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 장씩 넘기는 일상

by 김제숙

시공부를 시작했다. 좀 더 나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 시가 갖고 있는 함축, 은유, 중의는 꼭 필요한 문장의 확장 학습이다.


독서 모임 책을 선정하기 위해 이것저것 잡다한 책을 보다가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를 읽었다.

시인의 삶을 들여다 보니 마음이 짠 해서 시인의《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을 목록에 넣으면서 팀원들에게 도서관에서 빌리지 말고 꼭 사라고 당부했다.

시집 열 권 사는 게 가난한 시인에게 무에 큰 도움이 될까마는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시를 쓰는 이는 가장 나중까지 울어야 하니 마음의 결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 더 고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열심히 하면 시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장및빛 꿈을 가졌었다.


모임에 갔더니 옆에서 누가 그랬다.

비행기를 타면 제공하는 기내식을 부탁하면 하나 더 준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고추장, 참기름을 넣은 비빔밥을 먹고 슬쩍 오믈랫이나 햄버거 정도 하나 더 먹을 수 있단 말이야?

귀가 번쩍 띄였다.

절대 식탐이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조금 적게 먹는 편이다.

그런데도 솔깃 관심이 간 건 가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메뉴 정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지만 나는 안먹어본 음식에 다소 거부감이 있어서 기내식으로 든든하게 무장하려는 욕구가 나도 모르게 발동하는 모양이다.


그저께 독서 모임에서 함민복 시집을 다뤘다.

시는 고운 마음 위에 세우는 언어의 집이 아닌가.

다음에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을 하나 더 먹어야지 벼루고 있던 나는 내 부끄러움을 팀원들에게 용감하게 펼쳐보이고 한바탕 웃었다.


ᆞ ᆞᆞ

새들도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

ᆞ ᆞᆞ


이 정도는 돼야지 시인이랄수 있지 않을까.

민망함을 애써 다스리고 내 마음결을 좀더 열심히 채에 쳐가면서 시 공부를 해보리라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엄벙덤벙 쓴 글 하나를 시인 친구에게 보냈다.

이것도 산문시라고 우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묘사와 설명이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야 한다는 답과 함께 함민복 시인의 시 한 수를 보내왔다.


<가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달랑 한 줄이다.

이렇게 총알 답장을 보냈다.

"유명 시인이 쓴 시라 모두들 '쥑인다'는 반응이지만 내가 썼다하면 마저 써오라고 야단맞았겠다 "

시인 친구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나는 답을 보냈다.

"가을 날 그대 생각하며 잠 들었다는 사랑시, 이게 안 느껴지면 너 문제 있다.

시를 잘 쓰려면 연애를 하라는,

우리 선생님 이론을 전하노라"

나도 질세라 "시를 위해서 연애를 해볼꺼나" 다분히 불순한 저의가 들어간 내용을 총알로 날렸다.

그랬더니 밀어준단다.

야홋! 말이 씨될라

이럴 때는 이런 기특한 속담을 만든 이에게 절로 감사가 우러난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생각나는 시가 있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 쯤 되는 남자

내게 잠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하고

돌아누워버리는

ᆞᆞᆞ


내게도 이런 촌수의 남자가 있다.


연애는 두껑 닫아놓고 잠자는 방에다 시 쓰는 앉은뱅이 책상을 마련했다.

옛날 우리 아버지는 "공부할 마음만 있으면 부뚜막에서라도 한다"고 틈 날 때마다 말씀하셨지만 요즘은 부뚜막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아버지도 아실 것이다.


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제 그 꼬리를 잘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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