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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Mar 05. 2024

나이지리아 사람과의 대화  

 만학도의 꿈 

  말레이시아에서 계획된 총 여정은 4주. 2주는 신나게 놀고 먹으며 걷고 마셨더니 어느새 여행이 중반부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표, '잠자고 있던 영어에 대한 감각'을 일깨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전에 브런치에도 썼었듯이 아이들에게는 잔소리꾼보다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 믿고 있다. 영어에 대한 숨겨진 나의 욕망을, 엄마도 학구열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학원에 같이 공부를 하러 간 적은 없었는데 생애 처음으로 아이들과 같이 학생이 되어 가방을 짊어지고 그 안에는 필기도구를 챙겨 함께 등원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고등학생에서부터 50대 여성분까지 연령대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나처럼 2주만 하는 학생은 없었다. 최소 한달에서 길게는 두달까지 꽤 장기간에 걸쳐 영어 공부를 하러 이곳 말레이시아에 온 분들이었다. 수업은 말하기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기사나 이야기를 읽고 핵심 단어의 뜻을 같이 파악한 후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수업 시작 3개월 전쯤, 사전 입학 테스트를 보고 이 반에 들어온 터라 영어 수준도 웬만큼 비슷하고 영어에 대한 열의도 비슷했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활기찬 토론이 이루어졌고 외국인 선생님의 출신 문화에 대해서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 나이지리아 선생님과의 짧고도 임팩트 있었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는 나이지리아를 떠올리면 영어권 국가라고 떠올리긴 힘들다. 그런데 영어권 출신과 비슷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연유를 물어보니 예전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여서 영어가 공용어라고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영어교육이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영어의 공용화에 찬성하는 편이라고 얘기했더니 그 분은 나이지리아의 비통합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는 영어 외에는 민족어 또는 국가 단일 언어가 없어서 부족 간에 수많은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한국의 정체성은 한국어로 지켜야 할 것이라고 그가 얘기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한 마디.

 "English is just a tool to me." 


 영어로 인해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어려서부터 학교 교육을 받을 때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며, 그로 인해 어느 정도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영어 아니면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로 인해 원만한 의사소통을 서로 할 수 있으며 한국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어 발음이 좋지 않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수 없을지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말 그대로 영어를 의사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대화가 있고 난 후 영어를 하는 나의 발음을 속으로 평가하거나 불완전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자각을 스스로 버리려 많이 노력했다. 그럴수록 영어가 더욱 쉽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발음이 좋던 후지던 편하게 말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으려 집중하자. '발음이 좋다, 후지다.'라는 것도 미국식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시대적 흐름도 'World English'라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세계영어(World Englishes)라는 용어는 필리핀이나 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의 제 3세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영어 변이형들을 '제 3세계 영어들(the third Englishes)이라고 지칭하면서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를 표준 영어(standard english)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 이 외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역별 영어의 특성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촉구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아직 학술적으로나 문법적으로나 또는 입시에서는 표준영어에 대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겠지만, 일단 시험으로서의 영역을 벗어난 영어에서는 더 이상 비원어민들이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처럼 말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특히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 영역들은 표준영어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관점에 따르면 한국에서 통용되는 Konglish도 더 이상 틀린 것이나 잘못된, 수정해야 영역이 아닌 것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아무런 제약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 그리하여 영어를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것이 만학도로서의 목표이자 24년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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