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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2. 2020

파도가 못다한 말

2020.10.2.금


22개월 차 손주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아침밥을 일찌감치 먹고 급히 고구마를 찌고 포도를 챙겨서 바다로 갔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을 택했다.

어젯밤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날씨가 좋을 거란다. 바다색은 하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좋은 날씨만큼이나 바다도 푸르고 아름다왔다.



어릴적부터 바다를 보아온 아들은 바다가 심상한듯 하고 며느리는 게를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곧 며느리도 바다에서 철수해 자동차도 돌아갔다.

바다는 호기심이 풍부한 어린아이의 몫이다. 손주와 나는 맨발로 걸으며 모래의 감촉을 즐겼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 뒤를 따르며 사진 찍는 할머니. 훗날 우리가 세상에 없을 때도 아이는 이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바다 냄새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파도는 발을 간지르며 쉬임없이 몰려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고 싶은데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자꾸만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는 것일까.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바다를 오래 잊고 있었다. 새벽에 사진을 찍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 있을 때 즐길 일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학창시절 바다가 못내 그리워 바다를 보러 훌쩍 완행열차를 타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바다 가까이 가면 버스에서 벌써 바다내음이 났다. 그러면 가슴 속에 고여있던 슬픔이나 외로움이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그 냄새로 나는 어린시절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비릿한 바다내음을 한껏 채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문제없었다.

늘 지나쳐버리기만 했던 파도의 못다한 말, 이젠 귀를 열고 새겨들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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