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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1. 2020

낱말 카드에 따라나온 추억

2020.10.1.목

아들네 가족은 그냥 집에 있고 우리 내외만 큰댁에 다녀왔다.

아침밥을 해놓고 고구마를 구워놓고 갔다왔더니  밥은 먹지 않고 고구마로 요기를 했다.

내 또래의 시어머니나 장모는  정작 아이들보다 옆에서 떠드는 남편 때문에 더 힘들다고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들이나 며느리의 말과 행동을 일일이 알아듣도록 우리 식의 버전으로 번역해서 말해줘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텐데 싶어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하냐고 서운해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왜 아침밥을 먹지 않았냐고 말이 많다. 빨리 무엇을 주라는 등 성화를 받힌다.

큰댁에서 가져온 전과 수육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모두들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낮잠 모드로 들어갔다.



리 집에서 서열은 가장 낮아도 힘은 가장  센 꼬맹이와 나만 남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손주는 낮잠  잘 생각은 없고 뽀로로 낱말카드를 가져와서 열공 중이다. 아는 낱말이 나오면 흉내도 곧잘 낸다. 치솔이 나오면 양치하는 내, 호랑이가 나오면 열 손가락을 오므리며 "어흥~"한다. 아기라도 상황판단은 빨라서 옆에서 열심히 맞장구를 쳐줘야 신이나한다.


오래전 엄마는 스케치북에 줄을 그어 칸은 만들어 '가갸거겨......   나냐너녀......'글자판을 만들어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이것만 알면 못만들 단어가 없단다, 했다. 그 글자판을 다  익히고 나자 거기서 한자씩 가져온 글자로 낱말을 배웠다.

아버지, 어머니, 기차, 나비, 오리, 아기,.....

그 다음에 받침있는 단어를 익히고 맨나중에 된소리 거센소리의 글자들을 배웠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자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진듯 했다. 부산에 살았던 나는 집 근처를 다니며 길 가 상점들의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 점차 동화책에.빠져들었다.

아기의 뽀로로 낱말 카드에  엄마가 만들어 주신 마분지 낱말 카드가 오버랩 된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엊그제 일인 양 선명하게 다가온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풍경같다. 기억은 낡지도 않는데 사람만 낡아가나보다.

추석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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