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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Sep 11. 2020

며느리와 단둘이 제주도 갔어요

2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 가족이 된 쏭유(며느리)가 3월에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의 맨 처음 반응은 "새신랑은 어쩌고?"였다. 내 남자인 연식이 오래된 헌신랑보다 이제 남의 남자가 되어버린 새신랑인 아들 생각이 먼저 났다. 남편이 섭섭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 3월엔 북유럽 여행계획이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쏭유의 첫제안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그렇찮아도 짝이 맞지 않아 고심하던 중 내가 빠지므로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쏭유가 사준 운동화를 신고 갔더니 저도 같은 걸 신고 왔다 / 본거지에서 처음 맛본 감귤라떼


자기 남자에게 통보를 하는 것은 각자 알아서하기로 했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 일정은 쏭유가, 이것저것 가기 전 준비는 내가 하기로 했다.


 주위에 소문을 냈더니 야단법석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주책없는 시어머니라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위한답시고 한 마디 던진 걸 덥석 물다니 머리가 모자라는 거냐? 아님 모자라는 척 하는거냐?, 로 시작해서 그렇게 광속으로 불편한 사이를 뽀록 낼 거 뭐 있냐?, 신혼의 아들 내외에게 끼어들어 뭐하냐? 시어머니 심청은 하늘이 낸다더니 정말이네,  둥 사방에 적들 밖에 없었다.


나는 쏭유를 가족으로 맞기 전 한 가지만 주의해주면 된다고 했다.

'간 보는 것은 안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테니 쏭유가 제안한 것을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계획했던 다른 여행을 밀쳐두고 제주도 여행을 강행했다.

가끔 혼자서 해외여행도 곧잘 했던 쏭유는 알아서 척척 해냈다. 준비하는 것은 잘해도 일정조절, 이동 방법, 숙소 찾기, 음식점 찾기는 서툰 나와는 달랐다.

내가 요구한 한 가지는 일정 중 조천리에 있는 사진 갤러리 한 군데에 들러야 하는 것 외엔 없었다. 쏭유도 직장생활에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좀 쉬고 싶어했다. 올레길 두 구간을 걷고, 이중섭 미술관을 둘러보고, 오일장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쉬곤 했다. 느릿느릿 달팽이 걸음  3박4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사진갤러리에서  / 숙소에서 티비보며 우유에 조리퐁 타서 먹는 쏭유
내가 사준 인형을 안고 /  서로 잘 하는 것 하기  - 사진찍는 킴미, 길 찾는 쏭유


쏭유와 나는 가끔 그 첫여행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직 초이양(손녀)이 오기 전이라 그런 여유있는 여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쏭유는 그 여행이 좋았는지 그해 여름휴가를 제주도에 가서 투초이(아들)와 함께 전에 했던 그 코스대로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이가 "며느리가 참 불편했겠네요." 한다.

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불편한 관계다 라는 결론을 밑자락에 깔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 서로가 힘들고 어려워지는데. 나도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딸과 며느리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며느리와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동지로서 살아야 한다.


아직 4년 차 시어머니의 지나친 낙관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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