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들이나 며느리의 말과 행동을 일일이 알아듣도록 우리 식의 버전으로 번역해서 말해줘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텐데 싶어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하냐고 서운해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왜 아침밥을 먹지 않았냐고 말이 많다. 빨리 무엇을 주라는 등 성화를 받힌다.
큰댁에서 가져온 전과 수육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모두들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낮잠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 집에서 서열은 가장 낮아도 힘은 가장 센 꼬맹이와 나만 남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손주는 낮잠 잘 생각은 없고 뽀로로 낱말카드를 가져와서 열공 중이다. 아는 낱말이 나오면 흉내도 곧잘 낸다. 치솔이 나오면 양치하는 흉내, 호랑이가 나오면 열 손가락을 오므리며 "어흥~"한다. 아기라도 상황판단은 빨라서 옆에서 열심히 맞장구를 쳐줘야 신이나한다.
오래전 엄마는 스케치북에 줄을 그어 칸은 만들어 '가갸거겨...... 나냐너녀......'글자판을 만들어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이것만 알면 못만들 단어가 없단다, 했다. 그 글자판을 다 익히고 나자 거기서 한자씩 가져온 글자로 낱말을 배웠다.
아버지, 어머니, 기차, 나비, 오리, 아기,.....
그 다음에 받침있는 단어를 익히고 맨나중에 된소리 거센소리의 글자들을 배웠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자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진듯 했다. 부산에 살았던 나는 집 근처를 다니며 길 가 상점들의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 점차 동화책에.빠져들었다.
아기의 뽀로로 낱말 카드에 엄마가 만들어 주신 마분지 낱말 카드가 오버랩 된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엊그제 일인 양 선명하게 다가온다.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풍경같다. 기억은 낡지도 않는데 사람만 낡아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