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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돈케어 Aug 31. 2023

2. 공황장애를 약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마침 동네 후배가 알려준 정신건강의학과가 집 근처에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초진은 한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안 거지만,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는 진료시간이 길어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처럼 급한 환자가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휴대폰에서 지도 앱을 켜고 근처의 모든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돌렸다.


 "혹시 10분 내로 도착하실 수 있나요? 환자분이 취소한 예약이 있긴 해서요."

 "10분요? 택시 타면 충분합니다. 바로 갈게요."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드는 한편, ‘진료를 받는다고 증상이 괜찮아질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도착한 병원은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병원에서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심리치료지원에 대해 소개해주었고, 초진비용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개인정보 이용동의에만 사인해 달라고 했다. 개인정보고 돈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급히 서명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말씀하신 증상은 공황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약을 드셔보시고 이후 결과를 보죠. 중간에 다시 공황증세가 나타나면 드실 수 있는 '필요시 약'도 따로 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먹으면 하루종일 멍한 눈으로 다니는 거 아냐?' '중독되는 건 아닌가?' '평생 먹어야 하면 어떡하지?' 따위의 생각들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약에 대해 물었더니, 의사는 익숙한 듯 차분히 처방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제가 처방해 드리는 약은 항불안제와 항우울제입니다. 항불안제는 한 15분 있으면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요. 즉각적인 효과 때문에 의존성이 생길 수 있는데, 환자분처럼 의존성을 걱정하는 분들은 보통 중독될 때까지 드시지 않습니다. 다만 항불안제는 치료효과는 없습니다. 항우울제가 장기적인 치료효과가 있는 대신, 즉각적인 효과는 없습니다. 항우울제 효과는 한 2~3주 드신 이후부터 나타날 거예요."




 의사가 얘기한 대로 항불안제는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급하게 뛰던 심장이 이내 잦아들었고, 자기 전에도 먹었더니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졌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니 전보다 기분이 나아지고, 다시금 일상을 위한 힘이 생기는 듯했다. 물론 중간중간 갑자기 심장이 뛰거나 불안해지는 증상은 있었다. 그러나 전보다 증상은 덜 했고, 약의 효과는 정말 컸다.  


 만약 독자 중에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겹다면 당장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길 추천한다. 공황을 이겨내려면 내 안의 힘이 필요하다. 증상에 압도되어 자아가 웅크려있을 때는 새로운 시도조차 큰 벽처럼 느껴진다. 약으로 증상을 어느 정도 안정시켜야 공황을 이겨낼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할 수 있다. 또한 약을 적정량으로만 쓴다면 약을 중단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으니, 증상 초기에는 꼭 약의 힘을 빌려보자.  


 나는 약의 효과를 느끼고 나서는 정말 꾸준히, 정해진 대로 약을 먹었다. 내 마음대로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늘리지 않았고,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먹었다. '필요시 약'도 거의 먹지 않았다. '필요시 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간에 찾아오는 불안을 잠재우는 든든한 우군이 됐다.


많이 마시던 술도 줄였고, 아침마다 아파트 주변을 뛰고, 안 먹던 아침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휴대폰 앱을 이용해 명상도 했다. 불안을 키우는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고,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행동을 더 많이 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또 공황이 올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새로운 곳도 잘 가지 않았다.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만남이 줄었다. 만날 기회가 생기더라도 다른 핑계를 대어 나가지 않았다.


증상 초기때보다는 많이 안정되었다고 스스로 느꼈지만, 공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공황증세는 나타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좁은 공간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갑갑한 느낌을 느꼈고, 대학시절에는 만원 지하철에서 뛰쳐나간 적도 몇 번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게 공황이었나 싶었고, 약이 없다면 공황증세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약을 끊어야 할텐데...’


조바심이 들었고, 무력감을 느꼈다.




 "공황은 언제든 또 겪을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의사에게 말했더니, 의사는 항우울제 용량을 더 높여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몇 주 후부터는 '내가 언제 공황이 있었지?' 싶을 정도로 내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자신감은 처음이었다. 불안한 느낌은 이제 거의 느끼지 못했고, 언제든 좁은 공간에 들어가더라도 숨이 가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전처럼 많아졌고, 술자리에서 술집 사장과 싸움이 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증'이었던 거 같다. 그때부터 내 처방약엔 항우울제가 빠지고 양극성 장애 조절제가 추가됐다.


 한 달 후, 드디어 나는 병원을 졸업했다. 항우울제를 끊었는데도 공황증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양극성 장애 조절제도 이미 서서히 줄인 상태였다. 어느 정도 내가 공황증세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병원 마지막 날, 의사는 나에게 약을 좀 더 먹겠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자신만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증상이 완화됐고, 약을 먹지 않아도 증상이 없다는 게 나름 뿌듯했다. 증상이 있은지 넉 달 만이었다. 이 때는 명상이나 운동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증상이 없으니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졸업 후 2주가 지났을 때다. 침대에 누워 잠이 스르륵 들었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거실로 뛰어나가 숨을 골랐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었다. 부지불식간에 숨을 못 쉴 거 같은 두려움이 나를 덮쳤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내가 너무 자만했던 걸까? 약을 급하게 끊은 걸까? 명상을 안 해서인가? 2주 전의 모든 순간이 원망과 후회로 뒤덮였다. 나는 첫 번째 공황보다 더 크게, 거의 발작 수준으로 공황을 느꼈다.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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