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오만 섬 1편 - 말레이시아의 생경한 주행문화
우리는 마지막 여정으로 티오만 섬을 택했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홀려 있었고, 이 여세를 몰아 스노클링까지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한 달 살기 2주 차 때 즉흥적으로 말레이시아 동쪽 끝 외딴섬을 선택했다. 남편이 무섭지 않냐며 물었지만, 태생이 모험가 성향이라 뭐가 무섭냐는 말로 되물었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여행이 되겠다는 직감이 왔다. 물론 남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외딴곳을 갔을 때 엄마로서 짊어져야 할 불안감과 걱정도 있지만 여행지를 탐험하는 설렘,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벅참 덕분에 기꺼이 그 섬에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머릿속으로 계획한 것을 실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언제나 쉬운 법은 아니다. 최대한 오차를 줄여 상상 속의 여행을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전날 밤 엄습했다. 아침 9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적어도 8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고,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6시에 숙소에서 나서야 했다. 날씨는 덥지만 계절은 겨울인지라 오전 6시에도 깜깜했다.
"얘들아, 티오만 섬 가자."
평소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여행을 오면 나를 닮아 눈을 번쩍 뜨는 아이들. 내복 차림 그대로 나와 애정하는 인형을 한 팔에 끼고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이 나의 마음처럼 비장했다. 이 1박 2일간의 섬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오겠다는 건강한 눈빛이었다.
숙소에서 항구까지 165km. 서울에서 대전 가는 거리다. 마음의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었다. 내비게이션 하나에만 의지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의 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나만 믿은 채 곤히 자고 있는 뒷 자석의 아이들을 보니 더욱 바짝 정신이 들었다.
이곳에는 생경한 주행 문화가 있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간다 싶으면 그 차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 운전한다.
너 길 빨리 트라는 신호다.
저 차가 와서 박을까 봐 백미러로 연신 뒷 차만 보게 된다. 외국인 신분으로 다른 나라 도로 운전하자면 신경 쓸 것 많다. 더군다나 다른 차까지 신경 쓰자니 머리가 아파와 순순히 다른 차선으로 피한다.
항구까지 가는 길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1차선 도로였다. 모닝만 한 차로 시속 90km의 속도로 달려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답답한가 보다. 위험천만하게 중앙선을 넘어 앞지르기를 숭숭 해나가는 차들이 부지기수였다. 한편 나와 함께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려는 차들도 더러 있었다. 뒤꽁무니에 딱 붙어 따라오는 뒷 차와 함께 어두운 새벽이 밝게 이른 아침으로 변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Mersing이라는 항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