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2

by 마정열

2.

한 통의 편지가 서랍 속에 있었다. 보는 순간 누가 보낸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접힌 편지지를 펼쳤다. 지면을 채우고 있는 촘촘한 글자가 눈앞에 펼쳐졌다.


또 당신 곁을 떠나려 합니다.


언뜻 눈에 띄는 문장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다음을 읽지도 않고 편지를 접어 다시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늘 엇갈리는 인연이었다.

교무실을 둘러보았다. 도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교무부장에게 물었다.

“서 선생님 오늘 안 나왔습니까?”

“방학 때까지 연가 냈어. 어디가 안 좋은지...”

이틀 후면 겨울 방학이다. 도희는 언제부터 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아마 이 학교에서의 만남의 순간부터 도희는 떠날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지난 토요일 팔당대교 위의 안갯속에서 도희가 말했다.

“헤어져야겠어요.”

도희가 차창을 열었다. 겨울 강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바람은 피부를 뚫고 가슴 깊숙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도희의 그 말과 함께.


올 초 A고로 발령이 났다. 2월 말, 신입 교사 상견례 및 신학기 준비 관계로 전체교사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배포된 유인물 속에서 ‘서도희’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 이름의 주인이 대학 시절 신열을 앓게 한 그 여인인가, 하는 떨림과 함께 여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흐릿했다. 그때의 일들이 파편처럼 지나가고, 뿌연 영상의 얼굴들이 머릿속을 흐트러뜨렸다.

도희를 다시 만났다. 20년의 세월이었다. 마주치는 순간 나는 그녀를 알아봤다. 그녀를 보는 순간 희미했던 영상이 선명하게 바뀌어 기억 깊숙한 곳에서 치고 올라왔다.

도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그냥 내 옆을 지나쳤다. 회의 내내 가슴이 뛰어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머릿속은 헝클어져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다. 회의가 끝나고 교사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자리로 가지 않고 도희에게 다가섰다.

“잘 지내셨어요?”

그녀의 곁에 섰을 때 그녀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린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도희 씨 오랜만이에요.”

“두 분 아는 사이예요?”

도희 옆 좌석의 여선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그냥...”

도희가 얼버무렸다. 순간 여긴 학교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옛 말버릇대로 도희 씨라 했는데...

나는 호칭을 다시 바꾸어 물었다.

“서 선생님, 여기서 근무하세요?”

뻔한 질문이다. 이십 년 만에 만난 사람의 대화치곤 너무 무미건조하다.

“네.”

더 이상의 대화가 진행될 것 같지 않아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나의 자리인 2층 학생부로 올라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들의 연락처를 찾아 도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끝나고 잠깐 만났으면 합니다. 사거리 레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시간도 정해 놓지 않았고,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일방적인 문자다. 일정표를 살펴보니 별일이 없어 점심 전에 일과가 끝날 것 같았다.


1시에 만났으면 합니다.


다시 문자를 보냈다. 또 일방적으로.

답신 문자는 오지 않았다. 답신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가서 기다릴 것이고, 도희도 그것을 알 것이다.

12시 50분. 카페의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나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기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도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도희 쪽으로 걸어갔다. 20년 전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가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