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누가 내놨노? "

2020.9.28.월

대가족 맏며느리였던 엄마는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명절은 누가 내놨노?" 하셨다. 어린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좋은 날 엄마는 왜 저러실까?의아해 했다.

명절 열흘 전쯤부터 부지런히 장을 보셨다. 엄마는 귀찮아 했지만 나는 기어이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곤했다. 집에서는 그래도 일단 시장에 가면 엄마는 내게 이것저것 먹을 거리도 사주었다. 며칠을 장을 봐 나르고 또 며칠 걸려 음식을 준비해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먼 일가친척들이 왔다. 요즘처럼 몇시간 있다가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 아예 사나흘을 머물렀다. 집안일 하는 친척언니가 있었지만 작은 체구의 엄마가 감당했을 일의 분량은 엄청났을 것이다.

고기를 사다놨다고 했더니 당장 먹고 싶다는 남편. 점심에 원을 풀어쥤다. 어제 비싼 소고기를 잔뜩 구워줬는데도 그전 과거사란다.

기껏 어른 네 명, 꼬맹이 하나가 먹을 며칠 음식 준비를 하면서 나도 몇 번 장을 보았다.

집에 놀고 있는 남자를 써먹지도 못하고 - 내 마음에 안들어서 같이 장은 못본다 - 혼자 무거운 걸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요즘에야 손주 얼굴 볼 생각에 명절을 기다리지만 나도 몇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처럼 "명절은 누가 내놨노?" 했다. 몇 시간을 걸려 큰댁에 가는 것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명절이면 일찍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 생각에 울적했다. 친정에 가는 아랫동서가 많이 부러웠다.

이제 내 아이들, 손주가 오니 다시 명절을 기다린다. 새옷을 사놓고 아들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 재료들을 준비해두고 추석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전 내내 청소를 하고 좀전에 또 장을 봐 왔다. 아이들이 모레 오전에 오겠다니 갈무리 해두고 음식은 내일 만들 참이다.

오늘은 책 하고 인사를 못 텄다.

좀 쉬다가 인사해야지. 집안 일이란 끝이 없으니 적당히 밀쳐둬야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