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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30. 2020

시가 되는 저녁을 위하여

2020.8.30.일


한 주는 우리 집에서, 한 주는 아들 집에서 손녀를 봐 주었더니 아들이 통장에 거금을 넣어줬다. 옛말에 파는 집에는 가도 사는 집에는 가지마라, 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 사게 되면 그만큼 형편이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아들도 얼마 전 살던 빌라를 팔고 아파트를 샀다. 당연히 긴축재정모드로 들어갈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전화를 해서 돈을 많이 보냈네 고맙다 잘 쓸게, 라고 했다.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공연히 돈은 왜보냈니? 하며 흰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배려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일방통행은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의미있게 써야지, 궁리를 하다가 중고신청을 해두고 기다렸는데 간발의 차로 놓친 책이 있어서 그 책을 살 작정이다. 값이 만만찮으니 우선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번 보아야겠다. 살림을 줄이고 있는데 아무리 책이라지만 자꾸 사들이는 것은 아닐듯 하다.


여전히 폭염 중이지만 아침에 눈을 뜨니 햇빛이 정말 좋았다.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려 이불과 베개커버를 빨았다. 내 셔츠, 면 잠옷. 흰색이 햇빛과 섞이니 눈이 부시다.

오후엔 베개 속통 거풍.

태풍이 오고 있다더니 그래선지 바람이 조금씩 인다.



시집을 읽다가 '기다리지 않고도 시가 되는 저녁이 곧 오리라'는 구절에 가슴이 쿵 한다. 한평생 시와 살아온 노 작가의 말의 풍경이 아름답고도 애잔하다. 그동안 시밭을 가꾸고 일궈온 품이 얼마나 너른 것일런지 초보 시인인 나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도 부지런히 삶을 만지고 다듬으면 그런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싶어 일기장에 그 구절을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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