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다음 날부터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이 잘 듣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강한 불안이 나를 덮치곤 했고, 항불안제를 먹으면 졸음이 쏟아지면서 멍해져 일을 할 수 없었다. 자려고 하면 잠이 들지도 않았다. 휴게실에 누워 조금 눈을 붙이려할땐 ’토도도독’하고 가슴이 뛰어 불쾌하기만 했다.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니,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내 증상이 이제 약으로는 안되는 건가?‘ 더 큰 불안이 덮쳤다. 악순환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공황은 영원히 함께해야 할 것 같았다.
'과연 공황장애는 치료가 가능한 걸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그래도 방송에 잘 나오는 걸로 봐선 완치한 거 같은데, 나는 왜 여전히 제자리인지 답답했다. 내가 느끼기에 약의 한계는 분명했다. 치료제라기보다는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해 주는 '보조제'역할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과연 공황장애라는 게 극복할 수 있는걸까, 혹은 치료할 수 있는 것일까... 강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나를 담당한 의사도 공황장애를 앓아본 적이 없었다. 내 말만 듣고 대략 이해하고 증상에 대한 약을 줄 뿐이지,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의사도 알지 못했다. 내가 설명하는 말을 의사는 ‘이해’할 뿐, ‘동감’하지는 못했다. 결국 내가 공황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깨닫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 증상은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책, 블로그, 유튜브, 상담센터들을 찾아 공황장애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공황장애와 관련된 책만 10권을 넘게 봤다. 어떤 책은 밤새서 하루 만에 독파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유튜브에서 전문가들이 만든 불안/공황장애 영상은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보고 중요한 것은 메모해 직접 해봤다. 공황장애에 효과적인 '인지행동치료'라는 걸 알게 돼서 실제 인지행동치료를 받아봤고, 인지치료 기반의 명상프로그램인 MBCT도 해봤다. EBS 위대한 수업에 불안/공황장애 전문가가 나온다고 해서 찾아보고(보르빈 반델로 교수),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대가인 크리스틴 네프 교수의 워크북도 찾아 실제로 해봤다.
여러가지를 알아보고 직접 해보니 나에게 어떤게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공황장애에 대한 오해, 편견을 걷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공황발작과 많이 친해졌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공황발작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나는 더이상 놀라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잡담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효과를 봤던 문구, 생각들을 정리해서 다음 글부터 소개할 계획이다. 공황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왜 발생한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공황증세에 대응할 수 있을지도 알아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황증세를 무난히 넘길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 이 글이 지향하는 바이다.
나는 약을 끊은 지 4개월 여가 되어 간다. 약은 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용량을 올렸다 낮췄고, 약을 끊을 때는 최소 투여용량의 절반 이하까지 상당기간 약을 먹으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지금도 명상과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고, 생각의 습관들을 바꾸어 나가려고 꾸준히 노력 중이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생활습관'과 '생각습관'을 바꿀 수 있다면 언제든 공황증상이 찾아와도 잘 넘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내가 공황장애로 고생할 때는 순간순간이 너무 힘들었고, 고통이 매일 반복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의 희망이라도 가진다면 이미 달라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변화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