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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국가의 헌법 체제

by 한량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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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따라 <헌법방랑기>도 10월 26일(일) 발행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국가와 사회의 개념적 구분 과정은 18세기에 시작했습니다. 기본적 자유는 전체로서 시민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요구의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1780년경 이래 “시민사회”(societas civilis)와 “국가”(civitas, res publica)는 동의어가 아니었습니다. 비테(Samuel Simon Witte, 1782)는 국가와 사회의 분리 이론과 함께 시민사회의 자율적 목적을 존중할 국가 의무 개념을 말합니다. 국가동맹은 시민동맹에 종속하는데, 전자는 후자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헌법학에서 국가는 헌법의 규율 대상으로서 연구 대상입니다. 국가의 기원, 국가의 본질, 국가의 존재 이유, 국가의 정당성, 국가의 목적과 과제, 국가와 사회의 관계, 국가의 법적 성격, 국가형태 등은 헌법학의 관심 대상이죠.


헌법학에서는 국가가 헌법에 선재(先在)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국가를 창설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국가와 헌법의 관계를 이해합니다. 헌법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통치구조의 법으로서 국가의 조직과 작용 방식을 규율하지만, 서구의 근대헌법은 국가권력의 한계이자 국가의 존재 목적으로서 기본권 보증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이른바 입헌국가 개념입니다. 현대 헌법이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관계 등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국가 현상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했지만, 헌법에 따른 작동과 제약이라는 입헌국가의 특질은 여전합니다.


이중국가(Doppelstaat, dual state)는 에른스트 프랭켈(Ernsr Fraenkel)이 1940년 출판한 책에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이중국가는 나치스의 국가사회주의 국가에서 ‘조치(措置) 국가(Maßnahmenstaat)’와 규범 국가의 병존을 표현한 개념인데요. 조치 국가는 파시즘 국가의 헌법 체제를 의미합니다. 조치 국가 용어는 유신 헌법의 긴급조치 또는 1980년 헌법의 비상조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본어 번역본은 ‘대권(大權) 국가’라고 옮겼으며, 영어로는 ‘prerogative state’입니다.


저는 ‘명령 국가’의 용어를 사용하는데요. 명령 국가는 법규범이 아니라 권력자의 명령에 의존한 국가입니다. 이때 명령은 초헌법적인 긴급명령 또는 비상명령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 합법의 틀 안에 있는 ‘행정명령’을 의미하기도 하는 점에서 이중적 의미입니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 명령으로 시민의 자유를 규율하는 ‘시행령 통치’와 연관됩니다.


저의 가설은 이중국가가 입헌국가의 예외적 상태가 아니라 입헌국가에 내재한 속성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중국가론에 대한 오해는 명령 국가와 규범 국가의 병존을 말하면서도 양자를 대립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규범 국가를 억압하는 명령 국가를 비판하고 규범 국가의 승리를 기원함으로써 ‘명령 없는 법치’의 환상을 재생산합니다.


앤드류 빈센트는 입헌주의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나 국민주권 또는 민주주의와 아무런 연관도 없음을 주장합니다. 긴급명령과 행정명령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입헌국가는 긴급명령체제를 전제합니다. 이것은 규범 국가 안의 행정명령 체제와 연동됩니다. 이른바 입헌국가의 정상성(正常性)은 비상시 긴급명령체제의 잠복과 행정명령에 따른 평시 체제 유지에 근거한 것으로서 헌법 규범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명령 국가의 종속변수라고 봅니다. 국가는 결국 법이 아닌 정치적 또는 행정적 명령으로 지배하고 통치합니다. 법치주의는 속임수일 수 있습니다.


법치주의 원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모든 국가 활동과 국민 생활을 규율하는 헌법 원리인데요. 법치주의는 행정의 법률유보와 사법심사(司法審査)를 통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합니다. 법률유보 원칙은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영역, 특히 기본권 실현에 관한 영역에서는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가 입법자로서 본질적 사항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죠. 본질적 사항이 무엇인가까지 의회가 결정하므로 의회유보 원칙이라고도 합니다(헌재 1999. 5. 27. 98헌바70).


그러나 행정의 법률 준수 여부를 판단․통제하는 사법심사는 통치행위 또는 정치문제, 특별권력관계, 행정의 자유재량 행위 등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유재량 행위는 법이 허용하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행정기관의 판단 또는 행위가 법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재량의 범위 안에서는 부당한 재량을 행한 경우라도 위법한 것이 아니며 법원은 적부를 심사할 수 없습니다. 법치 원칙은 법 외(法外)의 통치행위와 ‘법내(法內)이지만 결국은 법 외’인 특별 권력과 행정재량에서 멈춥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법치가 표상하는 규범 국가는 긴급명령 국가와 행정명령 국가 사이의 압착 상태에 놓인 것이죠.


입헌국가는 체제 방어 차원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일부를 배제할 수 있습니다. 국민 개념은 불가분의 정치적․이념적 통일체로서 허구입니다. 개별적 현실적 존재인 국민 사람들은 언제든지 ‘내부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아포리아는 탈출구가 없는 상황,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이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전체주의적 지배 형태와 더불어 인권 그 자체도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체주의적 지배 형태가 인권 이념을 부정했을 뿐 아니라 인권 이념 자체가 우연한 외부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근본적인 불명확성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르주아혁명은 국민국가와 인권의 긴밀한 결합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국민국가가 처음에는 소수집단에서 시작하여 나치 국가가 그랬듯 임의로 결정한 또 다른 주민집단을 국가에서 배제함으로써 그 구성원들을 국가 또는 법의 보호를 상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인권의 실현을 위한 중립적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인권을 최대한으로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국가는 개인이 해당 정치적 공동체에 귀속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도대체 누가 국가의 법적 보호를 누릴 수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이제 인권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거나 국가의 보호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 기대려 하거나, 아니면 지배자들이 아무런 실제적 효과도 없이 사탕발림으로 내세우는 것이 되었습니다. 파시즘 국가는 입헌국가가 국가권력을 통제하지도 인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지도 못함을 입증했습니다. 현대 사회국가 헌법의 효시인 바이마르 헌법은 개헌 없이도 히틀러의 파시즘 체제로 변질되었습니다. 명령 국가는 파시즘 국가의 외피로서 입헌국가의 또 다른 이름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프랭켈은 나치 헌법이 계엄령이고, 그것은 곧 1933년 2월 28일의 긴급명령이라고 봅니다. 긴급명령은 독일의 공적 생활의 정치 영역을 법치에서 제외했고, 행정법원과 일반법원은 ‘법 외(=불법) 통치’에 복무했습니다. 정치 영역은 법률에 관한 한 진공 지대로서 유력 관료들이 자유재량의 특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의적인 조치를 구사하여 통치했습니다.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폭력 행위에 대한 긴급명령을 보완하기 위한 법률인 1933년 3월 24일의 수권법(授權法, Ermächtigungsgesetz)은 국가사회주의에 무제한의 입법권을 부여했습니다.


이승우는 국가와 헌법의 상호 관계에 대해 법질서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는 국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질서 밖에 국가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법질서 창조의 원천이고, 법질서를 사실상 관철하는 보장자이며, 전형적인 활동 수단으로 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헌법이 당위적으로 그려내는 입헌국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와 다릅니다. 국가는 결코 법의 손아귀에 잡혀 있지 않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법치의 환상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입헌국가에 내재한 이중국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중국가론이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헌법 체제에 던지는 문제는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된 이중의 명령 국가가 압착한 헌법 체제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이중국가론은 이중적 명령 국가의 함수관계에서 정립합니다. 군사쿠데타의 발발 가능성과 계엄령의 선포 또는 긴급명령권의 발령 등 명령 국가의 현실성이 존재하면서도 재량국가와 시장 권력은 법치의 이름으로 법 안에 똬리를 틀고 빙산처럼 그 심해의 깊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탈정치화’, 의사(疑似) 정치(parapolitics), 행정의 확장과 거버넌스 포섭, 시장 권력과 자본 재량 또는 명령의 작동 방식 등 긴급명령은 법치의 탈을 쓰고 작동합니다. 한국 사회는 ‘비상시 명령권’의 ‘평상시 재량명령권’으로 침잠하고 확장한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법치의 외피를 쓴 그것을 민주화의 성공으로 착각하면서 행정․입법․사법의 재량과 결단에 따른 명령 국가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민주화의 퇴락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헌 논의 또한 껍데기 민주화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함정입니다. 법의 내부에서 적법(適法)의 외피 아래 작동하는 명령의 체계를 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에 따라 단죄하고 문책할 수 있는 헌법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헌법은 형법과 행정법이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의 죄책까지 사후적으로라도 물을 수 있는 최고의 법적 정의여야 합니다. 다양한 차원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민주주의 제도가 정립되어야 민주공화국의 헌법 체제가 틀을 갖출 것입니다.


* Klippel, Diethelm, “The Theoretical Preconciousness of German Civil Rights”, Hermann Wellenreuter 엮음, German and American Constitutional Thought: Contexts, Interaction, and Historical Realities, BERG, 1990,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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