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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Sep 29. 2020

대빵의 여유

2020.9.29.화


'쿵더쿵 쿵더쿵 떡방아

 소리가 들립니다.

앞집에서도 쿵더쿵

뒷집에서도 쿵더쿵'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국어책  추석 이야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학기 교과서를 받고 추석이 되려면 아직 멀었을 때도 이 부분으로 가서 읽으며 추석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의 저쪽 유년시절의 이야기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 손주까지 본 나는 송편은 얻어오고 뜬금없이 추석과 어울리지도 않는 마늘 깔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에 독서수업을 했는데 떡집사장님이 송편을 예술로 만들어왔다.



사람을 만나고 머리 쓰는 일을 주로 하는 며느리는 몸으로 떼우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마늘 까기, 콩나물 다듬기 같은. 

반면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집안일, 음식은 하기 싫어한다. 당연 마늘 까는 일도 싫어해서 마늘을 자루에 두고도 깐마늘을 사다먹기도 한다. 시어머님이 계셨으면 혼날 일이다.

그래도 자식에게는 싫다고 버틸수가 없어서 지난 번에 아들네 가면서 마늘을  까서 좀 가져갔더니 며느리가 추석때 가서 마늘 까드릴게요, 했다. 우린 간 안보기로 약속한 사이라 그 말이 진심이라 믿고 우선 겉껍질을 까고 하나씩 떼어놓았다. 잠깐 물에 불렸다까면 쉽게 깔 수 있을 터이다. 거기까진 내가 해놓을 참이다.

오늘은 대청소, 내일 오전엔 음식 만들기를 할 작정이다.

명절 전, 여유를 즐긴다. 생각해 보니 이 여유는 내가 시어머니자리여서 즐기는 여유일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당연 내명부 서열 1위는 내가 아닌가. 딸, 며느리, 손녀가 있지만 내가 대빵이다.

명절을 앞둔 며느리라면 이런 평화는 누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용감한 며느리도 언제 어떻게 무얼 가지고 가겠다고  며칠 째 계속 보고 중이다.

나이 들어 한발짝 물러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어디에서나 갈등은 주도권 싸움이 아닐까. 나는 아들을 결혼 시키면서 아들에 관한 힘은 며느리에게 일임했다. 내가 며느리와 무난하게 지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모든 힘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알면 적당히 놓는 것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한 방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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