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고백 1

by 마정열

1.

김진호 선생이 그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그 이름이 전해 오는 떨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한번 가 봐야 되지 않겠어?

나는 답하지 않았다.

ㅇㅇ병원 이라더군.

김진호 선생은 병원 이름까지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김진호 선생의 음성에서 묘한 경멸감이 느껴진다.

때마침 수업 시작종이 울린다. 나는 수업교재를 주섬주섬 챙기어 교무실 문을 나선다. 복도에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야, 이놈들아! 시작종 친 지가 한참 됐는데 뭐 하고 있어.

학생부장 선생의 고함을 듣고 아이들이 부산스럽게 내 옆을 스쳐 달려간다.

교실로 들어선다. 웅성대던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출석부를 펼쳐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김민주 네 김서영 네 김영지 네

다음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나서연

잠시 사이를 둔다.

안 온 애들 없지?

이름 부르기를 그친다. 얼굴 하나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 김진호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희미하다. 벌써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나 보다.


2009년. 그 해를 잊을 수 없다. 5월, 장대비 속의 흐느낌을 잊을 수 없다. 햇살 속 노란 풍선의 행렬을 잊을 수 없고, 그리고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3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개학 날. 교무회의 시간. 교감의 곁에 한 여선생이 서 있었다.

이번에 같이 근무하게 된 홍수현 선생님입니다. 차미경 선생님의 육아휴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자 홍수현 선생님, 인사하시죠.

국어과 홍수현입니다. 선생님들의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짧은 인사말이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선생님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하였다. 여인은 교감 앞의 빈 좌석에 앉았다.

개학을 맞이하여 여러 부서의 전달사항이 이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었다.

홍수현의 자리는 내 앞자리였다. 그렇다고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각 선생의 자리는 파티션으로 경계가 되어 있어 굳이 한마디 던지고 싶으면 일어서서 말을 건네야 했다.

홍수현은 기간제 4년 차였다. 거듭되는 교사임용시험의 낙방 탓인지, 아니면 기간제 교사의 자격지심인지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올해가 스물아홉이니 아홉수에 걸리지 말아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였다. 가까이 가기에 어려운 그녀의 태도에 한 달이 지나도 나는 그녀와 업무 이외에 사적인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5월, 그날이 있기까지는 직장 동료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23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느긋하게 휴일을 즐기고 있을 때, 텔레비전의 화면을 흐르는 자막은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


그날 오후 나, 진영이, 명균이, 인태. 우리 넷은 오후 5시 광장시장에서 만나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며 한 죽음을 조상했다. 말없이 술을 벌컥이는 소리가 마치 꺽꺽대는 울음소리 같았다. 여전히 찬란한 종로의 불빛을 헤치고, 성벽을 쌓은 전경의 대열을 돌아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촛불, 촛불, 촛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촛불이 덕수궁을 포위하고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향불 앞에 놓고 흰 국화 꽃잎을 하나씩 하나씩 떨구며 돌담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선생들은 한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홍수현은 그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몸이 몹시 아프다고 아침에 연락이 왔다고 한다.

월요일은 오후 수업이 없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퇴를 했다. 그리고 나는 봉화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긴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 노무현의 영정 앞까지 긴 시간을 기다렸다. 어둠이 들판을 점령했지만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돌아서려 했지만 발길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이 퉁퉁 부은 홍수현을 만났다. 홍수현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리고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민망했든지 수건을 꺼내어 눈가를 훔쳤다.

수현 선생님, 아프다더니...

네 많이 아파요. 죽을 정도로...

나도 그래요. 믿기지도 않고, 견딜 수가 없어 왔어요.

나는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 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분개했다. 평소 나는 분노를 처절한 행위로 표출할 정도의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지나칠 수 없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 소박한 저항이었다. 나의 저항을 목격한 첫 번째 사람이 홍수현이었다. 우리는 봉하마을의 천막 안에서 조문객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그리고 새벽 기차를 타고 함께 올라왔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우리가 무슨 비밀을 공유한 사람처럼 은밀한 사이가 된 것은. 학교 안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학교 밖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것도 학생들의 눈에 띌까 봐 되도록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녀와는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동시대를 공유한 사람으로서 시시콜콜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름방학 우리는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떠났다. 소매물도의 푸른 바다, 사량도 옥녀봉에서의 아찔함. 그리고 통영의 한 호텔에서 우리는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고 서로의 몸을 받아들였다.


가을이 깊어지고 임용시험이 다가올수록 홍수현의 초조함은 더해갔다. 내가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말은 안 했지만, 나와의 연애 때문에 공부가 조금 소홀했다는 생각에 초조함은 더한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왜 이리 잘 들어맞는지, 그해 홍수현은 임용시험에서 또 실패했다.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겠지만 홍수현은 씩씩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차미경 선생이 휴직을 일 년 더 연장했기에 홍수현은 학교에서 일 년 더 근무하게 되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근무 만기가 되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홍수현과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제 사람들 눈을 피하며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해 우리의 사랑은 지난해보다 열렬하지는 않았지만, 주말이면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간혹 야외로 놀러 나가고, 그렇게 현실의 연인 같은 사랑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는 간절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집에서 결혼 독촉이 있어도 나는 왜 홍수현을 선뜻 부모에게 소개할 생각을 못 했다. 결혼이 간절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고백건대 홍수현의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이 부모에게 그녀를 소개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홍수현도 결혼보다는 일단 자신의 꿈인 임용시험의 합격이 먼저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그때 김진호 선생이 홍수현에게 접근했다. 구애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여러 번의 거절 끝에 홍수현은 김진호 선생에게 나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김진호는 나와 임용 동기이다. 신규교사 연수 때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다시 학교에서 만났을 때 그 기쁨은 헤어진 연인이 만난 것 같았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붙어 다녔고, 다른 선생들은 나와 김진호가 전생의 부부였을 거라고 웃음 섞인 소리로 놀렸다.

김진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우리는 카페에 마주 앉았다.

왜 자기에게 말 안 했냐고 했다. 말했다면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았고 민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의 투로 말했다.

홍수연과 만나고 그것을 비밀로 했던 것이 그 누구에게도 전혀 미안한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김진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진호에게 축하한다는 늦은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술 한 잔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홍수현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임용시험에 집중해 보겠다고 했다. 홍수현은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나도 홍수현의 결심을 응원했다. 임용시험 때까지 우리는 만남을 조금 자제했다. 삼 개월 동안 세 번 만났다.

그러나 신은 우리의 편은 아닌가 보다. 홍수현은 또 임용시험에 떨어졌다. 나도 홍수현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의 그 어떤 위로도 홍수현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한동안 나의 전화도 안 받던 홍수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씩씩하게 홍수현이 말했다. 임용을 그만두겠다고. 그리고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홍수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그것이 이별의 선언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홍수현은 홍성의 한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취업을 했다. 홍수현은 나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나는 그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전화를 해도 안 받기가 일쑤였다. 어쩌다 받아도 그녀의 말투는 건조하기만 하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나는 휴일을 틈타 홍성으로 내려갔다.

왜 그러는데?

뭐가?

홍수현의 목소리는 떨렸다.

왜 자꾸 나를 피하려 하는 거야?

내가 뭐, 그냥 좀 바빴어.

그건 변명도 아냐. 변명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해.

변명 아냐. 내가 왜 너에게 구차하게 변명해야 해? 서울에 있는 너만 바쁘고 시골에 있는 나는 바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자꾸 억지만 부리는 건데.

그래, 나는 억지만 부려. 모든 게 억지야. 그러니 전화하지 마.

홍수현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이별의 선언이었고, 내게 그것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헤어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