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
새벽운동 갔다가 신문을 보는데 사진 한 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십여 자루의 크고 작은 옥수수를 일렬로 가지런히 뉘여 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영희는 사진을 보는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아, 옥수수 좀 봐! 옥수수 사진을 이렇게도 찍을 수 있구나!”
앞서 신문을 읽은 철수가 말했다.
“옥수수 참 먹음직스럽지?”
요즈음 영희는 문화센터에서 배운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철수는 아무대서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영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희는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 사진 정도는 좀 자유롭게 찍어도 되지 않느냐는 쪽이고, 철수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 유난스러워 보인다고 눈치를 주는 쪽이다.
영희도 무례한 건 질색인 사람이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그러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싶어서 남편의 반응이 조금은 서운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서로의 신경을 긁을 필요가 뭐 있겠냐, 싶어서 철수 앞에서는 조심을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철수의 ‘먹음직스럽지?’라는 말 속에는 시장에 가서 옥수수를 사다가 쪄달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렇잖아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진 얘기로 응수를 했으니 조만간 화살이 날아오리라는 것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즈음에서 영희가 갑옷을 입어야 한다. 철수가 무슨 일로 화살을 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갑옷을 입지 않고 날아오는 화살을 맞다가 피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명의 발달이 도전과 응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토인비의 이론이 그들 부부의 결혼사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언제든지 입을 수 있도록 서로 갑옷을 잘 손질해 두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그들 부부에게 왜 갑옷이 필요한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외로움이었다. 철수와 영희의 양쪽 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들도 멀리 떨어져 사는 탓에 각별하지가 않다. 게다가 두 아이도 집에서 일찍 내보내서 빈 둥지로 살아온 세월이 제법 되었다. 적절하게 분산 시켜야 할 관심을 서로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자’와 ‘여자’가 그래왔던 것처럼 철수는 ‘먹이 추적자’로 영희는 ‘둥지 수호자’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히 감당한다면 그리 빈번히 화살을 쏠 일도, 갑옷을 입어야 할 일도 없을 터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고전적인 시대가 아니다. 남녀의 구별이 불분명해지고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여자의 경제활동이 늘었다. 중년의 영희와 철수는 먹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고, 둥지도 그런대로 꼴을 갖추고 있어서 애를 써야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니, 더 큰 원인은 맹목적이던 사랑이 빛이 바래면서 서로를 용납하고 배려하던 마음의 터가 좁아진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애꿎은 화살만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