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헌법 전문(前文)인데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라는 부분에서 나옵니다.
두 번째는 제4조입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4조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무엇인지를 살피려 합니다.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은 1972년 박정희의 내란 이후 개정한 ‘유신헌법’에서 등장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책임과 의무를 완수”라고 규정했습니다.
1972년 이전에 5․16 군사 반란 이후에 개정한 1962년 헌법에서는 “민주주의 제 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의무를 완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민주주의 제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라고 규정했습니다.
제헌헌법은 민주주의 제도들을 통해 시민들이 모든 영역에서 균등한 기회를 바탕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1962년 헌법은 시민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빠졌습니다. 대신 특이한 점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는 표현을 새로 집어넣었습니다. 제헌헌법에서는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한다고 했거든요. 군사 반란 세력의 새로운 민주공화국은 반공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제한적인 공화국이었습니다.
유신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을 전제로 하여 기회균등, 능력 발휘, 책무 완수를 규정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임 제한 없는 종신 집권 체제,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사실상 임명,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모든 법관 임명권 등이 유신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내용이었습니다. 국순옥은 폭력적 통치 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한미방위 협정과 국가보안법을 기축으로 한 안보 법체계가 한층 정교해지면서부터라고 봅니다. 유신헌법 체제는 신식민지 파시즘 체제로서 민주공화국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죠(국순옥, 『민주주의 헌법론』, 아카넷, 2015, 495, 496쪽).
87년 민주화를 거쳐 개정한 현행 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삭제하지 않은 것은 헌정사를 경시한 처사입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본격적으로 헌법해석 영역에 등장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판례에서 입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또는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 질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사법권의 독립 등으로 이루어진 체제입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관해서는 헌정사적 배경과 무관하게 다시 해석해서 쓸 수 있다는 의견과 유신헌법의 산물로서 해석으로 해소할 것이 아니라 개헌으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규정된 만큼 다시 해석해서 써야 한다는 관점인 거죠. 문제는 해석 내용이죠.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나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법률의 개념이 다의적이고 그 어의(語義)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때는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을 해야 함을 먼저 말합니다. 즉 위헌적인 해석은 배제하면서 합헌적이고 긍정적인 면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논리로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살립니다.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당시에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가보안법은 한시법이고 형법으로 규율할 수 있으므로, 보안법을 폐지하자. 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으면서 형법을 제정하면 중복 문제가 생긴다.’라는 의견을 계승하지 못한 거죠.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제5항의 규정은 일정한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축소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준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면서 간접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내용을 해석한 거죠. 헌법에 합치하여 법률을 해석한 게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끌어들인 겁니다.
헌법재판소 판례의 문제점은 ① 반국가단체, 즉 북한을 전제로 한 점, ② 헌법 규범에 어긋난 경제질서를 포함한 점, ③ 법률로 구체화해야 할 권력분립, 의회제도, 선거제도 등을 나열한 점, ④ 국가보안법과 연결하여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의 ‘파괴․변혁․위해(危害)’를 이유로 사상․표현을 금지한 점 등입니다.
한마디로 현행 헌법에 반대하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파괴․변혁․위해(危害)’를 가하는 게 됩니다. 찬양․고무는 표현의 문제이므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헌법적 근거입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가 되는 요소는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제기될 때마다 헌법재판소가 판단하여 추가할 수 있게 됩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는 헌법재판소 스스로 말한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와도 다를 뿐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표현의 원조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에는 없던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표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헌법 전문의 논리 구조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 각인의 기회균등 → 각인이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 → 항구적인 세계평화 → 인류 공영 →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 위에서 헌법 전문의 논리 구조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제헌헌법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입니다. 헌법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를 줘서 개인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공화국 헌법 체제를 지향합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 그리고 미래세대의 삶을 목표로 한다면, 사상․표현의 자유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사상․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미 70년 전에 낡은 법으로 평가한 국가보안법을 유지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국가보안법 없이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해 헌법의 가치와 규범에 부합하는 제도를 고민해야 합니다.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기보다 시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 재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조정하며 지원하는 법률들을 꼼꼼히 가다듬는 일이 중요합니다. 헌법은 민주공화국이 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는 지시등일 뿐이고,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항로는 지금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들과 함께 과거 헌정사를 반성하며 미래를 생각해서 잡아가야 합니다. 전쟁과 핵무기 그리고 기후 위기라는 험하고 거대한 파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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