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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에서 국가와 사회

by 한량돈오

대한민국의 헌법과 한국 사회의 헌법학은 서구의 근대헌법과 헌법학, 특히 독일 헌법 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서구의 근대헌법은 국가와 사회의 구별에서 시작합니다. 헌법의 배경을 이해하는 선에서 기초적인 개념과 몇 가지 얘기를 하려 합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는 전제 군주국이죠. 루이 14세가 말한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이해되죠. 사회는 없고 국가만 존재합니다. 헌법학에서 사회는 개인들의 자율적인 영역이자 공간인데, 근대 이전에는 사회적 의미에서 개인이 존재하지 않죠. 왕이 곧 국가고, 신민(臣民)은 왕의 소유물이니까요. 신분사회에서는 개인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계층으로 표시되죠. 근대에 이르러 전통적 권위나 집단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가 등장합니다.


근대 시민 헌법은 사회 영역에 존재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목적입니다. 전통적인 헌법 개념은 오로지 ‘국가’의 조직, 구조, 체제를 의미하면서 국가의 구성과 역할 그리고 기능을 규율하는 법이었죠. 근대 시민 헌법이 등장하고 나서야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 즉 국가의 간섭과 개입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합니다. 바로 자유권이죠.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4조는 “자유는 타인을 해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확보하는 것 이외에는 한계를 가지지 않는다. 이 한계는 법률로써만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연권 사상 또는 천부인권 사상입니다. 헌법학에서는 인권을 전(前) 국가적 권리라고 합니다. 국가보다 중요성에서 논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의미죠.


사회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려니 막강한 국가의 힘을 약화해야죠. 국가권력을 쪼갭니다. 권력분립 원리죠. 시민의 대표가 승인해야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하는 ‘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조세법률주의가 생겨납니다. 왕의 자문기관이었던 의회를 시민의 대표로 구성하는 일이 선행되었죠.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르라는 법치주의도 구성되고요. 개인의 자유를 구체화해서 목록을 만들에 헌법에 담습니다. 기본권 목록이죠.


19세기 이르러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대두됩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영역의 사안이죠. 남녀 차별과 같은 사안도 그렇고요. 국가로부터의 자유권 보장만으로는 사회적 영역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회에서 국가의 개입 없이 불평등 사안이 해소되지도 않고요.


소설가 아나똘 프랑스는 “법의 장엄한 평등성이 부자나 가난뱅이 모두에게 다리 밑에서 자는 것,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 빵을 훔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비판합니다. 바를레(J. F. Varlet)는 「사회적 상황에서의 인간 권리의 엄숙한 선언」(1793)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민중해방을 위하여 충실한 자유권의 보장, 형식적인 자유․평등만이 아니고 실질적인 평등․사회경제적 약자 배려 강화, 교육 중시, 압제가 존재하는 경우 그것에 저항하는 ‘봉기권’ 인정, 인민 주권의 요구 등이었습니다.


국가의 개입이 필요해집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사회 영역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자유방임주의 원칙에서 국가가 사회 영역에 개입하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역사적으로 국가-사회관계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사회주의로서 민주주의 원리를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는 경우입니다. 헌법적 대응은 사회주의헌법이죠. 1917년 러시아혁명과 1918년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인민의 권리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인권선언과 사회주의헌법이 등장했습니다.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의 정치적․경제적인 인간소외 상황은 본래 자본주의 체제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그 근본적인 해결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복지국가로서 정치와 경제의 갈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적 경제의 성격을 보호하는 경우입니다. 헌법적 대응은 사회국가 헌법이죠. 사회에 개입하는 국가가 ‘사회국가’죠. 사회 영역 관련 기본권이 사회적 기본권이고요.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을 계기로 인권의 내용이 사회화했습니다. 노동자 권리 보장,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생존권적 기본권), 교육을 받을 권리, 환경권 등이 등장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에게 ‘인간다운 생존’과 정치적 참가를 보장합니다. 네덜란드 학자 반 데어 벤(Van Der Ven)은 ① 사회적․경제적 노동에 관한 권리, ② 경제적 공동결정권, ③ 생존보장의 권리, ④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권리, ⑤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발전에 관한 권리 등으로 사회권을 분류합니다.


세 번째는 파시즘으로서 정치적 이해의 조직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파기하고 명령과 복종의 원리를 사회 전체의 조직원리로써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헌법적 대응은 파시즘 헌법이죠.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1933년 「수권법」(授權法, 입법권을 총통, 즉 히틀러에게 넘기는 법)을 통해 나치스 파시즘 체제로 전락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점에서 사회국가 헌법 유형과 같지만, 근대 시민 헌법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고 민중의 불만을 실력으로 압살함으로써 대처하는 점에서 다릅니다.


가장 늦게 등장한 세 번째의 파시즘 체제가 가장 먼저 붕괴하죠. 1945년에요. 첫 번째 사회주의 체제는 1990년대 소련 등 동구 공산권의 해체와 함께 거의 사라집니다. 두 번째 사회국가 또는 사회복지국가 체제는 변질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화하면서 ‘사회’ 또는 ‘사회복지’가 시장 논리에 잠식되어 약화했습니다. 이주민 또는 외국인에 대한 배척이 심해지면서 정치 체제도 민주주의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파시즘 체제론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사회민주주의를 망가뜨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제약을 제거하여 자본의 유연성을 최대한으로 증대했습니다. 국민국가의 주권은 경제적 영역에서 그 한 귀퉁이를 상실하며, 공적인 영역에 대해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국가는 경제적 영역에서 자본에 대하여 규제의 최소국가, 사회적 영역에서 주변 계층에 대하여 복지의 최소국가 그리고 정치적 영역에서 일반 국민에 대하여 민주주의의 최소국가이면서 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위압적으로 강한 국가를 지향합니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경제적 비능률성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신입헌주의”라는 말이 생겨난 지도 꽤 되었습니다. ‘국제적 정치 경제 논리가 국민국가의 재정․통화․무역․투자 정책으로 관철될 수 있도록 국민국가 내의 민주적 결정 과정을 제한함으로써 정치가와 시민으로부터 소외시켜야 함’을 역설하는 논리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국민국가 재구조화를 부추기는데, 그 결과 나타나는 헌법 현상은 근․현대 헌법 규범의 전도(轉倒)적인 붕괴입니다. 근대헌법이 추구했던 정치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최소국가와 현대 헌법이 추구했던 사회복지 국가 원리에 입각한 적극 국가는 정반대로 전화합니다. 국가는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억압적으로 간섭하여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인권을 훼손하는 한편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최소한으로 개입함으로써 자본의 반인간적 이윤추구를 방임합니다. 경제적 효율성 원리가 자유주의적․사회국가적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정치의 시장화(市場化)’는 ‘정치의 영역을 결정할 수 있는 국민과 경제의 영역을 결정할 수 있는 자본가 사이에 형성된 일종의 권력분립 균형상태’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미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경제 귀족은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여 “새로운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그것을 법적 정당성으로 슬며시 포장”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구별, 자유에 대한 이해, 국가의 구성과 역할 그리고 책무 등 헌법적 논점들이 과거의 관점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국가 개입의 축소가 사회 영역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동시에 국가 개입의 강화가 개인의 자유를 위협합니다.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불평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국가의 자유 보장은 차별적으로 이뤄집니다. 사회적 재난을 막기 위해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데, 비대해진 국가는 오히려 더 사회적 참사에 무능합니다. 그 와중에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는 눈에 띄게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의 문제점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양자택일 또는 양자가 양립하는 ‘국가 간 평화 체제’가 아닙니다. 양자의 차이점이 무엇이든 둘 다 산업적 진보를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업적 진보는 오늘날 지구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태계 붕괴에 대해 다른 어떤 원인보다 가장 큰 원인입니다. 토마스 베리는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즉 ‘진보’하려는 그 헌신이 오히려 지구의 기본 생명 체계를 붕괴시켰다는 것이 엄청난 아이러니라고 진단합니다.


토마스 베리가 말한 ‘지구법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혼돈의 세상에 어느 정도 빛이 될지 때론 절망합니다. 헌법이 도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려 하는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다시 막막해졌습니다. 저의 경우는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라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간신히 제가 가까스로 그저 서 있을 수 있게 지지대 역할을 할 뿐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구별이라는 근대헌법의 출발점에서 시작하면 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국가도 잘 모르지만, ‘사회’를 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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