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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Mar 20. 2024

직장에서 춤추는 사람

  학사모를 갓 벗고 신규 임용 발령장 받기 전, 기간제 교사 하던 시절 이야기다. 춤에 대한 여운과 미련이 미처 식지 않았을 그 때는 무려 14여년 전인 2010년이다. 그당시 유행하던 노래가 소녀시대 'Run devil run' , 원더걸스 'Nobody' 였다.  방과 후 집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프로젝션 TV를 틀어놓고 원더걸스 ‘nodody’ 총알 춤을 같이 췄더랬다. 우리 교실에 놀러 왔던 원어민 강사도 즉석에서 신발을 벗고 동참했다. 여기저기 소문이 나고 관심을 얻게 되자 5,6학년 각 반에서희망하는 아이들을 모아 창체시간에 댄스부를 만들었다. 소녀시대 춤을 같이 추고, 폴더폰으로 저화질 동영상도 찍어 싸이월드에 업로드 했었다. 남학생들도 적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췄었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돼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모를 것이다.  

 댄스부를 가르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거울이 있는 곳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2층 체조실로 자리를 옮겨 한층 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안무를 가르치고 있던 와중이었다. 교감선생님이 문을 열고 빼꼼 들여다보시더니 야~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를 짝짝 치며 하시는 말씀.

 "춤 동아리를 한번 만들어봐, 예산 지원도 돼."

결국 신규의 패기로 동아리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예산 지원을 받아 간식도 사먹고, 단체 티도 맞추어 입고 혼연일체가 되어 춤을 췄다. 내 생애 다시 그런 열정을 직장에서 불태울 수 있을까? 아쉽게도 무대나 공연은 올리지 못했다. 내가 9월 1일자로 신규 발령을 다른 학교로 받는 바람에 기간제 하던 근무지를 그만 두어야 했다. 춤까지 같이 췄던 사이여서 그랬는지,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간 날 눈물콧물 질질 짜던 열두살의 아이들이 머리에 남아 있다.




 그렇게 나는 경기도의 한 도시로 신규 발령을 받았고, 처음 6학년을 맡아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우격다짐으로 근근히 학급을 운영해 나갔다.

 번외지만 그땐 참 기상천외한 일이 많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교육과 훈련을 거친 후에야 온라인 공간을 개설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른 채, 아무런 사전 학생 교육 없이 단박에 네이버 학급 카페를 개설했다. 아이들이 예쁘고 바른 말만 쓸 줄 알고. 그런데 왠걸, 누군지 뻔히 알 것 같은 누군가가 자신의 뒷담화를 누가 했는지 밝혀내겠다며 욕설과 비속어를 섞어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한 글이 두 차례나 올라온 후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학급 카페를 폐쇄했다.

 한번은 출장으로 일찍 조퇴달고 나갈 일이 있었다. 마지막 6교시를 전담선생님께 맡기고 나갔더니 전화가 왔다. "아무개 3명이 수업 시간에 안들어왔어요."

 6학년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를 시기였다. 교장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은근히 결과에 대한 압박을 넣으셨다. 작년에 우리 시에서 우리 학교가 1등을 했다며 추석 연휴 기간 왕창 내준 학습지가 버거워서 였는지 그 당시 핫했던 싸이월드에 나의 실명을 공개하며 저주를 퍼부은 글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학생에게 들었던 일도 있었다.

  지금은 어이없네, 하며 웃고 넘길만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참 학교 나가기 싫었다. 그렇게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해도 나는 여전히 춤으로 그 버거운 일들을 승화시켰다.

 그 해 여름, 직원여행에 상금 30만원이라는 거금이 걸려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그마치 한 달 친목회비를 건너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어떤 장기를 선보여야 할지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고 있는 중이었다. 12여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 연유로 그들 앞에 서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학년 선생님들 앞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던 그때의 나는 단편적으로 생생히 기억난다. 어떤 용기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직장 동료들 앞에서 대낮에 춤을 춘다는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 대낮의 기세를 몰아 직원여행에서 6학년 대표 선수로 선발되었고 전교직원 앞에서 라이브로 춤을 췄다. 동료들 대부분이 놀란 기색과 환호성을 동시에 보내왔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부끄럽지만 노래 중간에 애드리브 동작을 넣는 것을 보고 프로같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결과도 물론 나의 것이었다. 그 해를 생각하면 직원여행 춤 생각이 가장 먼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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