 물 세 병을 가방에 이고서는 무사히 국경을 통과했다.하지만 무사한 것은 거기까지. 기차역에서 숙소까지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 차로는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숙소를 창이 공항 쪽에 잡은 탓이었다. 공항 근처로 호텔을 정한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리. 높은 물가에 택시는 엄두도 못 내고, 택시와 비슷한 개념인 그랩(동남아에서 통용되는 배달, 운송 앱)을 불러서 숙소까지 갈까 하다가 교통비부터 아껴보자고 호기롭게 버스를 탔다. 2시간이라고 해봐야 거리로는 33km. 경기도 분당에서 서울 강북까지의 거리였다.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오판이었다. 다리 아프다 칭얼대는 두 아이, 트렁크 한 개를 짊어진 상태로 버스를 2번 갈아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중간 중간 많은 고비를 감내해야 했다.
대부분의 싱가포르 버스는 다음 정거장을 안내해주는 안내방송이 없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감을 못잡았다. 목적지를 묻고 버스에 탑승하니 내리는 곳을 알려주는 친절한 버스 기사님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마지막에는 무뚝뚝한 버스기사님을 만난 덕분에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렸고, 길을 건너 같은 버스를 타고 되돌아 와서 겨우 목적지에 내린 후 10분을 걸으니 그리 바라던 호텔에 도착했다. 이러한 갖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서의 노동의 댓가는 짜디 짰다. 다음날 청구된 대중교통비를 확인해 보니 1인당 교통비가 6000원. 우리는 3명이었으니 18,000원 이었다. 이 나라는 아낀다고 애를 써도 비싸구나. 벌써 싱가포르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Day 1-2. 술과 물의 소중함
고생 했으니 밥을 먹자, 그런데 호텔이 외지라 호텔 내 카페 말고 다른 곳은 나갈 엄두가 안난다. 안그래도 물가 비싼 싱가포르인데 더군다나 호텔 식당에서 먹는다? 다시 생각해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버스를 3번(잘못탄 버스까지 4번) 타고 온 탓에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서 다른 곳을 찾아볼 여력도, 그곳을 찾아갈 여력도 없었다. 피곤한 아이 둘을 이끌고 식당으로 가 스테이크 한 개, 파스타 한 개를 시켰다. 스테이크는 말레이시아와 같은 값에 더 작고 질긴 식감이었다. 파스타는 면 양이 작았다. 거기까지만 시켜야 했을 것을. 마음속에 알콜에 대한 본능적인 충동이 일었다. 열심히 대중교통을 타고 온 것에 대한 보상 받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메뉴판을 봤더니 맥주 500ml 한 병에 12,000원. 에라 모르겠다. 여행이니 그냥 눈 감고 먹자,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며 맥주 한병을 주문했다. 맥주는 달콤했고 계산서는 잔혹했다. 세금이 10%인 것도 모자라 이름모를 정체의 요금으로 6%를 더 떼간다. 과하게 추징당한 나의 계산서는 총 90달러, 약 90,000원이 나와 버렸다. 순간을 즐긴 대가 치고는 꽤나 큰 금액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모든게 돈이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대여해주는 타월도 돈이었고, 식당에서 먹는 물도 돈이었다.
“엄마 물 먹고 싶어.”
조그마한 볶음밥에 15000원을 지불하여 먹고 있는데 와중 첫째의 말에 식당 주변을 둘러 봤다. 왠걸, 식당에 정수기가 없다. 계산대 옆을 보니 500ml짜리 생수가 2 싱가포르 달러, 우리돈으로 2,000원이다. 물의 소중함을 말에이시아에 이어 여기 싱가포르에서도 깨닫게 된다.
Day 2-1.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싱가포르(이하 싱으로 부름)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도 비싸다. 우리나라의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 세트가 6200원인 반면, 싱의 Mc spicy 세트는 10,000원에 달한다. 그마저도 버거 안 토마토와 양파 토핑이 빠진 상태로. 양상추, 치킨 한 덩이, 마요네즈가 들어간 버거를 우적우적 씹었다.
스타벅스는 어떨까, 역시 비싸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비교표에서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높은 가격이다.
우리나라 스벅 커피값도 비싸다고 마시기 꺼려지는데, 싱가포르는 오죽할까. 옆나라 말레이시아에서 좋다고 매일 스타벅스를 마셔대던 나였다. 3,000원과 5,500원의 차이가 그렇게 컸는지 왠지 모르게 마시기 조심스러워졌다. 바로 옆 맥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려고 하니, 엄마가 그냥 카드를 내주면서 스벅에서 마시라고 하신다. 아, 나도 돈 많이 벌어 나중에 해외여행가서 아들들에게 카드 턱턱 내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Day 2-2. 싱가포르에서 차를 사려면
싱가포르에서 종종 그랩을 탔다. 그랩 운전사들은 대부분 훌륭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었다.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니
‘All you need in singapore is money, money, money’ 라고 대답하는 기사님.
그 기사님이 말하길 싱가포르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기위해서는 약 100,000싱달러, 한화 약 1억에 가까운 자동차 등록비를 내야한다고 한다. 그 등록증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땅덩이가 작으니 자동차 공급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일까.
Day 3. 화룡점정, 파리바게트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했을때 4터미널에 입점해 있는파리바게트를 봤었다. 입국할때만 해도 한국에서 하도 익숙한 간판이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2주를 머문 후 싱에서 다시 마주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싱 파리바게트 단팥빵의 맛은 어떨까 하고 궁금하던 차에 애들도 단팥빵이 그리웠는지 덥석 매장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격표를 보니 3.9 싱달러, 한화 약 3,900원. 두 개를 집어드니 8,000원에 육박한다. 한국에서는 신라호텔쯤 가야 단팥빵을 4,000원에 살 수 있을까. 직접 가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국 파리바게트와 같은 맛, 다른 가격은 확실히 혀를 내두를 만했다.
다녀와서 검색해보니 싱가포르는 뉴욕만큼 비싼 물가의 도시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집값, 교통비, 식비가 들어가는 곳을 겁없이 여행한 것이다. Economist Intelligence Unit(EIU) 라는 조사기관에서 150개의 항목을 가지고 133개의 도시를 비교해 본 결과, 7년만에 홍콩을 제치고 가장 비싼 도시(the most expensive city) 가 되었다고 한다. (2023년 조사)
미처 사용하지 못한 세 장의 싱가포르 과학관 티켓이 있는데, 그 티켓을 소진하러 싱가포르를 이번주 일요일 다시 한번 다녀와야 하는것인지 내적 갈등 중이다. 간다 하더라도, 또 다시 얼음물을 가방에 이고서, 많은 싱가포리언들이 그러하듯 식사는 말레이시아에서 하고 과학관만 찍고 오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