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금) 류코쿠대학 학생들에게 특강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절 초대해 준 데와 교수님의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 수강생 외에도 개방했는데요. 데와 교수님과 상의해서 정한 주제는 ‘한국에서 학생인권조례의 현황과 과제’였습니다. 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의결하는 등의 상황이어서 그렇게 주제를 정했습니다.
데와 교수님은 일본어로 번역할 때는 학생인권조례를 ‘아동 생도 인권 조례’라고 하더군요. 학생은 대학생을 제외하고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말하니까요. 조례에는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의 학생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의미를 정확하게 하다 보니 그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는 제가 어떻게 강의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처음에는 데와 교수님이 순차 통역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한국말을 일본어 문자로 번역하는 AI 프로그램을 찾으셨더군요. 번역이 정확하지 않으면 데와 교수님이 개입하기로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질의와 응답 시간에도 저는 제 태블릿을 이용해서 질문 내용을 파악해서 답변했습니다. 소통이 잘 이뤄진 편이었습니다.
데와 교수님과 인연은 학생인권조례였습니다. 한국의 학생인권조례 연구하기 위해 저와 인터뷰를 했거든요. 제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 위원을 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주한 연구용역 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조례 초안을 잡았습니다. 물론 자문위원회에서 여러 위원의 토론을 통해 많이 수정되어 조례가 성립했습니다.
강의 내용 중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2024년 4월에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의결하고, 6월 25일 본회의에서 폐지 조례안을 의결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7월 11일 폐지 조례안 무효 확인 소송 및 집행정지를 청구했고, 7월 23일 대법원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아직 대법원의 판결은 나지 않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17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다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의결했습니다. 11월 21일에는 국가인권위원장의 폐지 재고 성명이 있었고요. 11월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상정 예정이었으나 본회의가 개최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가 강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결국 12월 1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어서 학생인권조례가 효력을 상실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대법원의 판단인데요. 폐지 의결을 무효로 판결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걸어봅니다만,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과정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학생인권조례를 위헌 또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논점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법률의 위임 없이 조례로써 학생 인권 관련 내용을 정할 수 있느냐고요. 다른 하나는 법률 아닌 조례로써 교사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느냐입니다.
대법원은 학생인권조례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이미 관련 법령에 따라 인정하는 학생의 권리를 열거하여 그와 같은 권리가 학생에게 보장되는 것임을 확인하고 구체화한 것으로서 법령에 따라 인정하지 않았던 새로운 권리를 학생에게 부여하거나 학교 운영자나 학교의 장, 교사 등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학생인권조례가 정규교과 시간 외 교육활동의 강요 금지, 학생 인권 교육 등의 규정 역시 교육의 주체인 학교의 장이나 교사에게 학생의 인권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권고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가 국민의 기본권이나 주민의 권리 제한에서 요구되는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한다고 할 수 없고, 내용이 법령의 규정과 모순·저촉되어 법률 우위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례 폐지에 대한 대법원 판단에서 논점은 위에서 서술한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조례가 없어도 학생의 인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거니까 큰 문제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례의 제정이나 폐지는 지방의회의 재량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실제 서울시의회는 ‘학생의 기본권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미 보장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폐지하는 조례안이 통과되더라도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도 학생인권 침해를 받은 사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얼마든지 구제 청구가 가능하므로 이 사건 폐지조례안으로 인하여 구제청구권이 박탈되는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2024년 4월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는데요. 첫째,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헌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여 학생의 기본권에 대한 법적 확인을 포기하는 일은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보호를 침해한다는 주장입니다. 법치국가에서 법률에 대한 국민의 신뢰 보호는 중요한 헌법 원칙 중 하나인데요. 조례는 자치입법으로서 법치국가 원리의 적용을 받으므로, 조례에서의 신뢰 보호 원칙도 지방의회가 준수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구성한다는 거죠.
법치국가에서 법률[조례]은 국민이 행동을 조정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써 법률[조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입니다(김문현 외 3인, 『기본권 영역별 위헌 심사의 기준과 방법』, 헌법재판소, 2008, 95쪽). 입법자가 조례의 제ㆍ개정을 통해 소급효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이 인권 보장의 기초로 삼았던 조례 규정을 사후에 폐지하는 것은 조례에 대한 신뢰와 법적 안정성이 침해됩니다. 이것이 법적으로 용인되기 위해서는 공익 관점에서 정당화될 필요가 있는데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함으로써 얻는 공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학생, 보호자, 교사, 서울 시민 등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 증진될 수 있을 거라는 신뢰를 형성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조례에 근거하여 학생 인권을 신장하는 정책을 전개했습니다. 이러한 신뢰 이익은 헌법상 기본권 보장에 대한 신뢰인 점에서 중대한 데 비해, 이러한 조례를 폐지해야 할 공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마지막 논점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주민 발의로 제정된 조례인 점에 있습니다. 「주민 조례 발안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주민 조례 청구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폐지하는 주민 조례 청구가 주민 조례 발안법의 제외 대상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 중 하나는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교육센터가 폐지되는 문제입니다.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설치된 행정 기구를 폐지하는 것은 주민 조례 발안법에서 주민 조례 청구 제외 대상으로 규정한 ‘행정 기구를 설치하거나 변경하는 사항’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학생인권조례를 되살릴 방법은 이제 대법원의 조례 폐지에 대한 무효 판결뿐입니다. 하나의 방법이 더 있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을 교체하여 다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특강의 마지막에 세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초․중․고 시절에 저도 그랬지만 친구들이 엄청나게 폭력적인 체벌을 받는 걸 보고도 두려움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마음의 빚이 아직도 있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그래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나 자신도 한국 사회도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2010년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조례에 교사와 학생 보호자[학부모]에게 학생의 인권 보장이 자리 잡으려면 최소 30년이 필요하고, 만약 학생의 인권 보장이 자리 잡지 못하면 않으면 여러분이 노인이 되었을 때 가차 없이 버려질 것이라 ‘협박’했습니다. 노인만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인 아동들이 먼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학교에서도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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