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풍경(1)

한 장씩 넘기는 일상

by 김제숙

북구청 앞에 볼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주차가 대략난감이라 근처 친구네 아파트에 차를 대고 이십여 분 걷기로 했다.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만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한낮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긴팔 남방을 입었으니 더 망설일 것 없이 오월의 한낮 속으로 발을 내딛였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 올 확률이 0%라고 한다.

이런 일기예보는 아침식탁에서 남편이 전해준다.

딱히 일기예보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 남편은 기상캐스터의 역할을 착실히 감당하고 있다.

조금 감성적인 성향인 나는 문득, 우리 부부는 이제 분쟁의 소지가 있는 대화는 피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기를 말하더라도 "오늘 날씨 좋지?" 이러지는 않는다는.

날씨가 좋다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아닌가.

남편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나는 쨍한 날을 좋아하니 좋은 날씨에 대한 동의를 얻기는 명쾌하지 않다.


하여튼 한낮 땡볕 속을 걸으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 내 사진 선생님은 제발 아침 저녁으로 찍고 한낮에는 좀 들어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우리들끼리도 암묵적으로 한낮에 사진은 고개를 가로 젖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찍는 거야 내 마음 아닌가.

언젠가 이름은 잊었지만, 미국 작가가 한낮(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찍은 사진집을 본 적이 있었다.

무게를 날려버린 사진들은 나름의 멋이 있었다.


한낮의 골목은 인적이 없고 햇살만 저희들끼리 와글거렸다.

사물의 모습이 과하게 드러나는, 햇빛에 달구어져서 무게도 한껏 가벼워진 풍경들이 거기 있었다.

자동차를 버리고 한 시간 남짓 길을 걸으며 얻은 수확이다.


한낮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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