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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31. 2020

사라져가는 것들

2020.8.31.월

우체국에 갔다. 통장정리를 하고, 책 두 권을 등기로 부치기 위해서다. 한 권은 학위 논문을 쓰는데 남편의 논문집이 꼭 필요하다고 모르는 분이 어떻게 전화번호를 구해서 전화를 했더란다. 한 권은 내 수필집인데 십 년 전 바이칼 호수 여행 때 만난 지인과 오랫만에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마음에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집에 몇 권 남은 내 수필집을 보낼 참이다.



가끔 우체국에 가면 아무도 일별을 주지 않는 우체통을 보곤 한다. 가슴 뛰는 청춘시절, 거리에 있던 우체통에 밤새워 쓴 연애편지를 넣거나, <별이 빛나는 밤에><세븐틴><6시의 데이트> 같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신청곡과 사연쓴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 모든 메신저의 구실을 우체통이 감당하였다.

내 엽서는 대부분 방송에 소개되었다.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엽서에 쏟았을까? 가끔은 엄마에게 들켜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우체통을 보기 어렵다. 우체국 앞에 설치 되어 있는 우체통도 눈여겨 보는 사람들이 드물다.

사라져 가는 것들 중 집전화와 우체통은 정말 아쉽다. 예전에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를 하면 아버지가 받으셔서 - 전화기가 안방에 있었으므로 - 이름이 뭐냐? 공부는 잘 하냐? 형제는 몇이냐? 아버지는 뭐 하시냐?, 꼬치꼬치 물으시고 나서야 바꿔주셔서 친구들이 난리를 치곤했다. 물론 나는 더 난리를 쳤다. 그런 아버지가 목이 메이게 그립다.

그런 시절 남편은 연애편지랍시고 장장 열두 장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밤에 쓴 치기어린 내용을 아버지는 한 장만 읽으시더니 내게 넘겨주셨다. 아마 '이런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나는 요즘의 이렇게 빠르고 건조하기만 한 세상에 불만이 많다.

편리한 세상이라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사람이 기계의 시중을 드는 세상이다.

여행 중 마트에 물을 사러 갔더니 판매가 안된다고 했다. 원인은 컴퓨터 에러란다. 바코드를 찍을 수 없다고.

다음에는 무엇이 올런지 예측불가능한 세상이 두렵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홀로 불을 밝히고 시집을 읽었다. 이런 예측가능한, 몸으로 사는 삶을 살고 싶다.

태풍이 온다더니 구름이 잔뜩 끼였다. 김치거리 다듬어 숨죽여놓고 어제 바퀴에 바람을 넣어두었으니 오랫만에 자전거 타러가야겠다. 몸과 길이 하나되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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