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아서 그에게서 멀리 도망쳤다. 만나면 초라해지는 내가 싫어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헤어졌나 보다.
처음 그에게 설렘 같은 것은 없었다, 나에게 그곳은 절실한 생존의 공간이었으니까. 스물아홉과 서른둘. 청춘 남녀를 같은 공간에 붙여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실험 관찰을 당하는 느낌도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스물아홉의 기간제 여교사에게 연애는 사치와 동의어였다.
봉하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새벽 기차 안에서 잠든 정우준의 얼굴에서 느낀 설렘은 혼자만의 감정이었을까? 감정은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 결말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거듭되는 임용시험에서의 낙방. 신은 분명 나에게 공부의 재주는 주지 않은 것 같다. 내 재주 없음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나는 그런 내가 수치스러워 기존의 나를 알고 있던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교육청 인력풀 게시판에서 지방 학교의 기간제 모집 공고를 보았고, 거기에서 함께 근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서울을 떠났다.
3월, 아직 황량한 들길을 걸으며 정우준을 생각했다. 한, 두 해 전의 일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에게서 가까이 가기가 두려웠다. 그의 곁에 있으면 실패한 내 청춘이 더욱 초라해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통영의 밤, 바닷가를 거닐며 내 손을 잡은 정우진의 손에서 떨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내 살을 파고드는 정우진을 운명처럼 나는 받아들였다.
행복한 기억, 그러나 세월은 이 모든 것을 아픔으로 환치시켜 나에게 남겨 놓았다.
서울을 떠난 후 정우진을 향한 내 침묵의 날은 길어만 갔다. 나 자신도 이 침묵의 나날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간혹 받은 전화기를 통해 정우진은 애원의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고 연신 물었고, 나는 침묵의 연장선으로 메마른 목소리로 나의 텅 비어 가는 마음을 대신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우진에게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그것은 실상 나를 버리고, 나의 청춘을 버리는 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곁으로 확연히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하기야 그것도 내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은 황폐해져만 갔다. 하루하루 연명하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최정식이었다. 그가 이사장의 조카라는 사실은 온 학교의 근무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와의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탕녀였다. 뻔한 거짓말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정교사 직을 이야기하는 최정식의 유혹에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여기저기 떠다니는 기간제 교사의 생활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것이 정교사가 됐던, 결혼이 됐던.
다음 해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나와 이사장 조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온 학교에 깔렸고, 내 뒤에서의 수군거림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나와 다시 재계약한다는 것은 이사장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즈음 이사장의 조카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비로소 그가 이런 식으로 많은 계약직 여교사들을 농락했음을 알았다.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내 등 뒤로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이 쏟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 몇 달간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처음에는 원망, 나중에는 걱정으로 그리고 애원으로 바뀌어 갔다. 봄이 지나고 꽃이 떨어질 때, 나는 더 이상 잃을 청춘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간제 교사는 싫다. 그렇다면 방법은 학원 강의, 하나밖에 없었다. 수 군데의 학원을 방문한 끝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밤낮으로 일을 한 것 같다. 진짜 모든 것을 잊고자 일을 한 것 같다. 그리고 학원 강의를 시작한 지 삼 년째 되던 해 김진호 선생을 다시 만났다.
학원으로 김진호 선생이 찾아왔다. 예전 그대로의 선한 눈매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놀람과 그리고 반가움이랄까 미안함이랄까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으로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우리는 근처 찻집에서 마주 앉았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가 여기 근처입니다. 재작년에 이 학교로 발령받아 왔어요. 반 아이들의 학원 유인물을 보니까 홍선생님의 이름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반가워요.
저도요.
벌써 오 년 전인가 보다. 한때 김진호는 내 주위를 맴돌던 행성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끈질긴 그의 구애를 나는 거절했다.
사귀는 사람 있어요. 선생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정우진이라는 이름을 듣던 순간의 김진호 선생의 망연한 눈빛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김진호 선생의 공전은 멈추었다. 그렇다고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직장 동료였다.
정우진 선생님 소식은 종종 듣고 있어요?
아뇨. 전혀요.
일부러 그랬던 것도 아닌데 그와 헤어진 후로 그에 대한 소식은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게다. 한때 가슴을 뛰게 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매몰차게 밀어낸 사람이었는데. 헤어진 날 서러움에 밤새 나를 울게 한 사람이었는데.
결혼했어요. 작년에.
.......
정우진 선생과 홍선생님이 헤어졌다는 것을 결혼 소식을 전하던 날 알았어요. 그 자식이 전혀 말을 안 해서...
잘됐네요. 늦게나마 축하해야겠어요.
같이 근무하던 여선생과...
선생님은요?
나는 김진호의 말을 끊기 위해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 정우진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네?
선생님은 결혼하셨어요?
아뇨, 아직.
김진호는 수줍은 미소를 흘렀다.
늦네요.
아직 인연을 못 만났나 봐요. 선생님은?
저요? 저 결혼 안 해요.
홍성을 떠난 날 한 결심이다. 당장의 상처를 은폐하기 위해 그 결심밖에 없었다. 먼 후일 상처가 아물면 결심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문득문득 기억이 떠올라 아프다.
나도 꿈 많은 소녀였다. 상투적인가. 상투적이지 않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멋진 연애도 하고 싶었고, 좋은 직장도 가지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은 교사였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은 없다. 여자로서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일 것 같았다.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심심치 않게 이어진 짧은 연애와 목적 없는 배회 끝에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내 미래의 청사진은 뿌옇게 흐려 보였다. 그때부터 책을 펼쳤다. 돌아서기도 쉽지 않은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능력의 부족인지 노력의 부족인지 꿈을 향해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첫 번째 포기한 것이 임용시험이고, 두 번째 포기한 것이 결혼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의 삶에서 무엇이 남나,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삶마저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에 또 다른 무엇인가에 집중을 하여야 한다. 우선 상처부터 치유하자. 아니 치유가 안 되면 다른 일로 덮어버리자.
이런 마음으로 몇 년을 살아왔다.
그날 이후 김진호는 종종 나를 찾아와 말벗이 되어 주었다. 김진호는 내 주위를 서성일뿐 내 자기장의 범위 안으로 들어 올 생각은 없었다. 나의 거부를 지레짐작하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가 말을 편하게 할 즈음이 되어서는 김진호는 나에게 간혹 이런 말을 던지곤 했다.
연애 안 해요.
그러면 나는 웃으며 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였고 그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나도 몰랐다.
나랑 연애할래요? 하고 김진우가 물었다면 나는 한참의 고민은 했겠지만 이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아마 거절했을 것이다.
김진호는 대화 중에 정우진의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배려인 듯했다.
나도 그에 관한 소식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보호 본능일 것이다. 사실 나는 정우진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광화문 유세 현장에서 군중 속의 그를 보았다. 그의 옆모습이었지만, 보는 순간 그임을 알았다. 얼른 고개를 돌려 군중들을 헤치고 그로부터 멀리 달아났다. 다음날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 뉴스를 보고 지금 그는 어떤 심정일까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학원 강의를 나갔고,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다. 비록 한 달 이상 TV 뉴스는 시청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몇 년을 지냈다. 김진우 선생은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나도 조그만 학원을 하나 인수하여 경영에 머리를 싸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