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밝은 사람'으로 통했다. 목소리가 크고 웃음이 많아서 친구들과 있으면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참아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같이 지치기보다는 "힘내보자!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 거야!"하고 응원했다. 그러다 보니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친구나 후배들이 잘 따라주어 대학 시절, 동아리 대표와 학과 대표도 맡았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경제방송 앵커'를 첫 직장으로 도전했고, 5년 넘게 방송국에서 매일 생방송을 했다. 이후 금융회사로 이직했고, 야간 MBA대학원도 같이하며 즐거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좀 많이 먹어 더부룩한 배를 안고 저녁 수업에 가던 때였다. 유독 그날따라 강의실에 수강생이 가득했고, 웅성이는 소리가 꽤 시끄러웠다. 나는 그날 있을 3분짜리 간단한 발표를 대충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어차피 프로젝트 계획만 발표하는 3분짜리니까 가볍게 끝내자.'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호흡이 가빠져왔다.
'왜 이러지? 발표 때문인가? 긴장할 일이 없는데...'
'나 무려 5년 동안 매일 생방송했던 사람이야! 이러면 안 되지‘
하지만 마음이 진정되기는커녕,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이거 뭐지? 갑갑한 느낌이 드는데.. 숨 쉬기가 힘들어.'
'발표할 때 이러면 어떡하지? 너무 창피한데...'
'혹시 발표하다가 "나 못하겠소"하고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왜 나만 갑자기 이렇게 숨을 못 쉬겠지?'
...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인가?' ...
심장이 빨리 뛸수록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더 복잡해졌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 결국 나는 강의장을 나오고 말았다. 급기야는 건물 안에 있는 것마저도 갑갑하게 느껴져 건물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건물 밖 공원에 나왔는데도 마음은 쉽게 진정이 안 됐다.
'왜 이러는 거지? 발표 때문이라면 말도 안 되는데? 제발 진정해 보자. 앉아서 숨을 좀 골라보자.'
'내 발표까지 이제 50분밖에 안 남았어. 빨리 진정해야 한다니까!'
숨을 차분하게 쉬려고 할수록 더 갑갑해지고 호흡은 힘들어졌다. 여기도 벗어나야 할 거 같았다. 마치 지구를 떠나야만, 공허한 우주로 나가야만 이 답답함이 사라질 거 같았다. 내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되고 당황스러웠다. 발표 수업이 진행되는 세 시간 동안 내 가슴은 계속 가쁘게 뛰어 강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그때 내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했고, 낯선 내 모습에 당황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놀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다. 회사 가는 버스 안에서 숨이 가빠질까 봐 걱정됐다.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달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이 상상됐다.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점심을 같이 먹을 때, 모든 순간이 걱정됐다. 이유를 모르는 가슴떨림과 숨 가쁨이 일상생활을 망쳐버릴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겨우 회사에 출근했지만, 오후에 있을 회의를 생각하니 버틸 수가 없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했다. 직장상사에게 솔직하게 내 증상을 이야기하고 반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