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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주의

by 한량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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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유엔 창설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엔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전쟁 방지와 평화유지를 목표로 창설된 후 오늘날 193개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입니다.


유엔의 설립 취지에 무색하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전면 군사작전을 개시하여 대량 학살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엔 OCHA는 2025년 10월 1일 기준 팔레스타인 측 사망 66,148명(가자 보건부 집계 인용), 부상 168,716명으로 집계합니다. 대규모 공습·지상전으로 가자 인구의 약 90%가 반복적으로 대피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죠.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일으켜 지금까지 전쟁 중입니다.


한국 헌법은 제5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헌법들은 양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평화주의에 관한 조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헌법적 보장유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는‘평화헌법’으로서 군비를 포기하거나 제한하는 헌법입니다. 가장 국제평화주의에 충실한 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수단으로써의 군비를 축소․제한하거나 포기하는 내용의 헌법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 헌법 제9조는 침략적 전쟁뿐만 아니라 자위(自衛)나 제재를 위한 전쟁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전쟁을 포기함은 물론 군비(軍備) 자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실질적인 군대인 자위대를 설치․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파병 근거 법률까지 제정한 상태입니다. 더욱이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곧 평화헌법을 포기할 태세입니다. 2025년 10월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64)이 당선되었죠. 그는 10월 15일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자위대를 명기하는 헌법개정 추진과 재정 지출 확대 등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사회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기본법 제26조 제2항은 “침략전쟁을 하려고 고안된 무기의 제조․운반․거래는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입니다.


두 번째는 통치권의 제한 또는 국제기구에의 이양입니다. 평화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통치권을 국제기구에 이양할 수 있음을 규정하거나 통치권의 제약에 동의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헌법입니다. 독일기본법 제24조 제1항과 이탈리아 헌법 제11조가 이에 해당합니다. 즉 독일기본법 제24조 제1항은 “연방은 법률에 따라 통치권의 일부를 국제기구에 양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헌법 제11조는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써의 전쟁과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의 전쟁을 포기한다.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는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평등한 조건에서 필요한 범위의 통치권 제한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지향하는 국제기구의 설립과 발전을 촉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죠.


세 번째는 평화교란 행위를 처벌하는 유형입니다. 자국민의 평화교란 행위를 명문으로 금지하고 있는 헌법인데요. 독일기본법 제26조 제1항이 이에 속합니다. 독일기본법 제26조 제1항은 “국가 간의 평화적 공존을 교란하는 행위, 특히 침략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는 위헌이다. 이러한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영세중립의 선언입니다.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은 헌법 등에 따른 일방적 선언 또는 국제조약에 따라 다른 국가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할 의무를 영구히 부담하는 국가적 지위를 말합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10월 26일 연합군(미·영·프·소)의 점령 해제를 조건으로 「오스트리아 영세중립법」을 제정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대외적 독립과 영토의 불가침을 위해 발적으로 영세중립을 선언하며, 이를 유지·방어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제1조입니다. 이 법은 헌법의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스위스는 연방헌법의 여러 규정에서 중립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54조 제2항에 따르면, “연방평의회는 스위스의 독립과 복지를 지키고, 국제적 협력과 인권 존중을 증진한다.” 제185조 제1항에 따르면, “연방평의회는 외적 안전, 독립 및 중립의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제173조 제1항 a호(연방의회 권한)에 따르면, “연방의회는 연방평의회, 연방행정기관, 연방법원에 대한 최고감독권을 가진다. 또한 스위스의 대외적 안전,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 조치를 한다.”. 스위스는 1815년 빈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국제법상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받았습니다. 스위스의 중립은 군사적 비동맹(군사동맹 불가입)과 전쟁 불참(교전국 지원 금지)의 원칙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완전한 고립주의는 아니며, UN, OSCE, 국제적 인도주의 활동 등에는 적극 참여합니다. 2002년 UN 정회원 가입도 헌법상 중립 원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해석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헌법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자신의 종교적 혹은 양심적 신조에 반하는 경우 군복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제9화 양심의 자유(https://brunch.co.kr/@idonoh/19)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이 이에 해당합니다.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은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집총 병역을 강제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침략전쟁을 금지하는 헌법입니다. 침략전쟁의 금지란 정복을 위한 전쟁 또는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써 전쟁만을 금지하고 자위를 위한 전쟁은 허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많은 나라들이 취하는 유형입니다.


한국 헌법에서 국제평화주의는 평화공존,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각 민족국가의 자결권 존중, 국내문제 불간섭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국가 목표 원리입니다. 그리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데요. 외국의 군사적인 선제공격에 대항하여 자기 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나 무력행사만이 허용될 뿐, 그렇지 않은 군사적 행동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제관행 또는 국제법 문헌상의 지배적 견해는 예방적 공격 및 예방적 자위는 국제법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자위전쟁에 대한 헌법적 판단에는 ‘의심스러울 때는 평화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판단’한다는 헌법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침략 국가를 돕는 일은 헌법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자신의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쟁 관련 행위를 묵인하거나 나아가 지원하는 경우요. 한국의 영토를 침략 국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경우요. 침략 행위로 간주해서 위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평화공존의 노력, 국제 분쟁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해결, 핵무기의 생산금지 혹은 사용 제한, 군비의 자발적 감출, 평화 질서 교란자(전쟁 도발자)에 대한 제재 수단 마련 등을 조치해야 합니다. 외교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미국,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국제평화주의는 양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만의 책임은 아니니까요.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들이 책임져야 하죠.


유엔의 역할과 그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유엔에서 이른바 거부권은 평화를 위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침략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특정 사안에 관련된 국가에 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이상하죠. 불합리합니다.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유엔 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일본의 평화헌법 폐지를 막기 위해서라도 평화헌법 조항이 모든 나라의 헌법에 명시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이상적인가요? 법은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거 아닐까요? 분쟁 없는 사회를 지향하므로 법과 재판이 있는 거 아닐까요? 범죄 없고 분쟁 없는 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규범적으로 옳죠. 규범이 잘 지켜지도록 노력하는 게 시민들의 책무고요. 국제 평화를 향해 전쟁에 반대하고 군비의 축소를 넘어 폐지에 이르도록 하는 의식 전환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국가 간의 국제 평화를 넘어 인간 아닌 존재들과 종(種)간 평화도 함께요.


* 이미지 출처: Globe split: chaos and peace in a surreal global image. International policy. The new world order: speculation, reality, and global power structures. Conspiracy theories. Historical roots. 제작자 Ruslan,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6000 x 4000px, 파일 유형 JPEG, 범주 기술, 라이선스 유형 표준


** 이미지 출처: Minimal paper-cut illustration of Earth globe with flying doves and olive branches on blue background symbolizing world peace and unity perfect for International Day of Peace, 제작자 Anastasiya Ri, AI로 생성됨.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5824 x 3264px, 파일 유형 JPEG, 범주 동물,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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