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6

by 마정열

6.

눈이 오나 보다. 누군가가 눈을 쓰는 싸리비 소리가 들린다. 다시 눈을 감았다. 지루한 겨울 낮잠이다. 눈을 떴다. 사위가 컴컴하다. 얼마를 잔 것일까. 일어나 불을 켰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하고 계속 이런 생활이다.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어 식탁에 앉았다. 따각. 목줄기를 넘어가는 맥주의 서늘함에 잠시 몸이 떨린다.

잘 있었나?

맞은편에 상규가 앉아 있다.

나 많이 변했지? 하긴 요새 내가 낯설게 느껴져. 너는 조금도 안 변했구나. 그곳에서는 늙지도 않는구나.

그래, 나는 세월을 잊고 편히 잘 있어. 너는 어때? 잘 지내고 있어?

나? 조금 힘들어. 아니 많이 힘들어. 요즘 들어 많이 생각난다. 고1 때 내 짝인 상규 너. 수학 시간이면 수학책보다 소설책 읽기를 더 좋아하던 너. 농구 시합을 하다가 파울이니 아니니 하고 너랑 얼굴 붉히고 싸우고 한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냈지. 화해하자며 너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수줍게 그 손을 잡았지. 그날 밤 공원에서 우리 술을 마셨어. 그래 아마 담배도 피웠을 거야. 난생처음으로. 학력고사가 끝난 날 우리 둘은 엄청 취했지. 망친 시험 때문에.

그래 나도 생각이 나. 남들은 대학 원서를 쓸 때, 우리는 둘이 재수 학원을 찾아다녔지. 그래도 너랑 같이 재수를 해서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했어. 너 대학 들어가고 나 혼자 재수를 했으면 많이 창피했을 거야.

이제 이야기할까? 재수할 때, 나는 네가 무척 부러웠어. 왠지 알 거야.

상규가 웃는다. 나는 맥주캔을 들어 상규에게 건넨다. 상규는 웃고만 있다.

도피 중인 상규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 둘은 동네 허름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주인아줌마는 졸고 흐릿한 백열등이 술잔 위로 흔들렸다.

도희한테 너무 미안해. 다 미안해.

술에 젖은 상규가 축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나는 도희 곁을 떠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도희 곁에 네가 있어 다행이야. 진심이야.

상규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희 곁에 있어 줘.

상규는 신신당부를 하며 떠났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는 맺히지 못했다. 떨어진 꽃잎은 아직도 바람 속에서 떨고 있다.

내일 상규에게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닷바람을 안고 길을 걸어간다. 골분을 안고 가던 내가 보인다. 꺼이꺼이 울며 따르던 상규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상규와 만나 오순도순 지내고 있을까. 도희를 앞세우고 걷던 내가 보인다. 도희를 엎고 숨 가쁘게 뛰던 내가 보인다. 그리고 사라진다.


산모퉁이를 휘어 돌았다. 어제 내린 눈이 길을 감추었다. 눈 위로 몇 개의 발자국이 길임을 알려준다.

저기 멀리 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아! 그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