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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헌법학

by 한량돈오

지구헌법학, 영어로 ‘Earth Jurisprudence’, 매우 생소한 용어죠? 원래 법학(Jurisprudence)은 라틴어의 ‘정의’(jus)와 ‘통찰’(prudentia)에서 유래한 단어를 합친 말입니다.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법학도 ‘legal science’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헌법은 서구의 근대 이후 ‘국민국가’ 단위의 영토를 기반으로 하여 국가구성원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법체계의 기본 틀이죠. 그런데 전통적인 법학이 과연 지구의 생태 위기에 제대로 대응했는지가 문제입니다.


지구의 생태 위기는 인류를 비롯하여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 문제죠. 그 위기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존재는 인간(man)이고 남성(man)이죠. 그러나 그 책임을, 종(種, species)으로서의 인간으로 환원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균등하게 져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유럽의 휴머니즘에서 인간은 일반적으로 유럽인을 의미하기도 했고요(Charles W. Mills, 정범진 옮김, 『인종계약: 근대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아침이슬, 53쪽).


문제 해결의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원인과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개발주의와 성장주의의 이익을 맘껏 누리며 제국의 영광과 자본주의 욕망을 맛본 나라들이 탄소배출의 핵심적인 원인 제공자니까요. 사람의 ‘주거지’가 모여 있는 1%의 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77%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경향신문, 2019. 10. 30.). 그 1%는 유럽과 북미 그리고 동아시아겠죠. 그들은 인간과 생명 그리고 자연을 포함한 총체적 지구 공간을 국가적으로는 물론 산업적으로 사유(私有)하고 지배합니다. 이른바 서구식의 근대 국민국가 체제죠.



인류는 제국주의의 영토 전쟁으로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주권 관념은 약소국의 방어 논리가 아니라 강대국이 지구에 대해 배타적으로 분할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였습니다. 자본주의 산업 경제체제는 주권의 엄호 아래 무분별하게 지구를 훼손했습니다.


지구의 생태 위기가 인류 공동의 탓인 것처럼, 그래서 이제는 함께 생태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못마땅한 까닭입니다. 생태주의 깃발을 내건 나라들도 당장 멈추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는 지구적 안전보장 문제인데, 헌법의 국가긴급권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른바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엄중하게 경계(警戒)하지만, 지구 생태를 훼손하는 산업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한 지 오래고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산불 상황은 지구법학의 과제가 절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책임 없는 가장 약한 사람들과 자연이 가장 먼저 피해를 봅니다. 생태적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자고 손해입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지구의 생태를 지켜온 사람들인데요. 지구 위기가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의 핵심과 본질을 왜곡합니다.


지구법학은 인간이 지구라는 존재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인정하고 인류를 비롯한 모든 존재의 가치와 생명을 존중하는 법규범의 사고 체계입니다. 지구법학은 기존의 헌법 또는 헌법학에 대하여 그 존재의의와 지향점을 달리해야 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합니다. 다만 지구법학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법체계는 아닙니다. 아직은 지구법학 관점을 실현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시기죠. 그렇지만 그 모색은 절실하고 긴급합니다.


지구법학이라는 용어는 신부이자 생태철학자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에서 유래합니다. 그는 인류가 역사적 발전을 거쳐 실제로 도달한 곳은 쓰레기 세계(Waste World)라고 진단합니다. 지구법학에서 헌법학은 ‘지구’에 대한 헌법학이 아니라 헌법학에 대한 지구적 관점의 학문입니다. 지구법학에서 헌법학은 헌법의 패러다임 전환, 즉 헌법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합니다. 규범의 영역 공간 차원에서 헌법은 분권지방주의, 국민국가주의, 평화국제주의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구법학에서 헌법학은 지구법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지구주의헌법입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주의, 생명주의 헌법이기도 합니다. 헌법 및 국가 체제 관점에서 ‘생태지구주의헌법’라 부를 수 있습니다.


지구주의헌법학은 지구법학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기존의 헌법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다만, 헌법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기존의 방법론은 서구의 근․현대 헌법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헌법패러다임이 선점한 이념과 가치 그리고 제도 자체가 지구생태주의 헌법 이념과 충돌할 뿐 아니라 기존의 헌법 제도 또한 지구생태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로서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생태주의헌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지구헌법 차원의 생태적 이행기정의론이 필요합니다. 그 필수적인 첫 번째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입니다. 하나의 예로서 유엔의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2007년도 제4차 평가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관찰한 지구온난화의 대부분은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것은 주로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 및 토지 개발과 관련한 인간의 활동에 원인이 있다고요. 안드레 블첵(Andre Vltchek)이 말한 것처럼, 유럽이 오늘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복지 사회를 이뤄낸 배경에는 그 옛날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수많은 가난한 나라의 민중과 자연을 무참히 수탈한 덕분이었습니다(Andre Vltchek, 김정현 옮김, “유럽의 끔찍한 범죄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녹색평론」, 제139호, 2014, 154-170쪽.). 따라서 지구적 정의(正義)는 ‘선진국’ 및 자본의 지구에 대한 선취와 훼손 그리고 약탈에 대한 고백을 전제로 합니다. 한스 요나스는 인간이 자연을 훼손했으면 도덕적 책임뿐만 아니라 법적인 책임까지 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구 훼손에 대한 책임과 의무의 배분과 그 실천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선진국과 자본을 향합니다. 그 내용은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파괴한 종자학살(biocide)과 지구학살(geocide)의 책임과 향후 지구에 대한 회복적 정의를 구현해야 할 의무와 그 이행을 담보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지구 파국 예방의 과제를 설정해야 합니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 개념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연관하여 전체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공통점을 발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유토피아적인 구원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예언에 주의를 기울여서 미래의 불행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이나 가까운 자연환경과 같은 직접적 대상뿐만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미래세대의 책임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합니다(양해림,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생태학적 사유 읽기』,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마지막으로 ‘지구 생태 보호의 동맹체제’가 필요합니다. 그 주체가 누구일 것인가는 핵심적인 문제인데요. 단순히 국가들의 집합체일 수는 없습니다. ‘지구 생태주의 선언들’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프랑스 혁명에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또는 러시아 혁명에서의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을 넘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선언이어야 합니다.


<토마스 베리 관련 문헌>

Berry, Thomas(2006). Tucker, Mary Evelyn 엮음. evening thoughts. San Francisco: Sierra Club Books.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06). 김준우 옮김.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에코조익. 2006. 12. 23. 알라딘 ebook.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09). 이영숙 옮김.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대화문화아카데미. 2009. 1.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11). 황종렬 옮김. 그리스도교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 바오로딸.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13). 맹영선 옮김. 지구의 꿈. 대화문화아카데미.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15). Tucker, Mary Evelyn(터커, 메리 에블린) 엮음. 박만 옮김. 황혼의 사색. 한국기독교연구소.

Berry, Thomas(베리, 토머스)(2015). 박만 옮김. 황혼의 사색. 한국기독교연구소. 알라딘 ebook.

Berry, Thomas(베리, 토머스)/ Swimme, Brian(스윔, 브라이언)(2010). 맹영선 옮김. 우주 이야기. 대화문화아카데미.


* A universal environmental law that supports conservation and sustainability for the well-being of the planet, 제작자 Julia,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4368 x 2448px, 파일 유형 JPEG, 범주 과학,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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